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다하누촌 한우고기
“주천면을 전국 최고의 고소득 관광마을로 개조할 작정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영월군 주천면 주천리 ‘다하누촌’ 대표 최계경(45)씨가 말했다. 섶다리가 아득히 바라다보이는 주천강변에서, 찬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말하는 그의 표정과 말투는 진지하고 단호했다. “가난하고 소외받아오던 이 마을을 부자 마을로 바꿔보겠단 얘깁니다.” 맛있는 고깃집으로 이름난 체인 음식점 계경목장을 일군 그의 고향이 바로 주천이다.
다하누촌이란, ‘싹 다 한우만 파는 마을’이란 뜻이다. “한우와 한우가 아닌 것의 맛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온데” “한우가 아닌 것을 자꾸 한우”라고 우겨 팔거나 섞어 파는 곳들이 많은 데서 비롯한 이름이다. 한미 에프티에이 타결 뒤 미국산 쇠고기가 몰려오면서 한우 농가에 비상이 걸렸지만, 최씨는 이것을 위기이자 새로운 기회로 여겼다. 지역 한우 농가가 생존할 길은 왜곡된 한우 유통구조를 바꾸고, 새로운 판로를 개척하는 것이었다. 다하누촌 사업은 이런 역발상에서 출발한 획기적인 지역 소득 증대사업이자 마을 개조 프로그램이라 할 만하다. 일부 타 지역의 시샘어린 시선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하누촌은 지난 8월초 문을 연 뒤 불과 몇 달 새 떠오르는 ‘새 시대 새 마을’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먼저 그 이유를 알아본 뒤, 값 싸고 질 좋고 입에서 살살 녹는다는 한우고기 맛을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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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보다 싼 한우 등심 1인분(300g)에 8천원!’ 다하누촌 홍보 전단에 적힌 문구다. 대도시의 웬만한 한우고깃집에서 1인분(150~200g)에 3만원 안팎을 부르는 게 예사인데 비하면 정말 싼 값이다. 엉덩이살, 사태, 불고기는 600g에 1만3천원, 육회는 300g에 8천원, 육사시미 600g에 1만6천원이다. “거짓말 안 보태구요, 시중의 3분의1 가격이래요.” “이렇게 장사 해도 이익이 남습니까?” “남아도 마이 남는대니까요. 이 한우가요, 워낙에 거품이 많았던 데다가요, 기냥 대량으로 팔아대니까요, 안 그런거 같애두요, 꽤 마이 남아요.” “고기 등급은 어떤가요?” “잡숴 보면 아르시겠지만요, 여선 싹 다 1등급 한우고기만 다롸요.”
다하누촌에선 영월과 제천 도축장에서 하루 평균 7마리씩(주말엔 20여마리)의 거세황소와 암소 등 한우를 도축해 온다. 도축이나 고기 등급과 관련해 물어보는 손님들이 워낙 많다 보니, 정육점 매장에 도축검사증명서과 등급판정확인서를 매일 게시한다. 쇠고기 등급엔 1~3등급과 등외가 있고, 1등급도 질에 따라 다시 세분돼 등급이 매겨지는데, 다하누촌에선 1등급 이상의 고기만을 쓴다고 한다. 본디 산지 시세는 한가지지만 불합리한 출하 유통구조, 등급이 매겨지는 과정에서 거품이 생기고 폭리가 따른다고 한다.
주천고등학교 축산담당 교사 이재원(34)씨가 말했다. “쇠고기의 맛 차이와 등급에 대해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거세황소와 비거세황소의 맛 차이는 있습니다. 거세한우가 덜 질기고 맛도 좋죠. 거세황소 30개월짜리는 암소와 육질, 맛이 같습니다. 황소를 거세하게 되면 소가 암컷처럼 돼 본래 하루 1kg씩 늘던 무게가 하루 600g밖에 늘지 않습니다. 뼈, 근육, 지방 순으로 살이 찌게 되죠. 피하지방이 먼저 쌓이고, 근막지방, 근내지방 순으로 쌓이게 됩니다. 지방이 골고루 퍼진 고기가 부드럽고 고소한 맛을 냅니다. 살이 제대로 오르고 마블이 좋아 최상등급(1++A)으로 치는 상강육의 맛이 빼어나기는 합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세부적으로 나눈 등급이란 건 사실상 큰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육량과 육질에서 좋은 고기를 가르는 기준은 되지만, 가격 차이가 시중에서처럼 나야 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유통과정에서 쇠고기값이 5~6배나 뜁니다. 등급이 세부적으로 매겨지는 과정에서 거품이 생기고, 그 부담은 소비자 몫이 되죠. 고기 맛은 결국 숙성의 문제일 뿐입니다. 즉시 잡은 고기가 맛있다는 얘긴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잘못된 겁니다. 육회는 별개로 치고요. 숙성이란, 도축 때 일어난 근육 경직을 풀어주는 과정입니다. 경직상태가 풀려야 제맛이 나지요. 20일 숙성육이 가장 맛있습니다. 제대로 숙성됐다면 암소와 황소 차이도 크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상입니다.”
