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에 사는 주부 박모(43)씨는 최근 마이너스 통장을 한 개에서 두 개로 늘렸다.
남편 월급은 작년과 별반 차이가 없는데 식료품과 교통비, 두 자녀 학원비 등 씀씀이가 1년 전보다 20%쯤 늘어났기 때문이다.
박씨는 “작년부터 월급이 들어와도 신용카드 대금을 갚을 돈이 모자랄 때가 종종 있어 마이너스 통장을 하나 더 만들었다”며 “전기요금이 부쩍 늘어나는 여름이 걱정”이라고 했다.
전 세계적 이상 기후와 유가 상승 등으로 먹거리 물가와 교통비, 주택 관리비 등이 고공 행진하면서 지난 1분기(1~3월)에 필수 생계비가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38%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필수 생계비는 식음료(주류 제외)와 월세, 수도요금, 전기‧가스요금 등 주거‧수도‧광열비, 대중교통 이용료‧주유비 등 교통비, 외식 식사비 등 생계를 꾸려가는 데 꼭 필요한 비용을 말한다.
필수 생계비 비율이 높아지는 것은 소득보다 지출이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27일 본지가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분석했더니, 1분기 전체 가구의 월평균 처분가능소득(총소득에서 세금‧이자‧사회보험료 등을 빼고 남은 소득)은 404만6185원으로 작년 1분기에 비해 1.4%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반면 월평균 필수 생계비는 153만6317원으로 1년 전보다 3.3% 증가했다.
필수 생계비 비율은 코로나 거리 두기로 일용직 근로자들과 자영업자들의 벌이가 크게 줄었던 2021년 2분기에 37.8%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었다.
이 비율은 이후 점차 줄어 2022년 1분기에는 34.5%로 역대 최저치로 떨어졌다.
하지만 이후 고물가가 이어지면서 상승세를 이어갔고, 올 들어 역대 최고치를 고쳐 쓴 것이다.
필수 생계비 부담이 늘어난 가장 큰 요인은 꺾이지 않는 먹거리 물가다.
사과(71.9%)와 파(44.3%), 오이(13.3%) 등 올 1분기 농산물 물가가 1년 새 큰 폭으로 올랐고, 초콜릿(11.7%)과 당면(10.1%), 우유(6.5%), 참기름(4.9%) 등 가공식품 물가도 상승세를 보였다.
비빔밥(6.2%)과 냉면(5.9%) 등 외식비도 전체 물가 상승률보다 가파르게 올랐다.
이런 가운데 시내버스비(11.7%)와 택시요금(14.6%) 상승률이 두 자릿수로 집계되는 등 교통비 부담도 늘었다.
이처럼 필수 생계비 부담이 커지다 보니 자녀를 둔 가구들은 여가성 소비를 줄이고 있다.
경기 부천시에 사는 이모(31)씨는 “작년에 두 아이를 데리고 매달 캠핑을 다녀도 한 달 카드값이 150만원밖에 안 나왔는데, 요즘엔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여행을 확 줄였다”고 했다.
이씨는 “거의 ‘집콕’ 생활을 하는데도 카드값이 160만원 이상으로 불었다”며 “오이와 애호박 등 아이들 건강을 생각해 먹여야 하는 음식 재료가 큰 폭으로 오른 게 가장 큰 부담”이라고 했다.
고금리 장기화로 이자 비용 지출도 만만치 않게 늘었다.
지난 1분기 가구당 월평균 이자 지출은 13만7598원으로 1년 전보다 11.2% 올랐다.
2022년 3분기(19.9%)부터 7분기 연속으로 두 자릿수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가계부에 비상이 걸린 가구들은 마이너스 통장에 의존하고 있다.
경기 광명시에 사는 오모(44)씨는 “7년 전 연 2%대 금리로 빌린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4%대로 올라 원리금 부담이 늘어난 데다 먹고사는 비용까지 늘다 보니 마이너스 통장이 생활필수품이 됐다”며 “주변 사람들도 사정이 비슷한지 ‘100만~200만원씩 빌려줄 수 있냐’고 묻는 친구들의 문자메시지가 늘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2분기에도 가공식품을 중심으로 물가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가계의 살림살이가 1분기 못지않게 팍팍할 것으로 전망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에 맞춰 눈치를 보던 장류와 과자류 등 식품 업체들이 가격 인상을 속속 결정하면서 물가 인상 요인이 가시화하고 있다”고 했다.(240528)
☞필수 생계비
생계를 꾸려나가는 데 꼭 필요한 비용을 말한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의 월평균 소비지출 항목 가운데 식음료(주류 제외)와 주거·수도·광열비(월세, 수도 요금, 전기·가스 요금 등), 교통비(대중교통 이용료·주유비 등), 외식 식사비 등을 합쳐 계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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