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우의 쉬운 사진] 자세히, 오래 들여다봐라… 작은 풀도 풍성해 보일 테니
입력 : 2013.06.20
- 사진가 유재력 제공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시(詩) '풀꽃'을 읽고, 어젯밤 난 조금 어이없게도 사진 생각을 했다. 사진도 사실 비슷하다고.
바짝, 숨을 참고, 오래, 인내심을 갖고, 셔터를 누른 사진은 다를 수밖에 없다.
시인은 허리를 구부리고 풀꽃과 눈을 맞추며 이런 시를 썼을 것이다.
사진 찍는 사람이라면 작은 풀꽃을 찍을 때도 때론 쭈그려 앉아 숨도 쉬지 않고 뷰파인더로 꽃잎과 수술을 한참 바라보며 찰칵 찍는 순간을 노려야 하는 것 아닐까.
그래서 난 오늘 또다시 접사(接寫·close-up) 촬영에 대한 얘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솔직히 나도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큼직한 꽃송이는 그 풍성한 맛을 표현해야 하고, 자잘한 풀꽃은 그 작고 오밀조밀한 군집을 찍어서 표현하는 게 좋겠다는.
아버지가 찍은 사진 한 장을 보기 전까지 말이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찍은 사진 한 장을 자랑스레 액자로 만들어 거실에 걸어두었다.
햇빛이 투과돼 투명하게 빛나는 진보랏빛 꽃잎이 소박하지만 탐스러운 사진<사진>이었다.
어머니는 마당에 있는 풀꽃을 찍은 것이라고 했다. 마당에 나가봤지만, 이 꽃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어딨어요? 그런 꽃은 없던데." 어머니는 "사진 한다면서…"라고 부드럽게 핀잔을 줬다.
"저어기 있잖아." 어머니가 가리킨 꽃은 그야말로 꽃송이가 자잘한 보랏빛 풀꽃이었다.
육안(肉眼)으로는 수술과 꽃잎조차 제대로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아, 이 꽃이었어요?" 조용히 머리를 긁적였다.
아버지는 넌지시 말했다. "작은 꽃이라고 작게만 찍으면 재미없지. 그래서 접사가 있는 건데"라고 하셨다. 그 말이 맞다.
눈으로 보이는 세계에만 현혹되면, 사진은 의미가 없다. 작다고 작게, 크다고 크게 찍는 게 사진이 아닐 것이다.
아버지는 자잘한 풀꽃을 풍성하게 프레임에 담기 위해 최대한 가까이 다가갔다고 했다.
클로즈업을 찍을 때 가장 조심해야 하는 건 흔들림이다.
카메라의 흔들림이야 삼각대로 잡으면 되겠지만, 꽃송이 자체가 바람에 흔들리는 건 어찌할 수 없다.
접사는 일반 촬영과 달리 미세한 움직임에도 민감해서, 아주 작은 바람에 살짝만 떨려도 그 흔들림이 크게 표현된다.
아버지는 "꾸준히 오래 지켜보다가, 그야말로 아주 작은 바람도 없는 그 순간에 빨리 셔터를 눌러야 한다"고 했다.
셔터스피드는 빨리 세팅하고, 초점이 맞는 범위가 무척 좁은 만큼 초점을 꽃잎에 맞출지 수술에 맞출지도 미리 정하고 찍어야 한다고 했다.
숨도 쉬지 않고 풀꽃 앞에 키를 낮추고 앉아 오래오래 바라봤을 아버지를 잠시 떠올렸다.
사람도 피사체도 결국 그렇게 오래 바라볼 때, 가까이 다가갈 때, 답이 나오는 것 아닐까. 더듬거리는 마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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