어쨌든, 거품이 쫙 빠져 속이 시뻘겋게 드러난, 질 좋은 한우고기를 판다는 소문이 나면서 강원도 산골 영월 주천리 다하누촌엔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평일엔 보통 2천명, 주말엔 4천명이 좁아터진 면소재지에 몰려와 북적댄다. 지난 여름 휴가철엔 번호표를 받고 20~30분씩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때도 있었고, 고기가 떨어져 기다리던 손님들이 항의하는 사태를 빚기도 했다. 정육점과 가맹 식당들만 북적대는 게 아니다. 주말이면 여관도 꽉꽉 차고 동네 다방도 들썩이며, 슈퍼도 바빠진다. 동네가 붐비면서 다 바빠지자 쌀집도 잘 되고 닭집도 잘 되며 호프집도 담뱃집도 잘 된다는 게 주민들의 이구동성이다. 예전엔 찻길 쪽 가게들만 그런대로 장사해 먹고 사는 편이었지만, 요즘은 시장 뒷골목에 다하누촌 가맹점들이 줄지어 들어서고 관광객이 몰리면서, 동네의 중심거리가 역전되는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 쇠고기 하나로 마을 전체가 살아나고 있는 셈이다.
다하누촌 쇠고기는 사가지고 가도 되고, 부근 식당에서 구워먹어도 된다. 전체 면 주민 3천8백명. 이 중 8백여명의 주민이 사는 면소재지 주천리 중심거리에 다하누촌 이름으로 한우고기를 파는 정육점이 3곳 있다. 다하누촌 간판을 내건 식당들은 17곳에 이른다.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서 다하누촌 가맹 식당으로 가져가면, 1인당 2천5백원씩의 야채와 반찬 세팅비를 내고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다. 상추, 깻잎, 풋고추, 고추절임, 김치, 동치미, 마늘 된장 등이 차려지고 불판이 제공된다. 모듬버섯과 양파(3천원), 된장찌개(2천원)도 따로 주문해 먹을 수 있다. 살짝 익혀 먹는 고기 맛이 과연 신선하고 부드럽고 씹을수록 고소하다. 값이 싼 까닭에 자제하지 않고 먹다보면 지나치게 포식을 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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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육점에선 초기엔 쇠고기를 각 부위별로 구분해 팔았는데, 요즘은 조금씩 섞은 모듬 쇠고기를 판다. 인기를 끄는 특정 부위만 먼저 동이 나고 뒤에 온 사람들의 불만이 비등하자, 파는 방식을 바꾼 것이다. 등심 안심 제비추리 안창살 토시살 치맛살 갈빗살 등을 모아 ‘한우황소 반마리’ 300g 8천원, 한 마리 600g 1만6천원, 한우 암소 반마리 300g 1만4천원, 600g 한 마리 2만8천원 식으로 정리해 골고루 팔면서 골고루 맛볼 수 있게 했다.
다하누촌 가맹 식당들은 가맹비도 없이, 고기 사들고 오는 손님들에게 자리와 불판, 기본 반찬 제공비와 술 판매비로 짭짤한 소득을 올리고 있다. 다하누촌 가맹식당 장수점을 운영하는 최주형(56)씨가 말했다. “여 동네 사람덜은요, 삼겹살 먹어본 지 오래래요. 싹 다 소고기만 먹으니까네, 딴 고기 먹을 새가 없는 거래요. 살들 찔까봐 들 걱정이 많애요.”
