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 암 환자들이 모여 있는 대구의료원 호스피스 병동에는 노래방 기계가 있다.
기운이 좀 남아 있는 환자나 간병 가족들이 마이크를 잡는다.
슬프고도 장엄한 노래가 나올 것 같지만 분위기는 딴판이다.
가장 많이 부르는 애창곡은 한명숙의 '노란 샤쓰의 사나이'다.
요즘은 드라마 '왕가네 식구들'에 나왔던 가수 조항조의 '사랑 찾아 인생을 찾아'가 인기란다.
생명이 한 달 남짓 남은 이들의 하루나, 언제 죽을지 모르고 사는 사람의 일상이나 딱히 다르지 않다.

 


어릴 때 청각 장애를 앓아 귀가 먹었던 한 할머니가 뼈암으로 호스피스 병동에 왔다.

할머니는 평생 시각 장애 할머니들과 함께 살며 수발했다. 서로에게 눈과 귀가 됐다.
시각 장애 할머니들은 안마로 생계를 꾸려 왔다.
청각 장애 할머니가 암에 걸려 몸져눕자 시각 장애 할머니들이 조를 짜 매일 병원에 왔다.
그러고는 온몸을 몇 시간씩 마사지해줬다.
청각 장애 할머니는 보살핌 속에서 삶을 편하게 마쳤다.
호스피스 의료진은 '죽어 감'을 보면 '살아 옴'이 보인다고 말한다.

 

 
암을 치료하는 종양내과 의사들이 암 환자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다.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나요?"
시한부 기간을 알려달라는 얘기다. 그건 의사도 모른다.
같은 항암제를 써도 어떤 이는 서둘러 숨을 거두고 어떤 이는 예상보다 훨씬 오래 살기도 한다.
생명은 수학과 다르다. 생존율 1%라고 해도 그 1%에 들면 100% 산다.
그래서 암이 다른 곳으로 퍼져 있어도 항암 치료의 끈을 놓기란 쉽지 않다.

 


예순여덟 살 소설가 복거일이 2년 반 전 간암이 전이된 상태로 발견됐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글을 쓰고 싶어서 항암 치료를 받지 않았고 병원에도 가지 않았다고 했다.
그 사이 그는 책 세 권을 썼다. 작가의 암이 세상에 남겨야 할 글이 있는 작가를 기다려주지 않았나 싶다.
1초 후 죽음도 내다볼 수 없는 게 인간의 숙명인데 암으로 맞는 삶의 마감은 사고사(事故死)보다 나은 편이다.
정리할 시간을 주니 말이다.

 


임종의 순간은 영화처럼 할 말 다하고 조용히 눈을 감는 장면이 아니다. 며칠 전부터 의식이 혼미하고 숨도 가쁘다.
말기 암 환자의 시한부 기간은 각자 다르지만 임종 단계로 들어가는 공통적인 변곡점은 있다.
그 기간은 대개 잔여 생명이 10주가량 남았을 때다. 의학적 수치와 징후로 예측하기 때문에 비교적 정확하다.
이 기간만큼은 치료가 아니라 삶을 정리하는 데 써야 한다.
어떻게 죽는지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뜻하기 때문이다.(14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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