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경협 회관에서 열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41차 세미나.
기업거버넌스포럼은 증권사 관계자, 교수, 변호사 등 증권 관련 전문가들이 만든 단체로, 소액 주주 보호를 위해 상법을 고쳐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자고 주장해왔다.
이날 세미나에서 주제 발표에 나선 사람은 이용우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이 의원은 지난 21대 국회에서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었다.
이 전 의원은 이날 이사의 충실 의무 확대에서 한발 더 나가 증거 개시 제도(디스커버리)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디스커버리란 소액 주주가 기업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진행할 때 필요한 증거를 재판 전에 요구해서 받는 일종의 증거 공유 제도다.
소액 주주가 기업과 소송할 때 더 많은 정보와 증거를 미리 확보할 수 있게 돕자는 것이다.
대주주 견제와 소액 주주 보호를 앞세우는 증권가의 행동주의 전문가들이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과 연합해 정치 세력화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경제 공약은 ‘주가지수 5000 시대’로 요약된다.
그런데 이 후보의 주식시장 활성화 대책 총 9개 항목 중 절반 이상인 5개가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 내놓은 것이다.
기업들은 1400만 주식 투자자들을 등에 업고 기업을 압박하는 행동주의 세력에 대해 “과거 기업을 적폐로 몰았던 참여연대의 그림자가 비친다”며 불안에 떨고 있다.
정치권이 개인 투자자 표를 얻기 위해 기업 경영에 부담을 주는 방향으로 규제를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자산운용사 대표, 증권사 전 대표, 경영대·법대 교수, 변호사 등 주식시장에서 행동주의를 표방하는 전문가 100여 명이 모인 단체로, 코로나 직전인 2019년 결성됐다.
포럼은 조기 대선이 시작되자 △상법 개정을 통한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 도입 △자사주 소각 의무화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 ‘새 정부에 바라는 7가지 제언’을 내놨고, 대부분 민주당 대선 공약에 반영됐다.
포럼을 이끄는 핵심 인사들은 인적 네트워크를 동원해 정치권을 정밀 공략하고 있다.
현 회장인 이남우 연세대 객원교수는 서울대 82학번 동기인 이용우 전 민주당 의원과 가까운 사이다.
부회장인 천준범 변호사는 같은 변호사 출신인 민주당 이소영·오기형 의원 등과 소통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전임 회장인 김규식 변호사도 서울대 법대 동문인 민주당 김승원 의원 등을 통해 주주 행동주의 어젠다를 전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포럼 측은 “정치색에 대한 논란은 오해”라는 입장이다.
포럼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 초기 국민의힘 측에도 한국 증시의 저평가 해소를 위해서는 밸류업(기업 가치 제고)이 필요하다, 주주 가치 제고가 필요하다고 숱하게 얘기했고, 실제 아이디어가 반영돼 밸류업 프로그램으로 성과가 나기도 했다”며 “그러나 정부 중반부로 갈수록 윤 정부는 기업들의 얘기에 치우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정치권 양쪽에 똑같은 어젠다를 제시했는데 보수 진영은 받아들이지 않은 반면, 중도 확장이 급한 이재명 후보의 민주당 측에서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포럼에는 강성부 KCGI 대표,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 최준철 VIP자산운용 대표,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 등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대 펀드를 굴리는 자본시장 스타들도 대거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남우 회장은 “우리는 특정 정당과 연합하지 않는 순수 전문가 집단의 모임으로 참여연대나 경제개혁연대와는 결이 다르다”면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주장하는 단체라 그 이상의 정치적 목적은 없다”고 했다.
주주의 권리뿐만 아니라 자본시장에서 기업의 투명성과 사회적 책임을 독려하는 단체가, 정작 자본시장에 큰 파문을 일으킨 MBK의 홈플러스 인수 후폭풍에 대해선 아무런 논평조차 내지 않으며 모른 척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 대기업들의 대주주를 비판해온 기업거버넌스포럼 측이 펀드라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MBK를 감싸기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포럼은 “MBK만 봐준다는 것은 오해”라고 선을 그었다.
MBK가 홈플러스를 왜 비싸게 샀고 왜 함부로 구조조정을 했는지, 그래서 어쩌다 회사를 어렵게 했는지 등은 모두 홈플러스 주인인 MBK의 경영 실패와 관련된 이슈일 뿐, 다른 주주에게 손해를 끼치는 일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국내 주식시장에서는 일반 투자자들이 투자한 돈을 마치 ‘공돈’처럼 써버린 좋지 않은 선례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기업들을 견제하는 주주 행동주의는 필요하다는 게 중론이다.
다만 주주 이익만을 최우선시한 주주 자본주의는 오히려 기업의 성장과 투자 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장하준 영국 런던대 교수는 지난달 22일 국회 강연에서 “미국의 금융시장은 완전히 기생충이 됐다. 미국 기업들의 이윤은 고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통해 90~95%가 주주에게 환원됐다”면서 “이렇게 투자를 안 하니 생산성은 떨어지고 외국과의 경쟁에서 밀리는 악순환이 계속됐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한국에서도 재벌 총수들의 전횡은 분명히 큰 문제이고 주주의 목소리를 강화시킬 필요는 있지만, 그걸 잡는다고 완전히 반대쪽으로 가서 주주 환원율이 90% 정도가 되면 우리도 끝나는 것”이라며 “국내 제조업 등 생산적인 기업들이 주주들의 현금 인출기가 되는 순간 우리나라는 끝”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윤의 10% 이상 자사주 매입을 못 한다든지 이런 명확한 선이라도 만들어 놓아야 한다”고 했다.(250516)
☞주주 행동주의
투자 기업에 배당 확대나 지배 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등 주주권을 적극 행사하고 경영에 참여하면서 수익을 추구하는 투자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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