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 사건의 1·2·3심 재판은 각각 5개월 안에 판결을 선고하도록 민사소송법 199조에 규정돼 있다.
이 법 조항을 판사들이 어기는 ‘재판 지체’ 현상은 과거에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법조계에서는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강하게 나오고 있다.
‘재판 지체’는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2017년 9월 이후)’에서 급증했다.
이는 재판 관련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본지는 지난 10년간 민사 재판 기간을 분석했다.
민사 1심의 경우, 2012~2018년까지 5개월을 넘겨 판결이 선고된 ‘재판 지체’ 비율이 최저 32.9%(2014년)와 최고 41.6%(2012년) 사이를 오르내렸다.
그런데 2019년에는 51.9%로 나타나 2018년 40.3%에 비해 11.6%p가 뛰었다.
이후 2020년 52.6%, 2021년 52.5%로 3년 연속 50% 선을 넘겼다.
민사 2심은 ‘재판 지체’가 더 심하다.
5개월 안에 판결이 선고되지 않은 비율이 2012~2017년에는 최저 78.4%(2012년)~최고 85.4%(2015년) 사이를 오르내렸다.
그러다 2019년 85.7%가 되더니 2021년엔 92.4%에 달했다.
이는 2017년 취임한 김명수 대법원장이 인사제도 개편을 통해 법원 내 경쟁 구조를 없애면서 판사 사회에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대세로 자리 잡은 시기와 일치한다.
민사 1심에서 재판 지체 비율이 급증한 2019년은 ‘고법부장 승진제’가 폐지된 이듬해였다.
한 부장판사는 “판사들이 재판을 열심히 해야 할 동기를 없애 버린 결과”라고 했다.
이로 인해 소송 중에 당사자가 사망하거나 사채를 내 회사를 운영하는 피해 사례도 나오고 있다.
특히 1심에 패소한 소송 당사자의 상당수는 연 12%의 지연 이자를 감수하고 2·3심 판결을 받고자 한다.
그런데 재판이 3심까지 수년씩 늘어지고 패소로 결론 나면 법정 기간(10개월)보다 훨씬 많은 지연 이자를 내야 한다.
국가로부터 부당이득 반환 소송을 당한 대기업 2곳은 2020년 대법원 패소 확정까지 6년이 걸리는 바람에 원금 16억1200만원에 지연이자 7억8300만원을 내야 했다.
법조인들은 “제때 판결하는 판사들에게 인사상 인센티브를 주는 등 제도 개혁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재판 지체’가 악화하면서 소송 중에 당사자가 사망하거나 심각한 경제적 부담을 지는 등 회복하기 힘든 피해가 생기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A씨는 세금 부과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는데 1심 재판이 1년 가까이 열리지 않았다.
변호사가 몇 번이나 ‘재판일을 정해 달라’고 신청했지만 법원은 반응이 없었다.
그사이에 A씨는 질병으로 사망했고 그 뒤에야 첫 재판이 열렸다.
B씨는 가해자와 보험사를 상대로 제기한 한 소송에서 1·2심은 승소했다.
하지만 2017년 대법원에 사건이 올라가 재판이 5년 이상 길어지면서 B씨는 최종 판결을 보지 못하고 숨졌다.
민사소송의 1심 판결은 소 제기 후 5개월 안에 선고해야 한다고 민사소송법(199조)에 규정돼 있다.
하지만 민사 1심 소송 가운데 5개월 안에 판결이 선고되지 못한 ‘재판 지체’ 비율은 2018년 40.4%에서 2019년 51.9%, 2020년 52.6%로 급증했다.
‘늑장 판결’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이다.
재판이 늦어져 사채(私債)를 내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C씨는 과거 근무했던 업체인 D사로부터 작년 1월 민사 소송을 당했다.
C씨가 D사의 영업 기밀을 침해했으니 손해배상을 하라는 내용이었다.
D사가 소송을 내면서 C씨의 법인 계좌를 가압류하는 바람에 C씨는 회사 운영 자금이 묶이게 됐다.
C씨는 하루빨리 재판을 해서 분쟁을 해결하려고 했지만 재판부는 제소 후 1년 2개월 뒤인 오는 3월로 첫 기일을 잡았다.
그동안 C씨는 6억원대 사채를 내 회사를 운영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민사 소송 2심은 5개월 안에 선고된 사건이 2021년 7.6%로, 100건 중 8건이 안 될 정도로 지체가 심각하다.
2019년 부산명지신도시 주상복합 상가를 분양받은 100여 명이 건물 구조에 문제가 있다며 시행사를 상대로 낸 계약 취소 소송은 2심만으로 3년을 채워가고 있다.
2021년 3월 1심에서 73억원의 배상 판결이 났는데, 2심은 첫 재판까지 8개월이 걸렸고 최근까지도 감정인 추가 지정, 재판부 인사 등으로 진행이 멈춰 있었다.
그사이 피고인 시행사는 사실상 부도 상태가 됐고, 분양받은 사람 중에서는 암에 걸리거나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가는 경우까지 생겨났다고 한다.
대법원 민사 재판은 5개월 내에 선고되지 않은 사건이 2017~2021년 최저 8.2%(2021년)~최고 16.1%(2019년)로 1·2심보다 비율이 낮다.
하지만 이는 ‘심리불속행(대법원 재판 대상이 아니라며 4개월 안에 기각하는 제도)’ 사건이 전체 사건의 80%를 넘는 데 따른 착시 효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소송이 길어지면서 지연 이자가 원금에 육박하는 사례도 생겨났다.
지연 이자는 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선고된 뒤에 당장 이행하지 않으면 연 12%의 이자를 물리는 제도이다.
1심 선고 후 2심, 3심 판결을 민사소송법 규정대로 5개월 단위로 선고한다면 10개월 치 지연 이자만 물면 될 텐데 선고가 늦어지면서 지연 이자 부담이 커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방의 한 택시회사는 소속 기사들이 낸 최저임금 소송의 2심 재판에서 15억 2000만원을 물어내라는 판결을 받았다.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2년째 머물고 있는데 지연 이자만 3억6000여만원이다.
오승원 변호사는 “택시기사 최저임금 사건이 2000여 건 진행 중인데, 지연 이자 때문에 문 닫은 택시회사들도 있다”고 했다.
2009년 4대강 공사 담합 과정에서 담합행위로 적발된 SK건설과 삼성물산은 2014년 국가로부터 부당이득 반환 소송을 당했는데 6년이 지난 2020년에야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았다.
SK건설은 부당이득금 9억4000만원에 더해 지연 이자 4억5700만원을, 삼성물산은 6억7200만원에 더해 지연 이자 3억2600만원을 부담해야 했다.
판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지연 이자율을 낮추거나, 지연 이자가 원금보다 커지지 못하게 한다면 과도한 지연 이자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23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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