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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 전복, 진시황제의 불사약
제주한라대학 호텔조리과
교수 오영주
<곽지리 패총에서 출토된 전복껍질과 반달칼>
옛날에 제주인에게 가장 귀중한 경제적 자산은 무엇이었을까? 중산간에는 말이요 바다에는 전복이 아니었을까. 말은 남성의 몫이라면 전복은 여성의 것이었다. 바다에서 해녀들이 내뿜는 ‘숨비소리’는 전복을 연상케 한다. 전복을 따기 위해 제주해녀들은 제주바다에서 동해안과 서해안으로 그리고 이억만리 중국과 러시아 바다로 숨비소리를 내며 물질을 나갔다. 전복을 따러 이렇게 온 바다를 휘집고 돌아다녀야만 했던 연유는 왜일까. 아마 전복이 고급식품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와 중국 그리고 일본에서는 전복을 최상의 식품으로 쳤다. 중국 진나라 서복 일행이 제주에 왔던 것도 전복 때문이고, 일본이 탐라에 조공으로 요구하게 된 것도 우리나라 조정에서 제주해녀들은 수탈하게 했던 것도 바로 전복 때문이었다. 사실, 전복은 동아시아 속에서 중요한 식문화 자원이었다. 국가 제의에 제수용 음식으로 왕들의 연회 시 술안주로 그리고 약용음식으로 널리 쓰였다. 특히 제주의 전복은 동아시아 전복 중에서 최고의 품질로 유명하다. 이렇듯 제주는 전복과 인연을 끓을 수 없다보니 그 내력 또한 깊고 유별나다.
제주전복, 언제부터 먹었을까
천연기념물 195호로 지정된 서귀포층에 200만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화석에 전복이 발견된다. 또한 애월읍 곽지패총에 전복이 압도적으로 많이 묻혀있고 이를 이용한 반달칼과 패륜이 출토되었다. 제주도에 처음 인류가 등장한 것은 약 4만년전 중기구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당시 제주인들은 용암동굴에 살면서 바다에 나아가 전복과 오분자기를 비롯한 패류를 채취하여 단백질 자원으로 삼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남긴 패총에서 발견되는 전복껍질은 전복을 식용으로 이용한 뒤 나머지는 생활도구로 쓰인 흔적이다. 특히 전복은 껍질은 가공하여 날카로운 반달칼의 재료와 패륜으로 쓰였다. 이로 미루어 전복의 식용역사는 제주의 인류출현과 함께 하였다고 본다.
전복, 진시황과 서복의 불사약 사연
<탐라순력도 ‘병담범주(屛潭泛舟)'>
<‘병담범주(屛潭泛舟)의 물질모습>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를 통일한(기원전 221년) 진시황(秦始皇)과 전복에 대한 설화는 서복(徐福)의 불사약(不死藥)과 관련지어 설명하기도 한다. 서복은 황제의 명을 받들어 동남(童男, 총각)ㆍ동녀(童女, 처녀) 3천명을 데리고 불사약을 구하러 봉래산(蓬萊山)을 향하여 떠났는데, 이 중하나가 전복이라고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봉래산을 제주도의 한라산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이는 전설적인 이야기인 까닭에 논란이 많다. 제주도에 진시황의 ‘서불’(서복)과 불사약의 이야기는 즉, “서불은 황해를 거쳐 제주시 조천포에 배를 대고 불로장생약을 구하고 서귀포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때 서귀포 정방폭포의 암벽에 ‘서불과차’(徐市過此, 서불이 이곳을 지나가다)라고 새겨놓은 글씨가 남아있다”는 전설이다. 이 불사약이 전복인지 약초인지는 역사적인 기록문이 아니고 전설이기 때문에 단정할 수 없다. 어떻든 전복은 한․중․일에서 최고급 음식으로 통용되었고, 특히 제주의 전복은 그 품질이 좋기로 정평이 나있었다. 제주의 해안 용암에 전복의 먹이가 되는 해초가 타지방 해안에 비해 해중림을 이룰 정도로 많고 그 종류도 다양하기 때문일 것이다.
