지난해 방탄소년단(BTS)의 활동 잠정 중단 선언에 이어서 올해 ‘SM 사태’까지. 
한류(韓流)의 핵심으로 인식됐던 K팝에 잇따라 적신호(赤信號)가 켜지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는 지난 2000년 그룹 H.O.T.의 중국 베이징 공연을 필두로 한국 대중음악의 해외 진출을 선도했던 ‘K팝의 종갓집’. 
이 때문에 K팝의 눈부신 성장에도 불구하고 그 이면에 잠복하고 있던 위기 요소들이 불거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룹 방탄소년단(BTS)>

 


구조적 위기일까, 단순한 성장통일까. 
얼핏 지난 10년간 통계 지표로 보면 K팝의 성장세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 2012년 K팝 음반 수출은 2426만달러(315억원)였지만, 지난해에는 2억3311만달러(3035억원)로 증가했다. <그래픽> 딱 10년 만에 10배 가까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이다.

 

 



하지만 눈부신 수치 이면에는 ‘K팝의 위기 징후’도 동시에 숨어 있다. 
우선 BTS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한 2020~2021년을 기점으로 증가세가 주춤하다는 점이다.

 



김진우 써클차트 수석연구위원은 “한국 음반 수출 통계치를 보면 지난해에도 수출액은 최고치를 경신했지만 전반적인 증가세가 둔화됐다. 
일본 수출 증가세도 주춤하고 베트남을 제외한 인도네시아·대만·태국 등 동남아 각국이나 네덜란드·프랑스 등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매출이 떨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향후 K팝의 시장 다변화라는 측면에서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 아티스트로는 처음으로 세계 정상에 오른 BTS의 바통을 건네받을 ‘포스트 BTS’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K팝의 고민거리다. 
뉴진스·르세라핌·아이브(IVE) 등 이른바 4세대 걸그룹들이 국내외에서 약진하고 있지만 당장 빌보드 싱글이나 음반 차트에서 상위권에 오를 만한 성적은 아니다. 
또한 BTS를 뒤이을 차세대 남성 그룹의 부재(不在)도 ‘K팝 위기론’을 부채질하는 요인이다. 
신현준 성공회대 교수는 “과거 아이돌 그룹 음악이 ‘공장식’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SM·JYP·YG 3대 기획사의 치열한 경쟁과 차별화 속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품질 관리(QC·Quality Control)를 보였다”며 “지금은 품질 관리와 치열한 경쟁이라는 두 측면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최근 K팝이 마니아적 성격에 매몰된 나머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히트곡(애창곡)’이 사라졌다는 비판도 있다. 
그룹을 앞세우는 마케팅 전략이 국내외에서 팬덤(fandom)을 형성하면서 강력한 산업적 추동력이 됐지만, 정작 음악 산업의 본질인 노래라는 측면이 상대적으로 도외시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싸이의 ‘강남스타일’까지만 해도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었고 BTS의 ‘다이너마이트’는 누구나 아는 후렴구가 있었지만, 그 이후에는 노래보다는 가수의 이름이 중시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가수 싸이가 2022년 10월 2일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특설무대에서 열린 한류 콘서트 ‘영동대로 K-POP 콘서트’에서 화려한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지난 10년간 K팝의 폭발적인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이를 탄탄하게 뒷받침할 만한 체계적 경영 시스템과 질적 성숙이 부재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올해 ‘SM 사태’ 이전에도 K팝 대형 기획사를 둘러싼 잡음은 끊이지 않았다. 
올해 사태의 직접적인 발단이 됐던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의 ‘개인 회사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나 2018~2019년 YG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의 연루 의혹이 불거졌던 ‘클럽 버닝썬 사건’ 등이 대표적 사례다. 
대중문화 평론가 이문원씨는 “외견상으로는 굉장히 규모가 큰 기업들처럼 보이지만, 실은 최근 5~6년 사이에 폭발적으로 성장한 K팝 시장의 크기를 따라갈 수 없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1인 기획사 시절의 구습(舊習)이 고스란히 남은 채로 ‘훌쩍 덩치만 커진 아이’를 보는 것 같다는 우려다.(23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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