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저녁 어두컴컴한 울릉도 저동항. 
5년 전만 해도 오징어잡이 배 엔진 소리로 흥이 났을 항구에는 ‘출어’를 포기한 배 100여 척이 빼곡하게 정박해 있었다. 
오징어는 불빛을 좋아해 오징어잡이 배는 저녁에 출항한다. 
9~10월 오징어철이면 어선 120여 척이 불을 밝히고 20㎞ 길이로 쭉 늘어서 오징어를 낚는다. 
대낮 같은 밤바다가 울릉도 장관이었는데 이젠 보기 어렵게 됐다. 오징어 어획량이 3년 새 30분의 1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경북 울릉군 저동항에서 오징어잡이 배 한 척이 출항하고 있다. 
9~10월 오징어 철이 되면 어선 120여 척이 불을 밝히고 오징어를 낚았는데 요즘은 어획량이 크게 줄어 하루 8~9척만 바다로 나간다.>

 


이날 밤 출항한 배는 9척. 그중 오징어잡이 45년 경력의 김철남(66)씨 배에 올라탔다.

“어휴, 오늘은 제발 운이 좋아야 할텐데… 요즘 하루에 열 마리도 잡기 어려워.”

배가 향한 곳은 저동항에서 북쪽으로 2.5㎞ 떨어진 바다다. “여기가 조류가 약해서 오징어가 쉬어가기 좋은 곳이에요.”

엔진을 끄고 배를 고정시킬 닻을 내렸다. 스위치를 올리니 1500와트짜리 집어등 54개가 일제히 불을 밝혔다. 눈이 부셔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였다.

“윙윙 덜컥 덜컥.”

배 양쪽에 달린 자동 조상기(釣上機) 10대가 기차 달리는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얼레(릴)처럼 생긴 조상기는 쉴 새 없이 낚싯줄을 내렸다 올렸다 반복했다.

조업 3시간째. 조상기만 돌아갈 뿐 오징어는 감감무소식이다. 김씨가 빈 낚싯줄을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넓은 바다가 텅 비었나.”

다급해진 그는 선미(船尾)에 있는 수동 조상기를 잡고 직접 낚싯줄을 내렸다. 
직접 낚싯줄을 올리고 내리기를 반복한지 30여 분. 드디어 오징어 한 마리가 물을 뿜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오후 11시 30분. 출항한 지 3시간 40분 만에 처음 보는 오징어였다. 길이는 25㎝, 어른 손목 굵기만 한 오징어였다.

“이놈이 그 귀한 오징어네!” 기자가 환호성을 질렀지만 김씨는 씩 웃고 만다.

자정을 훌쩍 넘긴 27일 오전 2시. 6시간 동안 잡은 오징어를 모아보니 달랑 3마리였다. 
‘만선(滿船)의 꿈’은 기자만의 희망이었다. 
맨 먼저 잡은 1마리를 빼고 나머지 두 마리는 길이가 17㎝밖에 안되는 잔챙이였다. 시장에 내다팔려면 길이가 25㎝는 돼야 한다고 한다.

 

 


<지난 27일 새벽 김철남(오른쪽) 선장이 6시간 조업해 잡은 오징어 3마리를 바라보고 있다.>

 

이날 들인 기름값은 18만원인데 고스란히 적자를 봤다. “100마리는 잡아야 배 유지비는 나오는데... 오늘따라 갈매기 떼만 몰려와 시끄럽게 우네.”

기자가 북쪽으로 더 멀리 나가보자고 하니 김씨는 “기름값 내다버릴 일 있소? 여기가 5년 전만 해도 하룻밤에 오징어 1000~2000마리 잡던 곳이요” 쏘았다.

김씨가 울릉도에서 92㎞ 떨어진 독도 인근까지 나간 홍인술(66) 선장에게 무전을 쳤다.

“여기는 오징어가 없다. 얼마나 잡았노?” “이틀 밤 세웠는데 4마리밖에 못 잡았다. 나 우짜노. 이대로는 집에 못 간다.” 김씨 얼굴이 까매졌다.

이날 밤 저동항을 나선 9척이 잡은 오징어는 전부 16마리였다.

적자를 보면서도 바다로 나가는 이유를 물었다. 
김씨는 “1년에 60일은 조업을 해야 어민으로 인정받아 정부 지원금을 받고 폐선할 수 있다”며 “적자는 쌓이는데 죽을 맛”이라고 했다.

새벽마다 저동항 수협 위판장은 오징어가 산더미처럼 쌓였지만 지금은 텅 비었다. 
울릉도 오징어 어획량은 2020년 527t에서 지난해 17t으로 3년 만에 30분의 1로 줄었다.

울릉도 경제도 직격탄을 맞았다. 울릉도 인구 8800여 명 중 오징어 어민과 중매인 등을 더하면 오징어로 먹고사는 사람이 200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식당에서도 오징어를 찾아보기 어렵다. 저동항에서 오징어 내장탕 식당을 하는 이동순(67)씨는 “산오징어 한 마리가 3만원이 넘어 내장탕을 낼 수가 없다”고 했다.

오징어철에는 오징어잡이 배 한 척당 20~30명씩 인부가 탔는데 인부들도 일자리를 잃었다. 
울릉어업인연합회 관계자는 “오징어잡이 경력이 수십년인 갑판장들도 공사일 등을 하며 근근이 버티고 있다”고 했다.

오징어 어획량이 크게 줄어든 이유에 대해 어민들은 수온 상승과 중국 어선의 남획이 원인이라고 했다. 
오징어가 살기 적당한 수온은 12~18도이지만 26일 밤 울릉도 인근 바다의 수온은 21도였다.

울릉어업인연합회 관계자는 “중국 어선들이 동해 북한 수역까지 와서 우리나라 배보다 7배는 밝은 불을 밝히고 그물을 이용해 오징어를 싹쓸이하고 있다”고 했다.(24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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