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김은지(가명·9)양은 군것질을 입에 달고 산다. 
아빠는 돈벌이를 하느라 바쁘고, 베트남 출신 엄마는 우리말이 서툴러 진솔한 대화를 나누지 못한다. 
김양 몸무게는 92㎏(키 142㎝). 당뇨 전 단계에 지방간과 고지혈증이 있지만 편의점을 뻔질나게 드나들고 어른들 몰래 숨어서 먹는다. 
얼마 전부턴 생리를 시작해 병원을 찾았다. 김양을 진료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비만으로 성조숙증이 발생한 것”이라며 “먹는 것과 운동량 등이 조절 안 돼 살이 찐, 어린이 비만에서 볼 수 있는 최악의 경우”라고 했다.


아이들이 살찌고 있다. 
대한비만학회가 최근 발표한 ‘2023 비만 팩트시트(2023 Obesity Fact Sheet)’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소아·청소년 5명 중 1명(19.3%)이 비만이다. 
최근 10년간(2012~2021년) 소아·청소년 비만 유병률(지역 인구 대비 환자 수 비율)이 남녀 모두 증가했다. 
남아는 2.5배(10.4% → 25.9%), 여아는 1.4배(8.8% → 12.3%)로 늘었다. 특히 학령기 아동 가운데 많다.

 

 

<비만 어린이 캠프에 참가해 안간힘을 쓰며 살빼기 운동을 하는 아이들. 
지난 2007년 8월 2일 오후 군포보건소와 군포청소년수련관에서 함께 마련한 '2007 어린이 건강캠프'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즐겁게 운동을 하고 있다.>

 


문제는 부모 학력이 낮을수록, 가구 소득이 적을수록, 농촌에 살수록 소아·청소년의 비만 확률이 높아져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깊어지는 추세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김현창 교수 연구팀이 지난 5월 질병관리청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 매년(2006~2020년) 참여한 중·고등학생 82만명의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사회경제 수준 지표 중 청소년 비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아버지 학력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어머니 학력, 가구 소득, 거주 지역 순이었다. 
연구팀은 “소아·청소년에서 비만이 빠르게 증가하고 사회경제적 격차가 커지는 추세는 심각한 문제”라며 “학교와 지역사회가 앞장서서 건강 격차의 근본 원인인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줄이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다문화 가정이 급속도로 늘고 있는 점도 비만과 연계해 주의해서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상대적으로 소득이나 교육 기회가 적은 경우가 많은데 보호자가 자녀에게 관심을 쏟는 정도도 낮아서 아이들이 쉽게 살찔 수 있다는 것이다. 
2020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청소년의 비만 관련 요인에 대한 다층 모형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가족의 소득이 낮을수록, 거주 지역에 편의점이 많을수록 비만율이 높은 경향을 보였다. 
실제로 저소득층의 경우 지자체가 주는 아동 급식 카드를 활용해 아이들이 끼니를 해결하는 경우가 흔한데, 집 근처 편의점에서 고열량 군것질에 익숙해지는 사례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뚱뚱하면 성인이 됐을 때도 비만할 확률은 70~80% 정도로 높은 편이다. 
몸 안에 지방이 쌓이면 호르몬계가 교란돼 성호르몬이 만 8~9세 이전에 분비되고 성조숙증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비만과 소득 격차, 불평등은 한 줄로 묶여 있는 구조여서 따로 떼놓고 보면 해결이 안 된다”고 했다. 가난과 비만을 함께 대물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건정책 연구 ‘소아 비만과 학업성과의 관계’에 따르면 거의 대부분 국가에서 어린 시절 체질량지수가 높을수록 학교 성적이 낮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성인기에 직업 전망 및 소득 격차와 같은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


한편 정부는 9일 신체뿐 아니라 정신·정서적으로도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돕기 위해 학교 내에 통합 지원 센터를 만드는 ‘학생 맞춤형 마음건강 통합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청소년(12~17세) 5명 중 1명(18%)은 정신장애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24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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