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피디아] 시상대 없는 종목이 있다


조정 종목, 순위보다 과정 존중… 평지에서 나란히 서 메달 받아

 



올림픽 시상대는 모든 스포츠 선수들이 꿈꾸는 곳이다. 
특히 금메달을 따내고 시상대 맨 위에서 국기를 보면서 흘러나오는 국가를 듣는 순간 눈물을 흘리는 선수가 많다. 

여자 골프 박인비는 숱하게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음에도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뒤 “올림픽 시상대에서 처음 부른 애국가가 내 생애 최고였다”고 하기도 했다.


올림픽에서 단 한 종목만이 이 영광의 무대인 시상대가 없다. 바로 조정이다. 
조정은 높낮이가 있는 시상대 대신 도착지 근처 평평한 땅에서 시상식을 갖는다. 땅 대신 잔디밭일 때도 있다. 
선수들은 메달 색과 소속 국가에 관계없이 같은 눈높이에서 얼싸안으며 서로 축하한다.

 

 

<2020 도쿄 올림픽 조정 여자 쿼드러플 스컬 경기 시상식 모습. 금·은·동을 딴 폴란드와 중국, 호주 선수들이 평평한 땅에 서 있다.>



이는 오래된 조정의 문화다. 조정은 예의범절을 무엇보다 가장 중요시하는 종목이다. 
그래서 이겨도 과하게 기뻐하지 않고, 패자를 함께 땀 흘린 동료로서 존중해야 한다. 
각국 조정협회는 모두 해마다 ‘행동 강령(Code of conduct)’을 발표한다. 
룰북(rule book)이나 규정을 발표하는 다른 종목과는 다르다. 
강령에는 “다른 참가자의 권리, 존엄성 및 가치를 존중하고 차별하지 않는다”는 내용 등이 적혀 있다. 
김상탁 대한조정협회 전무는 “조정은 많게는 8명이 모든 관절을 이용해 같은 움직임을 펼쳐야 하는 종목이다. 
우리 팀만큼이나 상대도 온 힘을 쏟아냈다고 믿고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다른 팀에 패배감을 주지 않기 위해 메달을 주머니에 숨기는 문화도 있다고 한다.


이런 문화는 조정의 기원과도 관련이 있다. 
역사상 첫 조정 경기는 1829년. 영국 런던 템스강에서 케임브리지대와 옥스퍼드대가 보트로 펼친 맞대결이었다. 이후 조정은 주로 세계 명문대생 사이에서 인기를 끌면서 미국 하버드대와 예일대에도 퍼져나갔다. 
명문대생이 즐긴다고 유명해지자 조정 선수들은 종목 자체에 자부심을 가지게 됐고, 줄곧 신사적인 태도를 견지하던 게 이젠 문화로 자리 잡았다는 분석이다. 
조정은 올림픽 창시자인 피에르 쿠베르탱 남작이 가장 사랑했던 종목으로도 알려져 있다. 
쿠베르탱 남작은 “존재하는 가장 완벽한 스포츠”라면서 72세에도 스위스 제네바 호수에서 조정을 즐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시상대를 도입한 건 1932년 레이크플래시드 동계 올림픽이었다. 
그 뒤 각 국가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외형을 바꿀 수 있게 되면서 다양한 시상대가 등장했다. 
파리 올림픽 시상대 앞에는 에펠탑을 본떠 회색과 흰색 철골이 교차하는 무늬가 그려져 있다.(24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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