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우의 쉬운 사진] (54) 바람을 활용한 야외 촬영법

                  

 

입력 : 2013.04.18 04:00

바람이 부는 순간, 진짜 얼굴이 드러난다

셔터스피드 1/200sec·조리개 f/5.6·ISO 400·렌즈 16㎜
 
사실 바람이란, 생각만 해도 상쾌하고 짜릿한 자연현상이다. 솔직히 무례한 구석이 없진 않다. 묻지도 않고 다가와 사람을 잔뜩 헝클어놓곤 하니까.

공들여 빗은 머리도, 단정하게 세운 옷깃도 바람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그렇게 바람이 지나가고 난 자리엔 엉망으로 흐트러진 모습의 내가 남는다.

그런데, 그래서 바람이 좋다. 바람이 한 번 그렇게 몸을 흔들고 지나가면 한결 긴장이 풀린다.

집에서 막 뒹굴고 일어난 것처럼 마음이 느슨해지고, 피식 웃음도 새어나온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바람 부는 날 찍은 사진은 누군가가 잘 맞춰놓은 퍼즐을 우르르 뒤집고 지나간 자리처럼 다시 한 번 보게 된다.

정돈된 맛은 없지만, 그래서 재밌고 또 새롭다.

바람은 때론 엉뚱한 낙서꾼이 되기도 한다. 바람이 가득한 날의 사진은, 언제나 예측 불가능하다.

바람에 나부끼는 풍경이란 누군가 마구 사선(斜線)을 그어놓은 그림과 비슷하다. 사선(斜線)은 직선과 달리 긴장과 낯선 느낌을 부여한다.

그림 속에 사선이 끼어들면 구도가 완전히 달라진다. 한층 대담해지고, 역동적으로 변한다.

바람은 바로 이렇게 사진의 표정과 구성을 바꾸고, 긴장감을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뻔했던 구성의 사진도 바람이 휙 부는 순간 갑자기 달라진다.

사진 속 이미지를 예측하기 힘든 '변주(變奏)'로 바꾸어 놓는다.

스카프를 목에 감고 지나가는 여자를 찍을 때 바람이 와락 불어주면, 사진 속에 뜻밖의 움직임이 생기는 것도 마찬가지 이치다.

바람 한 줄기로 사진 속 프레임엔 예측할 수 없는 선이 난무하고, 그 순간 사진 찍기는 흥미진진한 놀이로 진화한다.

인물 사진을 찍을 때도 바람은 종종 기꺼이 장난을 도와준다. 사람과 바람이 만나면, 사람은 반응한다. 당연한 이치다.

바람이 기꺼운 사람은 그 바람 부는 순간을 즐길 것이고, 갑자기 불어오는 바람이 싫다면 그 사람은 조금 불편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그 반응이 사진을 더 솔직하게 만든다. 연출로는 뽑아낼 수 없는 진짜 표정을 찍을 수 있는 순간이다.

언젠가 아내와 함께 일본을 여행할 때였다. 둘이 무엇 때문인지 말다툼을 하다가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화해를 청하기도 참 애매한 그때, 우리 곁으로 기차가 와락 지나갔다. 바람이 휙 불었고, 아내의 단발머리가 바람결에 휘휘 날렸다.

바로 그때 반사적으로 뒤에 선 내가 "00야!"라고 불렀다. 아내가 뒤를 돌아봤다.

잔뜩 헝클어진 머리, 바람에 날리는 옷소매, 그리고 그 뒤를 빠르게 달려가는 빨간 기차. 그 장면을 '찰칵' 빠르게 사진으로 찍었다.

사진을 본 아내는 다시 배시시 웃어 보였다. "표정도 동작도 다 재밌다"면서.

바람이 표정을 만들고, 움직임을 만들고, 사진을 만들고, 심지어 추억까지 만든 그런 날이었다.

여기서 팁(tip) 하나. 바람을 찍으려면 셔터스피드는 빠르게(1/125sec 이상) 조정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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