전복, 어떻게 채취하였을까
300년전 조선시대 제주목사 이형상의 탐라순력도에 ‘병담범주(屛潭泛舟)’라는 부분도가 있다. 여기에 ‘잠녀(潛女)’라는 글과 함께 용두암 앞바다에서 해녀들이 조업하는 모습을 상세하게 그림으로 묘사하여 당시에 전복 따는 광경을 연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림에는 해녀복 ‘소중기’를 입고 자멱질하기(온 몸이 공중에 떠있는 모습)기, 해녀가 물속에 들어가 다리가 거꾸로 서있고 태왁 만 떠있는 것, 해녀가 물속에 들어가 태왁 만 떠있는 것, 한손에 채취기구를 들고 다른 한손에는 태왁을 잡고 헤엄치는 모습 등 그 광경이 다채롭다. 물론 물안경이 없었으므로 손으로 더듬어 작업하였을 것이다. 지금과 비교하면 장비만 현대화 되었을 뿐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모습이다. 전복은 다른 패류와는 달리 해심이 깊은 곳에 서식하기 때문에 아무나 채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영조대왕(1769년)도 ‘일찍이 탐라 어사(眈羅御史) 심성희(沈聖希)가 전복 캐는 모양을 그려서 바친 것을 보고 그 캐기 어려운 것을 알았다’고 하였다. 해녀는 물질능력에 따라 상군(上軍), 중군(中軍), 하군(下軍)의 순으로 구분한다. 상군은 수심 20m까지 잠수할 수 있는 기량이 뛰어난 해녀이다. 수심이 깊은 곳에 전복이 많기 때문에, 전복은 주로 상군들이 채취하였다. 이들은 전복 채취를 위해 우리나라 해안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청도, 대련) 블라디보스톡까지 원정 나갔다. 일본이나 중국에도 전복 따는 작업자가 있었으나, 제주해녀만큼 기량이 뛰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복 진상의 실태, 누구를 위하여 전복을 땄나
탐라전복은 삼국시대부터 진상품으로 알려졌는데, ‘삼국사기’(문자왕 13년, 503년)의 4월조에 진상품의 기록으로 '珂則涉羅所産'라는 문구가 등장하는데 가(珂)는 탐라의 산물이라고 하였다. 또한 일본의 엔기시키(延喜式, 927년) 주계식상(主計式上)의 기사에 탐라포(耽羅鮑)기 등장하는 데, 이는 제주도에서 잡은 전복이 일본의 교류에서 전해진 것이다. 당시 전복은 제주의 중요한 교역품이었으며 재화의 수단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특히 조선시대 제주는 국가에 중요한 물품을 공급하는 진상기지로서 역할을 했다. 당시 대표적인 진상물 중의 하나가 전복이었다. 전복의 진상을 위하여 포작인(鮑作人)과 잠녀(潛女)를 특별히 두어 전복을 따게 했으며 특별 관리품목으로 취급하였다. 이들은 잡은 전복은 진상품으로 조정에 바치면 중국에 진상물로 보내지고 조정의 물품으로도 쓰였다. 그뿐 아니라 관아에서 쓰일 것도 충당하게끔 강요받았기 때문에 이들의 고통은 말이 아니었다. 제주목사 이건(李建)의 ‘제주풍토기’(1629)에는 ‘해녀들이 갖은 고생을 하면서 전복을 따지만 탐관오리의 등살에 거의 뜯기고 스스로는 굶주림에 허덕인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세종 25년, 1460)에 제주목사로 부임한 기건(奇虔)은 제주(濟州)를 안무(按撫)하는데 백성들이 전복(全鰒)을 바치는 것을 괴롭게 여겨, 3년 동안 전복을 먹지 않았다(“按撫濟州民病所貢鰒魚亦三年不食鰒”)라고 하였다. 일제시대에는 일본인들의 어업권 침해와 수탈에 못 이겨 해녀들이 대일 항쟁(제주잠녀항쟁, 1931∼1932년)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이렇듯 전복을 따는 일은 고역중의 고역이었으며, 힘들여 채취한 전복은 더 이상 주민들의 것이 되지 못하고 지배자의 것으로 착취당하고 말았다.
전복의 영양과 효능
전복의 영양은 육질과 내장으로 구분하여 설명할 수 있다. 육질은 수분 (84%) 지방(0.4%) 단백질(13%) 당질(2.8%) 회분(2.1%)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시 말해 수분을 제외한 81%가 단백질이고 13%가 무기질로 이루어진 고단백 고무기질 식품이다. 동시에 저칼로리(61Kcal/100g) 식품에 속한다. 한편 내장은 수분(72%) 단백질(16.2%) 지방(4.8%) 당질(3.8%) 회분(3.2%) 등이다. 비타민 E와 카로테노이드 등 지용성 비타민과 비타민 B12의 함량이 높다. 육질에 비해 내장에 지방 당질 회분 그리고 비타민의 함량이 많은 것은, 전복의 먹이가 되는 해조류들(감태, 미역, 톳, 모자반 등등) 즉, 제주도 바다 속 용암에 온전히 부착하여 서식하고 있는 해조류를 먹기 때문이다. 전복은 이 해조류들을 소화 분해시켜 내장에 저장해 두므로 내장에는 체내 이용성이 높게 소화 분해된 생리활성 물질이 많다. 연두색의 카로테노이드에는 루테인(lutein ; 라틴어의 황색을 의미하는 “lutes”에서 유래)이라는 성분이 주를 이룬다. 최근 연구결과에 의하면 루테인은 눈의 망막세포의 정상화에 관여하는 물질로 밝혀졌다. 나이가 들면서 안구에 이 물질이 부족하면 시력이 저하되고 심할 경우는 실명하는 경우도 있다. 이 병은 노인들에게 흔히 발생하는 안구질환으로 황반변성이라 한다. 예로부터 전복을 석결명(石決明)하여 눈을 맑게 하고 밝혀준다 하였는데, 현대과학이 이를 증명한 셈이다. 루테인은 기름에 녹는 물질이기 때문에 내장을 먹을 때는 기름과 함께 먹으면 흡수가 잘된다. 그래서 전복내장을 먹을 때 참기름 소금장에 찍어먹거나 전복죽을 끓일 때 내장과 쌀을 참기름으로 볶는 것은 이러한 연유에서다. 그 외에도 내장에는 항산화성 성분(토코페롤, 셀레늄, 다당류, 타우린)이 많아 암을 비롯한 각종 성인병 예방과 노화방지에 더 없이 좋은 식품이다.
