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검문을 피해 달아나다 총격으로 숨진 알제리계 프랑스 청소년 나엘(17)의 장례식이 열린 1일(현지 시각) 오후 파리 북서부 낭테르시의 풍경은 전쟁터를 연상케 했다.
장례식장인 ‘이븐 바디스’ 모스크(회교 사원)로 향하는 길은 곳곳에 무장 경찰들이 배치됐다.
검은색 복면 차림의 한 경찰은 “대규모 폭력 시위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해 병력이 배치된 상태”라고 했다.
프랑스 정부는 특수부대와 장갑차·헬리콥터 등을 동원해 시위 통제에 나섰지만 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2023년 6월 30일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에서 프랑스 경찰이 10대 운전자를 총으로 쏜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진압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낭테르에서 시작돼 전국적으로 확대된 프랑스 시위는 ‘나엘 M’으로 알려진 알제리계 청소년이 지난달 27일 낭테르에서 경찰의 총을 맞아 사망한 데서 비롯했다.
나엘이 숨진 다음 날인 28일부터 폭력 시위가 시작돼 잦아들지 않고 있는 낭테르 중심가는 초토화돼 있었다.
창문과 마네킹이 박살 나고, 약탈까지 당한 의류 상점 주인 파리드(51)씨는 가족들과 함께 부서진 유리창의 잔해를 치우고 있었다.
그는 “이 동네는 (중동·아프리카계) 이민자가 절반이 넘는다”며 “인종 차별에 저항한다며 벌인 시위에 애꿎은 이민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다”고 했다.
프랑스 내무부에 따르면 지난 1일까지 전국 50여 도시로 확대된 폭력 시위로 약 3000명이 체포됐다.
경찰의 과잉 진압을 비난하는 시위가 폭동에 가까운 전국적 혼돈으로 확대된 배경엔 식민지 시절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평등주의’의 정신 아래 이민자 수용에 적극적이었던 프랑스 사회의 곪은 갈등이 터져 나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사건은 많은 이민자를 받아들이면서도 융합시키는 데는 실패한 프랑스의 뿌리 깊은 문제를 다시 드러냈다.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낭테르 같은 외곽 도시의 열악한 환경이 초래하는 절망, 열악한 이민자의 실태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하고도 손 놓고 있어온 정부에 대한 억눌린 분노가 일시에 터져나왔다”라고 전했다.
가디언은 “이번 사태를 프랑스 사회의 주류와 비주류(이주자)가 충돌하는 내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고 분석했다.
프랑스의 이주자 비율(13.0%)은 유럽 평균(11.6%)에 비해 높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노동력 보강을 위해 알제리·모로코·튀니지로부터의 이주자 수용에 적극적이었고, 최근까지도 ‘박애 정신’을 내세워 이주자와 난민을 비교적 너그럽게 받아들인 결과다.
이들은 프랑스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비교적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등 기여한 점이 많다.
하지만 ‘모두가 프랑스인이 되어야 한다’는 프랑스 이주 정책의 원칙이 무슬림 등 고유 문화를 지키고자 하는 이주자들을 겉돌게 했고, 과도한 평등주의로 인해 이주자들을 끌어올리는 ‘사다리’ 구축에 실패하면서 저소득·저학력의 대물림에 빠진 이주자들의 불만을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저출산 등의 해결책으로 이민자 확대를 적극적으로 고려 중인 한국도 무조건 ‘문’을 열기 전에, 이주자들이 기존 사회에 제대로 융합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우선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번 시위가 프랑스의 이주자 관련 ‘그림자’를 다시 드러내면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에게 정치적 위기가 닥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코노미스트는 “마크롱이 이끄는 소수 중도파 정부는 극좌파와 민족주의 강경 우파 사이에 끼여 있다”며 “인기 없는 연금 개혁으로 촉발된 혼란을 이제 막 수습하려는 마크롱을 이번 폭동이 더 약화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마크롱은 폭력 시위가 확산하자 2일로 예정됐던 23년 만의 독일 국빈 방문을 연기하며 사태 수습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23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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