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 자녀 둘을 키우는 아빠 김모(34)씨는 지난 4월부터 일터가 집으로 바뀌었다.
원래 하던 분식집을 그만두고, 회사에 다니는 아내를 위해 전업으로 내조를 시작한 것이다.
2년 전 첫째 아이가 태어날 땐 아내가 육아휴직을 썼는데, 8개월 전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서 아내와 ‘집안일 교대’를 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김씨는 “아내의 휴직 기간이 길어지며 ‘경력 단절’에 대한 걱정이 많아졌고, 반대로 나는 10년쯤 요식 업계에서 일하느라 지쳐있었던 상황이라 서로가 행복해지기 위해 역할을 바꿨다”며 “아이들과 하루 종일 놀아줘야 하는 집안일이 쉽지 않지만, 퇴근한 아내와 아이들에게 따뜻한 저녁밥을 차려주면서 이전에 못 느꼈던 행복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육아나 가사를 이유로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국내 ‘남자 전업주부’가 올해 23만명을 넘었다.
한때 여자의 역할이란 인식이 강했던 육아와 가사를 양성(兩性)이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된 데다 경기 둔화로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갖지 못한 남성들이 일하는 아내 대신 살림을 맡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1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9월 경제활동을 하지 않은 남성 가운데 ‘육아’ 또는 ‘가사’ 때문에 경제활동을 하지 않은 사람은 약 23만2000명으로 집계됐다.
한 달 전(22만7000명)에 비해 5000명, 작년 9월(21만1000명)에 비해 2만1000명 늘어난 규모다.
남자 전업주부는 취업자로 분류되는 육아 휴직자는 제외한 수치다.
말 그대로 전업으로 집안일을 돌보는 남성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남자 전업주부는 남편 주부, 주부 아빠, 남자 안사람 등으로도 불린다.
1999년부터 통계 집계를 시작한 남자 전업주부는 2002년(31만8000명)까지 30만명을 넘었다.
1997년 말 외환 위기로 대기업들이 잇따라 쓰러지면서 비자발적으로 정리해고를 당해 집안일을 하던 남성들이 많았던 시기다.
하지만 외환 위기 후폭풍이 가신 2003년에는 이 숫자가 8만7000명으로 급감했다가 서서히 늘어 21년 만에 2.7배로 불어난 것이다.
올해 주부 아빠 수는 2002년 이후 22년 만에 가장 많다.
전문가들은 “IMF 사태 때는 뜻하지 않게 집안일을 돌봤던 남자들이 많았다면,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가사와 육아를 둘러싼 양성 평등 의식이 강해지면서 집안일을 돌보려는 남성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박윤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들어 30대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급증하고 있는 사정도 남자들이 ‘집안일’을 전업으로 삼을 수 있는 배경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내수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오랜 기간 일자리를 잡지 못해 전업주부로 돌아선 남편이 늘어난 것도 남편 주부 증가의 원인으로 꼽힌다.
최근 늘어나는 남자 전업주부들은 행복의 기준을 사회적인 성공이나 많은 돈을 버는 것보다 ‘화목한 가정’에 두는 경우가 많다.
3년 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 둘을 돌보고 있는 주부 아빠 박모(35)씨는 “처음에는 남자가 집에만 있는 것이 어쩐지 떳떳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적응이 되니 생각보다 적성에 맞았다”며 “회사 일에 지쳐 있던 예전과는 달리 아이들과도 훨씬 친해져 이제는 ‘육아 만렙(육아 기술이 최고 레벨에 다다른 것을 뜻하는 신조어)‘을 찍은 진정한 아빠라는 자부심과 보람을 동시에 느낀다”고 말했다.
이들은 자녀들이 다 크고 난 뒤엔 경제활동을 다시 시작할 계획도 갖고 있다.
박씨는 원래 건축 사무소에서 일했는데, ‘나중에 프리랜서로라도 일해야겠다’는 생각에 퇴직하기 직전에 건축사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한다.
분식점을 그만둔 김씨도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면 음식 배달 일이라도 다시 시작할 각오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24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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