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우의 쉬운 사진] (66·끝) 겨울 눈 사진
입력 : 2013.12.26
일찍 일어난 사람이 雪原을 찍는다
- 렌즈 80㎜, 셔터스피드 1/1600 sec, 조리개 f/8, 감도 200
힘들게 완성한 원고를 읽고 아내는 딱 한마디 했다. "재미없는데."
충격이었다. 마음을 겨우 수습하고 다시 읽어봤다. 왜 그런 소리를 들었는지 알 것 같았다. 사진은 기계를 만지는 예술이다.
기계 얘기만 하면, 기계를 잘 모르는 사람은 하품부터 나온다. 감도니 셔터 스피드니 조리개니…. 똑딱이만 만져본 사람에겐 암호 같은 말일 것이다.
생각해봤다. 대체 뭘 쓰면 좋을까. 기계를 모르는 사람이건, 아는 사람이건, 누구에게나 중요한 원칙은 없는 걸까. 시작이 어려울 뿐,
그다음부턴 제법 술술 풀렸다. 음식 사진을 잘 찍으려면 일단은 식기 전 빨리 찍어야 하고,
꽃 사진을 찍으려면 마치 애인 얼굴 보듯 바짝 다가가 여기저기 바라보고 찍어야 한다.
말을 풀어내니 이야기가 됐고, 이야기를 풀어내니 기사가 됐다. 제목도 그래서 '쉬운 사진'이라고 바꿨다.
지금 돌아보면, 참 내 칼럼보다 과분하고 예쁜 제목이었다 싶다.
그렇게 2011년 1월 20일부터 지금까지 꼬박 만 3년, 66회를 연재했다. 때론 뭘 써야 할지 고민될 때도 많았다.
1년의 계절은 네 가지뿐이고, 사진의 카테고리도 몇 가지 되지 않는데, 때만 되면 여름 사진 얘기를 해야 하고, 때가 되면 눈 사진 얘기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새로운 얘기처럼 보일까 고민되고 머리 아팠다.
그럴 때면 주변 사람들의 '질문'과 '사소한 궁금증'이 큰 힘이 됐다.
"선배, 여자친구랑 밤에 데이트할 땐 사진 어떻게 찍어요?" "형, 여름 휴가철에 놀러 가면 어떤 사진을 찍어야 하는 거야?" "창우야, 새해 사진으로 뭘 찍으면 좋을까?" 별것 아닌 질문에도 다 답이 있었다.
야경은 해지기 직전 '황금 시간'에 찍고, 여름 사진은 '놀면서' 찍는다고. 이들을 향한 대답을 찾다 보니 나 역시 미처 깨닫지 못했던 소중한 법칙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 설경(雪景) 사진도 마찬가지다. 커다란 나무 아래 허리를 뒤로 젖히고 하늘을 보는 청년. 이 사진을 어떻게 찍었느냐고 누가 물었을 때, 난 가급적 '쉬운 사진'처럼 대답하려고 애써봤다.
그리고 이런 답을 했다. "일찍 일어났지 뭐. 남들이 눈을 밟기 전에. 아침에 빛이 비스듬히 누웠을 때."
결국 내가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도 이것 하나였던 것 같다. 카메라 탓하지 말고, 몸으로 찍자. 비싼 장비 사지 말고, 눈으로 찍자.
무거운 카메라 찾지 말고, 가볍고 싼 카메라라도 좋으니 그저 날마다 목에 걸고 찍자.
지난 3년 동안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린다.
독자 중 한 분이라도 눈 사진 찍기 위해 카메라 렌즈를 바꾸는 대신, 누구도 아직 깨지 않은 아침에 제일 먼저 일어나 풍경을 찍는 분이 있다면, 그분은 이미 '쉬운 사진'의 달인이 된 거라고 믿는다. 새해엔 모두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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