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나희덕
이쯤이면 될까.
아니야. 아니야. 아직 멀었어.
멀어지려면 한참 멀었어.
이따금 염주 생각을 해봐.
한 줄에 꿰어 있어도
다른 빛으로 빛나는 염주알과 염주알,
그 까마득한 거리를 말야.
알알이 흩어버린다 해도
여전히 너와 나,
모감주나무 열매인 것을.
.............................
마음에서 생겨나는 것은 측량하기 어렵다.
어느 때에는 한 뼘의 거리도 까마득하고, 어느 때에는 천 리도 한달음에 달려갈 정도로 가깝다.
염불할 때 손으로 돌리는 염주가 여기 있다.
한 줄로 꿴 염주라도 탱탱하고 둥글둥글한 염주알은 각각 다르다.
생김생김도, 빛깔도 각각 다르다.
이 다름을 거리로 잰다면 막막할 뿐이다.
그러나 줄이 툭 끊어져 꿰어 있던 염주알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하더라도 각각의 염주알이 모감주나무 열매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 같음을 거리로 잰다면 지척(咫尺)이다.
오늘은 꽃바구니를 본다.
꽃바구니에는 여러 종류 여러 송이 꽃이 있다.
색색의 꽃들이 모여 화사한 생기와 화음(和音)을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도 그처럼 이 세계에 있다.
- 문태준<시인>
'(詩)읊어 보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3045]인생은 구름이고 바람인 것을 / 이해인 (0) | 2021.06.25 |
---|---|
[3044]치마 / 문정희 (0) | 2021.06.19 |
[3042]무신론자 / 함민복 (0) | 2021.05.31 |
[3041]꽃도 사람 같아서 / 윤보영 (0) | 2021.05.25 |
[3040]늙은 꽃 / 문정희 (0) | 2021.05.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