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大安門은 왜 大漢門이 되었나

 


고궁박물관 ‘궁중 현판’ 특별展, 덕수궁 화재 뒤 고종이 현판 바꿔
‘크게 편안→한양을 창대하게’ 궁궐 건축 화룡점정… 80점 전시

 



큰 대(大), 편안할 안(安). ‘대안(大安)’은 ‘크게 편안하다’는 뜻이다. 
이는 ‘경운궁’이라 불렸던 현재 덕수궁 동쪽 정문 이름이었다. 
1904년 경운궁에 큰 화재가 난 후 고종의 명에 따라 1906년 대안문을 수리했는데 이때 이름을 ‘큰 하늘’이라는 뜻의 현재의 ‘대한문(大漢門)’으로 바꿨다. 
‘큰 하늘’에는 ‘한양이 창대해진다’는 의미가 녹아 있다. 
궁궐의 문 이름엔 통치자의 소망이 담겨있다. 
격변의 근대사 속에서 대한제국이 융성하길 바랐던 고종의 염원이 ‘대안’과 ‘대한’에 서렸다.

 

 

<국립고궁박물관 ‘조선의 현판, 이상을 걸다’ 언론공개회에서 참석자들이 현재 덕수궁 대한문 자리에 걸려 있었던 ‘대안문(大安門)’ 현판을 관람하고 있다.>

 

 


이 ‘대안문’ 현판이 8월 15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는 ‘조선의 이상을 걸다, 궁중 현판’ 특별전에 나왔다. 
1899년 제작된 것으로 가로 374㎝, 세로 124.3㎝.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된 현판 755점 중 가장 크다. 
이번 전시에 나온 현판은 모두 80여 점. 
김인규 국립고궁박물관장은 “궁중현판은 궁궐건축의 화룡점정이다. 통치자가 백성들과 소통하는 하나의 방식이기도 했다”면서 “백성들이 우러러보도록 늘 높이 걸려 있던 현판을 관람객 눈높이로 내려 현판에 담긴 마음과 글씨의 아름다움 등을 느낄 수 있도록 전시를 구성했다”고 말했다.


성군(聖君)이 지향해야 할 이상적 가치도 현판에 담겼다. 
전시에 나온 ‘인화문(仁化門)’ 현판은 경운궁 남쪽 정문에 걸려 있었다. 
궁궐의 바깥 정문 이름엔 광화문(光化門), 돈화문(敦化門), 홍화문(弘化門), 흥화문(興化門)처럼 ‘될 화(化)’ 자를 사용했다. 
이때의 ‘化’는 ‘교화(敎化)’의 의미. ‘인화’는 ‘어진 마음[仁]으로 백성을 교화한다’는 뜻이다. 
인화문은 1902년 정전(正殿)인 중화전(中和殿)과 중화문(中和門)을 건립하기 위해 궁의 영역을 확장하면서 철거됐다.


현판에도 위계가 있다. 
사용되는 나무 종류, 테두리 유무, 장식 무늬, 바탕판 및 글씨 색상과 기법 등에 따라 달라졌다. 
위계가 높은 건물의 현판엔 17~18세기에는 피나무가, 19~20세기에는 잣나무가 주로 쓰였다. 
테두리가 있고 구름, 용머리, 봉황 머리 등 조각을 장식한 현판이 테두리 없는 널판형보다 위계가 높다. 

임지윤 학예연구사는 “바탕판은 옻을 여러 번 칠한 칠질(漆質)을 최고로 하고 먹을 입힌 묵질(墨質), 흰색으로 칠한 분질(粉質)을 그 다음으로 쳤다”고 설명했다.


글씨는 금박을 붙인 것이 제일 위계가 높았는데, 왕의 글씨인 어필(御筆)이 금박으로 제작됐다. 
전시에 나온 경운궁(慶運宮) 금박 현판은 고종 어필. 
‘경운궁’은 ‘경사스러운 운수가 가득한 궁’이라는 뜻이다. 구름 모양 봉을 달았고 테두리는 칠보 무늬로 장식했다. 
고궁박물관 소장 현판 중 어필을 가장 많이 남긴 왕은 영조. 전체 현판 775점 중 85점으로 11%를 차지한다.(22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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