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꽃
문정희
어느 땅에 늙은 꽃이 있으랴
꽃의 생애는 순간이다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아는 종족의 자존심으로
꽃은 어떤 색으로 피든
필 때 다 써 버린다
황홀한 이 규칙을 어긴 꽃은 아직 한 송이도 없다
피 속에 주름과 장수의 유전자가 없는
꽃이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더욱 오묘하다
분별 대신
향기라니
....................
꽃이 찬란한 것은 늙지 않기 때문이다. 필 때 다 써버리기 때문이란다.
꽃의 피 속에는 주름과 장수의 유전자가 없고, 말과 분별이 없기 때문이란다.
눈부신 것들이 불러일으키는 찬란한 착란이다.
'나의 노년은 피어나는 꽃입니다. 몸은 이지러지고 있지만 마음은 차오르고 있습니다.'
빅토르 위고의 문장이다.
늘, 지금을 탕진하는 것들은 황홀한 향기를 내뿜는다.
태양이 저물 때도 황홀한 이유다.
꽃 중의 꽃이라는 모란과 장미가 봄의 황혼을 향기롭게 하는 이유다.
모란이 지고 말았다, 이제 장미도 질 것이다.
늦게 핀 꽃이든 늦게까지 피어 있는 꽃이든 지금 탕진할 것이 남아 있다면, '다 써 버릴' 게 아직도 남아있다면, 당신은 여전히 그냥 한 꽃이다!
그러니, 피어 있을 때 꺾으라.
내일을 기다리지 말고 생의 장미를 오늘 꺾으라!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지금 장미를 따라'!
- 정끝별<시인.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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