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알지식 Q]韓, 언제 세계박람회 참가했나
세계박람회는 영국의 산업 박람회에서 출발, 1851년 런던에서 처음 열렸다.
서구 열강들은 세계박람회를 주도하면서 자국 첨단 기술 소개의 장(場)으로 삼아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세계박람회에 참가했을까?
1893년 시카고박람회가 시작이다. 당시 조선은 첫 공식 참가단을 파견했다.
서방 세계에 조선을 알리라는 고종의 지시를 받고, 정3품 참의내무부사 정경원은 통역원과 국악사 10명 등을 이끌고 24일 동안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넜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11월 22일 영국 런던에서 '부산엑스포' 택시를 통해 '2030 부산세계박람회(엑스포)' 막바지 유치전을 지원했다.
엑스포 유치를 응원하는 메시지와 부산의 명소를 표현한 일러스트로 전면 도배된 이 차량은 버킹엄궁, 웨스트민스터, 런던아이, 피카딜리 광장 등 런던 시내 곳곳을 누볐다.>
조선의 첫 전시 규모는 25평(83.5제곱미터) 크기로 무척 작고 초라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일본관은 면적만 한국관의 40배가 넘는 대규모였을 뿐 아니라, 일본 목조 건축부터 길거리까지 재현해냈을 정도로 뛰어난 기술을 자랑했다.
반면 한국관엔 의복과 도자기류 정도의 전시품이 전부였다.
당시 뉴욕헤럴드 기자 존 코커릴이 “싸구려 쓰레기(junk)를 실어 왔다”고 했을 정도다.
그러나 정경원은 참가국 귀빈들을 모아 고종의 42세 탄신일 기념으로 연회를 열고 손님을 접대하는 등 적극적인 외교 활동을 펼쳤다.
귀국 후 고종에게 “조선의 물품을 구경하려는 사람이 무척 많아 붐볐다”고 선의의 거짓말을 한 기록도 고종실록에 남아 있다.
두 번째인 1900년 파리박람회엔 프랑스 초청으로 참가했고, 전시관 구색도 갖췄다.
당시 유럽 대사였던 민영환이 참가단 대표였다.
고종의 어진과 금속활자 직지, 한지, 나전칠기 등을 전시했다.
이것이 조선 이름으로 참가한 마지막 세계박람회였다.
1905년부터는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조선 이름으로 국제박람회에 참가할 수 없게 돼서다.
대한민국 이름으로 다시 참가하게 된 건 1962년 시애틀 엑스포부터다.
98평(324㎡) 크기 전시관을 짓고 6·25 전쟁을 극복했음을 국제 사회에 알렸다.
1993년엔 대전엑스포를 열고 개최국에도 이름을 올렸다.(24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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