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복을 사흘 앞둔 지난 12일 점심 시간.
‘보신탕 거리’로 유명한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의 한 가게엔 손님이 3명뿐이었다.
45년 동안 보신탕집을 운영해왔다는 윤모(73)씨는 “개 식용 금지법의 위력을 실감한다”고 했다.
지난 1월 국회에서 통과된 이 법률은 식용 목적으로 개를 사육·도살·유통·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처벌은 2027년까지 유예되지만 윤씨는 “3년 시한부 인생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대목인데… 텅 빈 보신탕 골목 - 지난 12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의 보신탕 골목. 무더위에도 한산한 모습이다.>
개고기 도매점을 운영 중인 A씨는 담배를 피우며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A씨는 “복날이나 다른 날이나 사람이 없기는 매한가지”라고 했다.
청량리역 인근에서 50년 넘게 보신탕집을 해온 배모(75)씨도 “예전 복날엔 직원을 5명까지 고용했는데 올 복날은 집사람과 나 둘이서도 일손이 남을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개고기 마니아’들이 복날 보양(保養)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개고기가 떠난 자리를 염소 고기가 채웠다.
14일 오후 2시. 서울 강남구의 한 염소 전문점에서 점심을 먹은 손님들이 “잘 먹고 갑니다”라며 배를 툭툭 쳤다. 30개가량 식탁은 손님들이 비우고 간 그릇으로 가득했다.
이정교(76·경기 김포)씨는 “옛날엔 개고기를 더 즐겼는데 금지법도 통과됐고 사회적 인식도 변했으니 먹기가 좀 그렇다”며 “염소 고기도 담백하고 기력 보충에도 좋아 자주 먹으러 다닌다”고 했다.
<서울 강남구 한 염소 고깃집의 염소탕.>
염소 고기 업주들은 개고기 금지법 통과에 따른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11년째 이 염소 고기집을 운영해온 신동수(57)씨는 “한 달 전부터 복날 예약 문의가 몰려와 다 마감했다”고 했다.
과거 복날에도 예약하는 손님이 거의 없었던 것과는 다른 풍경이다.
신씨는 “개고기를 먹지 말라니 염소 고기를 먹으러 왔다는 손님이 많다”며 “개고기 특유의 식감과 감칠맛이 유사하다는 평가가 많다”고 했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30년 넘게 흑염소 전문점을 운영 중인 성모(66)씨 역시 “보신탕과 염소탕은 레시피도 거의 같다”며 “개고기를 즐겨 먹던 손님들이 대거 유입되고 있다”고 했다.
농림축산식품부 통계를 보면, 국내 사육 염소 숫자는 2010년 24만마리에서 2022년 43만마리까지 늘었다.
호주에서 수입되는 염소 고기도 2019년 1250t에서 2023년 5995t으로 증가했다.
호주축산공사는 ‘한국의 개고기 금지’를 자국 염소 고기 수출의 호기로 판단한다는 보고서까지 냈다.
정부 관계자는 “개고기 금지 논란이 뜨거워지면서 기존 개고기 업자들도 염소로 상당수 갈아탔다”고 했다.
정부는 다음 달까지 전국 5625곳의 개 사육 농장과 음식점 등의 폐업 계획서를 받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개고기 업계 일각에선 “5년에 걸쳐 마리당 200만원을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폐업 지원에만 수조원가량의 국민 세금이 들어갈 수도 있다는 전망도 있다.(24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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