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학교에서 성가대를 지도하고 있는데 내가 지도하는 시간에 우리 집 아이들이 들어을 때가 가끔 있다.
하루는 우리 아들이 내게 연필을 빌려 달라고 했다.
교사로서 나는 평소 준비를 게을리하는 학생들에게는 내 물건을 빌려 주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있다.
그러나 한편 어머니로서 언제나 아이들을 돕는다.
그래서 나는 아들에게 선생님한테 연필을 빌려 달라고 한 건지 아니면 어머니한테 그런 건지 물었다.
그랬더니 아들은 "그야 연필을 누가 가지고 있느냐에 달렸죠"하고 대답했다.





우리 친구들은 시골에 있는 우리 새집에 몇 번 와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길을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한동안 헤매다가 결국은 차를 세우고 현관 흔들의자에 앉아 있는 어느 농부에게 길을 물어야 했다.
그들이 제대로 가고 있느냐고 물으니까 농부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래도 미덥지 않아 친구들은 농부에게 정말 틀림없느냐고 다짐했다.
그러자 그 농부는 이렇게 말했다.
"한번 시험삼아 가봐도 안될 것 없잖소? 어차피 길을 잃은건데."





케이프타운대학교 의과대학에 같이 다니던 신부는 항상 성직자의 복장에 로만 칼러 차림으로 다녔는데,
우리가 병원에서 임상공부를 하고 있던 어느 날 그 신부는 평복을 입고 나타났다.
"환자들 때문이죠. 내가 성직자 차림으로 환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그들은 임종의 순간이 닥친 것으로 생각한답니다."
신부의 설명이었다.





나중에 영국 왕실로부터 작위를 받았으며, 세계최대의 보도매체 왕국의 경영자가 된 로이 톰슨을 내가 처음 만난 것을

1952년 캐나다 신문발행인협회 연례총회장에서였다.
방의 한쪽 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아 톰슨은 다른 신문발행인들을 예리한 눈초리로 훑어보고 있었다.
회원들이 아무 주제나 거론할 수 있는 순서가 되자 발행인 한 사람이 출판상의 어려움을 장황하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발행부수는 떨어지고 광고수입도 줄었으며 노조의 위협도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거기다가 제작비용까지 치솟아 전망은 암담하다고 말했다.
그 발행인의 긴 넋두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톰슨이 급히 일어나며 제의했다.
"내게 팔지않으려오? "






11살난 조니가 집을 떠나 여름캠프에 갔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편지 한장 없어 조니의 부모는 좀 걱정이 되었다.
두 주째에 접어들자 그들은 장거리전화를 걸어 아들을 대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저쪽에서 조니가 나타나기까지 초조하게 몇 분을 기다렸다.
이윽고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 왔는데 조니는 얘기를 나눌 틈도 주지 않고 이렇게 간청했다.
"빨리빨리 말하세요. 난 지금 3루에 있단 말예요."





주차시켜 둔 승용차로 되돌아 가던 어머니는 차 옆에 경찰관이 서 있는 걸 보곤 불안해졌다.
무슨 법규를 어긴 것일까 하고 내심 걱정하면서, 어머니는 경찰관에게 다가가며 살짝 웃음을 지어 보였다.
"순경아저씨, 제가 뭐 잘못한 것은 없겠죠? "
경찰관은 체념한 듯한 말투로 이렇게 대답했다.
"부인, 저희들도 어디엔가 서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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