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서 외야수의 실책은 뼈아프다.
특히 외야 뜬공(fly ball)을 놓치면 장타(長打)가 될 가능성이 크고, 쉽게 아웃 카운트를 늘릴 기회를 놓치게 돼

팀 사기도 크게 꺾인다.
지난 11일 대구에서 열린 프로야구 삼성―KIA전. 삼성 좌익수 강봉규는 4회 초 2사 1루에서 최희섭이 친 평범한 뜬공을

우왕좌왕하다 놓쳤고, 이 실책으로 1루 주자가 홈을 밟았다.
호투하던 삼성 선발 크루세타는 이닝을 끝낼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치자 크게 실망했고, 1점을 거저 얻은 KIA는 분위기가 살아났다.
삼성은 결국 5회 수비 때도 2점을 내주며 2대3으로 역전패했다.

 

 

외야 수비가 프로선수들에겐 너무도 쉬운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숙련되지 않은 아마추어에겐 가장 어려운 것이 어쩌면 외야 플라이인지도 모른다.
외야 수비의 핵심은 플라이볼의 낙하지점을 포착하는 것이다.
외야수가 머리 뒤로 넘어가는 공을 향해 '만세'를 부르는 장면은 타구의 비거리를 눈으로 잘못 예측한 결과이고,

안타성 플라이를 잡아내는 멋진 수비는 정확한 방향으로 한 발자국 빨리 움직인 덕분이다.

 


야구 전문가들은 외야수가 70~80m나 떨어진 곳에서 빠르게 날아오는 타구를 잡아내는 것은 '눈'이 아니라 '발'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두 눈에 각각 맺히는 상(像)의 미세한 차이를 통해 입체감을 느낀다.
하지만 먼 거리에서 날아오는 야구공은 두 눈의 차이만으로 정확한 입체감을 인식하기 어렵다.
미국 예일대 물리학과 로버트 어데어 교수가 쓴 '야구의 물리학'에 따르면 타격 1초 뒤에 외야수의 눈에 비치는

공의 위치는 75m를 날아갈 타구나 100m를 날아갈 타구가 거의 똑같이 느껴진다.

 


이때 외야수가 몸을 움직이면 공을 보는 위치가 달라지기 때문에 눈으로 거리감이나 속도를 파악해 낙하지점을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캐나다 웨스턴온타리오대 연구팀은 이 현상을 '시각적 변속도 소멸(optical acceleration cancellation)'이라는 어려운 말로 설명한다.
"가만히 서 있는 것보다 몸을 앞뒤로 움직이면 낙하지점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프로선수들은 이런 과학적 원리를 몸으로 체득하고 있다.
두산 중견수 이종욱은 "타석에서 '딱' 소리가 나면 일단 몇 걸음 뒤로 움직이면서 낙하지점을 판단한다"고 말했다.
현역 시절 넓은 수비 범위로 이름을 날렸던 북일고 이정훈 감독은 "타자의 타격과 동시에 한쪽 발을 뒤로 짧게 내디뎌

몸을 움직이는 게 외야 수비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청각도 플라이볼의 낙하지점을 판단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방망이 중심에 정확하게 맞는 소리가 났다면 타구의 비거리가 늘어날 것이고, 탁한 소리의 타구는 아무래도 비거리가

줄어들 확률이 높다.

 


프로선수들은 볼 카운트나 주자 상황, 경기 진행에 따른 타자의 스윙 패턴을 분석해 타구의 위치를 예측하기도 한다.
오른손 타자의 밀어치는 스윙을 본 수비수는 반사적으로 왼쪽으로 뛴다.

 


외야수만큼 플라이볼에 신경을 쓰는 포지션이 바로 포수이다.
포수 머리 위로 솟구친 공은 강한 회전력 때문에 알파벳 L의 필기체 소문자(ℓ) 형태의 궤적을 그린다.
이 때문에 포수는 몸을 180도 돌려 등을 투수 쪽으로 향한 자세로 플라이볼을 쫓는 것이 '수비의 정석'이다. (10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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