전복죽의 내력
오래전부터 제주의 해안마을에서 ‘잠녀’(해녀)들이 잡은 생전복을 관가에 진상용으로 바치거나 팔기 위해서 준비해 두었던 것, 또는 육지부로 나가기 위해 전 처리(건전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물(‘게웃’, 내장)을 곡물에다 넣고 쑤어 먹었던 것이 전복죽이다. 전복죽은 해녀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다. 단백질과 무기질이 많아 물질하면서 손실된 체단백질을 보충하는 보양음식이었다. 제주도 해안마을에서는 해녀들의 임산부의 산후 조리음식과 어린이의 이유식으로도 많이 쓰였다. 해안마을 속담에 “잠년 애기 나� 사흘이민 물에 든다”(해녀는 아기 낳아서 사흘이 되면 바다에 들어간다)라는 말이 있다. 산후 조리에 전복죽의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잠녀 애긴 일뤠만에 것 멕인다”(해녀 아기는 출생 후 7일 만에 이유식 먹인다). 태어난 지 7일밖에 안된 아기에게 이유식을 먹인다는 것은 해녀인 어머니가 젖먹이를 놔두고 물질하러 갈 수밖에 없는 처지이며, 젖 대신 단백질 영양이 좋은 전복 미음 국물이라도 먹인다는 뜻일 것이다. 또한 제주도 해변지역의 민간요법에서는 입맛이 떨어진 환자 또는 간질환자의 단백질 보충을 위한 식이요법으로 널리 쓰여 왔다. 지금도 부모가 병환으로 병원에 입원하면 전복죽을 쑤어다가 드리는 관행이 지켜지고 있다.
제주의 전복죽은 ‘게웃’이 반드시 들어가며 이로 인해 연두색의 빛이 나고 감칠맛이 강하다. 예전에는 자연산 전복으로 죽을 쑤었으나, 지금은 해녀들이 잡은 현장에서 수협이 일괄 구매하여 일본으로 수출하거나 고급 음식점에 고가로 판매되고 있다. 일반 대중음식점이나 가정에서는 양식산 전복으로 죽을 만들기 때문에 전복죽의 색과 맛이 변하였다. 육지전복죽과 제주도 전복죽이 다른 점은 내장이 반드시 들어가고 내장 특유의 색으로 인해 연두빛이 진하다는 점이다. 제주산인지 아닌지 그리고 자연산인지 양식인지도 이 색으로 알 수 있다. 또한 맛도 차이가 있는데 이는 내장의 내용물에 기인한 것이다. 먹을 때는 전복내장으로 담근 ‘게웃젓’과 함께 먹어도 좋다. 제주도 해안 관광지에서 전복죽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많이 있는데, 제주시에는 탑동과 도두항 인근지역에 전복죽 전문점이 분포하고 있고, 성산포 오조리 해녀마을에서는 해녀들이 공동체로 전복죽 전문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닭죽 또는 삼계탕에 전복을 넣어 끓인 죽들도 개발되어 판매되고 있다.
◎전복죽이 일품인 일출봉의 명소 [오조해녀의집]
△자가용: 제주시에서 동부일주도로(12번 국도)를 따라 조천->함덕->김녕을 거쳐 세화(약30~40분소요)에 가면 왼편으로 해안도로가 있고, 해안을 따라가면 종달해수욕장을 지나 우도가 바라다 보이는 성산포항에 달하기 바로 전
△대중교통: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서귀포 방면을 타고 성산포 일출봉 입구에서 하차해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위치
△전화번호 064-784-7789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오조리 3
△취급메뉴: 전복죽(10,500원), 자연산전복 1kg(대: 180,000원/ 중: 150,000원), 양식전복 1kg(대: 130,000원, 중: 110,000원)
△주변관광지: 일출봉(자가용 5분), 우도(선박 15분), 섭지코지(자가용 10분)
◎분위기와 전복맛이 어우러진 [어우눌]: 자가용: 제주공항에서 신제주 KCTV 사거리에서 연북로 방향 동쪽으로 500m 지점(10분 소요)
△전화번호 064-743-5131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2동 3101-1
△취급메뉴: 전복물회(15,000원), 전복장 정식(15,000원), 전복국이정식(18,000원), 전복뚝배기(15,000원), 전복코스요리(80,000∼35,000원/인)
△주변관광지: 러브랜드(성박물관, 자가용 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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