손님들의 추가 주문을 받아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들고, 싱싱야채 지나 만물상회 지나 큰길 건어 담뱃집 지나 식당으로 돌아오는 최씨의 걸음은 나는 듯이 가볍게 보인다. “이래 신나게 일하는 게 증말 오랜만이래요.” 가맹점들을 대상으로 매달 심사를 벌여 친절상, 홍보상, 노력상 등 상도 준다. 친절상이 제일 큰 상으로 상금도 따라붙는다. 다하누촌에선 한편, 걱정거리도 있다. 소비가 늘면서 영월군에선 소가 모자라 횡성, 평창에서 조달해 온다. 부대사업으로 계획하고 있는 사골공장까지 운영하려면 6만마리는 먹여 기를 수 있어야 하는데 당장 소가 모자라는 형편이다. 그러나 최계경 대표의 포부는 더 크다.
“면소재지 안의 다하누촌 가맹식당을 곧 50곳으로 늘릴 계획입니다. 면 전체를 새로운 관광촌으로 바꿀 겁니다. 하루 도축 50마리까지가 목표입니다. 한우가 살고 동네가 살고 다른 지역 한우농가도 살고 도시민들도 흐뭇해지는 것, 이게 살 길 아닙니까.” 최씨는 마을의 연매출액 목표를 2천억원으로 잡고 있다. 2008년엔 한우박물관도 개설하고 대규모 한우농장도 마련할 계획이다. 한우 말고도 지역 특산물을 이용한 상품 개발도 이미 진행중이다. 주천면 일대에서 생산되는 콩을 이용해 즉석 목판두부, 흑미두부, 표고두부 등 7~8가지 두부를 ‘섶다리 콩터’라는 상표로 상품화했다. 청국장도 만들고 두유도 만든다. 두유버거, 콩샌드위치, 커피에 프림 대신 두유를 넣은 두유라떼를 개발했고, 두유베리라는 이름으로 두바이에 두유전문점 지점 계약을 하는 등 국외 시장 개척도 시작했다.
그의 각별한 고향 사랑은 이미 마을에서 숱하게 펼쳐온 행사들로 주민들의 호응을 얻어 왔다. 해마다 빼놓지 않고 재현해 온 연원 깊은 쌍섶다리와 이를 기반으로 마을 사람들의 대대적 참여 아래 펼쳐지는 쌍섶다리 축제, 지역 특산물 농가를 대상으로 한 두부, 메주 체험마을 체계화, 감자 축제, 주천강 민물고기와 다슬기 등을 내세운 강변 체험 행사 등 최근 몇 년 사이 영월군 주천면에서 벌어진 갖가지 행사들은 대부분 그의 머리에서 구체화되고 그의 손을 거쳐 꾸려진 것들이다. 주민들이 그를 “가난한 마을을 단박에 일으켜 세운 아이디어꾼”으로 치켜세우는 건 당연해 보인다. 그의 이런 고향 사랑도 초기엔 주민들로부터 오해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당신, 정치 할라구 기반 닦는 거지? 그렇지?” 그때 최씨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아이래요. 기양 고향 좋아서 하는 일이래요.”
<영월 섶다리마을 다하누촌> 영월군 주천면소재지 중심에 다하누촌 정육점 매장 3곳과 17곳의 가맹식당들이 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문을 연다. 특선메뉴로 분류되는 육회나 육사시미는 세팅비가 반근 5천원, 한근 1만원으로 좀 비싸다. 양념을 해야 하고 곁들여지는 게 많기 때문. 인터넷 주문할 수도 있다. www.dahanoo.com (033)372-0121.
<가는 길> 수도권에서 영동고속도로 타고 강릉 쪽으로 가다, 원주 만종분기점에서 안동 방향 중앙고속도로로 우회전해 내려간다. 신림·주천나들목에서 나간다. 88번 지방도를 따라 주천면으로 간다. 주천교 옆 주천네거리에서 좌회전해 다리를 건너면 주천면소재지다.
<주변 볼거리> 수주면 무릉리의 요선정, 정자 밑 요선암, 5대 적멸보궁 가운데 하나인 법흥사. 주천강 쌍섶다리, 판운리 섶다리, 한반도지형 선암마을, 책·곤충·민화박물관, 단종의 한이 서린 청령포, 장릉 등.
글·사진/이병학(한겨레 기자·<놓치고 싶지 않은 우리땅 참맛>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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