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계동 LC타워 사거리. 
광주 첨단지구의 대표적인 학원가로, 학생들의 이동이 많은 곳이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등 4개 정당이 내건 현수막 5개가 펄럭이고 있었다. 
현수막은 횡단보도 신호등은 물론 주변 상가의 간판을 가리고 있었다. 
현수막에는 ‘불체포특권 폐지, 민주당은 빼고?’ ‘50억 클럽 즉각 특검’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주민 박현정(42)씨는 “정치 구호 경연장 같다”며 “선거철도 아닌데 요즘 정당 현수막이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고 했다. 
상인 박모(50)씨는 “현수막이 간판을 가려도 뜯어낼 수 없으니 복장이 터진다”고 했다.

 

 

<24일 부산 해운대구 좌동 도시철도 2호선 장산역 인근 횡단보도 앞에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내건 현수막이 4개 걸려 있다. 
작년 12월 옥외광고물법이 개정돼 지자체 허가나 신고 없이 정당 현수막을 설치할 수 있게 되면서 거리 곳곳에 현수막이 내걸려 불편하다는 시민들의 민원이 늘어나고 있다>

 

 

작년 12월 11일 지자체 허가나 신고 없이 정당 명의 현수막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각 정당의 현수막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전국 거리 곳곳에 내걸리고 있다. 
정당 현수막이 난립하면서 지자체에 불편하다는 시민들 민원이 쏟아지고, 안전사고 우려까지 제기된다. 
이 때문에 지자체에서는 법을 다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법 개정 전 정당 현수막은 관할 지자체 허가를 거쳐 지정된 현수막 게시대에만 내걸 수 있었다. 
하지만 법 개정으로 정당의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과 관련한 광고물은 허가나 신고 없이 15일 동안 자유롭게 설치할 수 있게 됐다. 
장소 제한도 없다. 통상적인 정당 활동을 보장한다는 취지였다. 
개정안은 작년 5월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해 12월 시행됐다. 
다만 행정안전부는 신호등과 방범카메라, 어린이보호구역 등 교통안전과 이용자 통행 안전을 해칠 우려가 있는 위치에 현수막 설치를 금지하고, 높이 2~3m 이상 위치에 설치하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은 강제 사항은 아니다.


실제 인천에서는 정당 현수막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13일 오후 9시쯤 인천 연수구 송도5동 행정복지센터 사거리에서 전동킥보드를 타던 20대 여성 A씨가 정당 현수막 끈에 목이 걸려 넘어졌다. 
나무에 연결된 현수막 끈이 성인 목 높이 정도에 설치돼 A씨가 미처 보지 못해 사고가 일어났다는 게 연수구 측 설명이다. 
A씨는 이 사고로 목에 10㎝가 넘는 찰과상을 입었다. 
A씨 어머니는 “현수막을 내건 의원 사무실에 항의하자 ‘치료받은 후 영수증을 제출하면 보상하겠다’고 하더라”며 “다른 사람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만큼 (무분별한 정당 현수막 게시는) 시정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수막이 가게의 간판이나 횡단보도 신호등 시야를 가리는 경우도 많다. 
이날 광주광역시 월계동 LC타워 사거리에서는 현수막이 가린 신호등의 신호를 제때 못 보고 파란불이 깜빡거릴 때 급하게 뛰어가는 학생들의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대구 달서구 관계자는 “가게 간판을 가린다거나 보기 좋지 않으니 철거해달라는 민원이 많다”면서 “쓰레기 더미가 공중에 둥둥 떠있는 것 같다는 얘기도 듣는다”고 말했다.


현수막 문구도 여야가 서로를 비난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어서 ‘현수막 공해’ 수준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날 대구 중구에는 거리 곳곳에 ‘난방비 폭탄 책임져라’ ‘취약계층 난방비 우선 지원’ 등 정권을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정당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대구 시민 도윤정(32)씨는 “정책 홍보를 하라고 현수막을 거는 줄 알았더니 거리에서 혐오 정치를 하고 있는 것 같다”며 “시민들까지 갈라치는 것 같아 불편하다”고 했다.


대구 달서구에 따르면 법이 개정된 지난해 12월부터 이달 20일까지 현수막 관련 신고 건수가 915건에 달했다. 

이는 전년 같은 기간(2021년 12월~2022년 2월) 신고 건수 631건에 비해 45%가량 늘어난 수치다. 
인천 남동구에서는 작년 12월 법 시행 이후 이달 20일까지 45건의 정당 현수막 관련 민원이 접수됐다.


이 때문에 지자체들은 정부를 상대로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서울시 구청장협의회는 지난 15일 회의를 열고 정당 현수막 난립을 막기 위해 관련 법 개정을 요구하기로 했다. 

앞서 인천 군수·구청장협의회도 지난달 정당 현수막의 규격·수량·위치 등 세부 기준을 마련해 달라고 행안부에 요구하는 내용의 공동 건의문을 채택했다. 
인천시도 이달 초 행안부에 관련 법 재개정을 요청했다.


윤종빈 명지대 교수는 “정당 활동의 발전을 위한다는 현수막이 국민을 불편하게 한다면 이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며 “특정 기간, 특정 장소에만 현수막을 걸 수 있도록 기간과 장소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23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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