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 직원으로 일한 지 올해로 11년째. 가이드로서 가장 힘든 손님은 역시 '대한민국 아줌마'다.
10년 전이다. 2000년 당시 국내 여행 트렌드는 '무박 2일'.
즉 밤늦게 서울을 출발, 새벽에 목적지에 도착해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그때 광화문에서 우리 버스를 타던 아주머니 한 분이 외쳤다.
"3년 만에 외박이다!" 아줌마들의 눈빛이 순식간에 오고갔다.
이날 버스의 탑승인원은 총 29명.
그날은 운전기사와 나 그리고 맨 앞의 한 부부를 제외하면 모두 아주머니들이었다.
소규모 계모임 위주였는데, 대부분이 또래라 금방 친구가 됐다.
이들을 친구로 묶은 1등 공신은 소주. 그런데 양이 상상을 초월했다.
밤새 차에서 술을 드시고, 아침에 정동진에 내려서 해변에서 한 잔, 또 신선이 거닐었다는 무릉계곡에서도 계곡길 산책은
관심이 없고 무릉반석에서 또 한 잔, 다음 코스인 정선 5일장에서도 또 한 잔. 18시간 동안 드신 소주의 양은 두 궤짝을 넘었다.
그러더니 귀경길에서는 '노래'를 부르겠다고 통보했다.
하지만 차 안에서의 음주 가무는 절대 금지.
걸리면 버스회사는 면허 정지에 벌금 수백만원, 탑승객도 개별적으로 모두 벌금 처리된다.
묘책이 떠올랐다.
정선 장터에서 조껍데기 술을 한 잔씩 사드린 후 기사님에게 뒷자리 히터를 최고로 틀어달라 부탁했다.
예상은 적중. 한명의 예외도 없이 코를 골면서 모두가 꿈나라로 가셨다.
남편과 자식들이 얼마나 아줌마들의 속을 썩이는지는, '못된 아들'인 필자부터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또 이렇게 여행을 다녀오면 아줌마들이 다시 일상의 활력을 되찾는다는 점에서 여행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제발 과음은 그만. 건강해치십니다. 대한민국 아줌마 파이팅. (100401)
-이원근(여행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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