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비 오는 소리를 두고


                              문성해

 




바람에 나뭇잎들이 비벼대는 소리라 굳이 믿는 것이다
한창 재미나는 저녁 연속극을 끌 수가 없는 것이다
빨래가 널린 옥상을 괜히 한번 염두에 둬보는 것이다
뭔가에 환호할 나이는 지났다고 뭉그적거려보는 것이다
속는 셈치고 커튼을 열고 베란다 문을 여는 수고가 하기 싫은 것이다.
누가 이기나 최대한 견딜 때까지 견뎌보는 것이다
손익 계산부터 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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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누가 뭐라고 해도 봄입니다. 
떨리는 추위가 간혹 있다고는 해도 철없는 눈발이 날려도 이미 천지간에 스민 봄기운의 대세는 그저 미소나 지을 뿐입니다. 
많이 기다렸습니다. 엄동의 시간이 힘겨웠을 생명들 조용히 눈을 뜨기 시작입니다.


어느 저녁 어둠 저편에서부터 대지를 깨우는 봄비의 기척이 있습니다. 
한 차례씩의 비가 하는 일을 알기에 그 '밤비'의 소란스럽지 않은, 고요한 기척은 마음 깊은 곳에 숨었던 싹을 움트게 합니다. 
그것은 점점 커져서 '환호'가 됩니다. 그러나 아직 터트려지기에는 이릅니다  . 
그것은 '연속극'이니 '옥상의 빨래'니 하는 일상의 관성을 조금씩 조금씩 밀어냅니다. 
'견딜' 만큼 견뎌봅니다. 그러나 설렘의 맥박이 점점 커집니다.


'손익 계산'을 아무리 해봐도 그 '환호'를 이기지는 못할 겁니다. 
역사에서도 그러한 '손익 계산'을 훌쩍 넘어서는 환희의 날들이 빨리 오기를 빕니다. 
가뭄 끝의 봄비! 삼월 첫날의 함성 뒤에 그려 봅니다.
-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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