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우의 쉬운 사진] (43) 부분으로 전체 말하기

사각 틀에 두 손만 담아도 시골 밥상이 보여요

셔터스피드 1/800sec, 조리개 f/8, 렌즈 50mm, ISO 400

 

다섯 살짜리 조카는 요즘 그림 그리기에 푹 빠졌다.

어느 날 도화지에 녀석이 줄을 잔뜩 그려넣은 걸 보고 "이게 뭐냐"고 묻자, 녀석은 눈을 깜박이더니 냉큼 "코끼리잖아"라고 했다.


"코끼리라고?"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알 것 같았다. 그 줄무늬는 코끼리 피부에 새겨진 굵은 주름이었던 거다.

"야, 너 이걸로 어떻게 코끼리를 표현할 생각을 했니?"

녀석은 내 말에 귀찮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것만 봐도 코끼리인 줄 아는데 뭐." 난 어쩐지 엄청난 답을 들은 기분이었다.



사진이 좋은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난 때때로 '사진 한 장만 있으면 굳이 긴 설명이 필요 없으니까'란 사실에 깊이 안도하곤 한다.

주절주절 말하지 않아도, 굳이 전체 상황을 일일이 보여주지 않아도, 어떤 부분만 툭 찍어서 보여주면 때론 모든 것이 설명될 때가 있다.

난 그래서 종종 '부분으로 전체를 말하는' 사진적인 방식을 애용하곤 한다.



작년 겨울 '산골 음식'이란 주제로 사진을 찍어야 할 때도 그랬다. 강원도 평창으로 출장을 떠났다.

나무 밥상 위에 곤드레밥, 잡나물, 나물국죽, 취떡, 알감자 조림 등을 가득 차려놓은 걸 찍어봤지만 '이거다' 싶은 그림이 나오질 않았다.



그렇게 서성댈 때 음식을 차려서 내놓는 아주머니의 손이 보였다.

주름지고 거친,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금세 넉넉한 밥상을 차려낼 것 같은 넉넉한 인상의 손이었다.



아주머니가 무심하게 두레박에 담긴 곤드레밥을 두 손으로 떠받든 채 서 있었다.

카메라를 들어 얼른 아주머니의 손과 그 손에 들린 바가지 곤드레밥을 툭 하고 찍었다.

손에 새겨진 주름과 아무렇게나 퍼서 담은 산골 음식이 그렇게 사각 틀에 담겼다.

말 그대로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산골 음식 사진'이 됐다.



이런 사진을 찍을 땐 그러나 '뻔한 부분으로 전체를 말하는 것'은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도 기억했으면 좋겠다.

가령 군인의 노고를 보여주기 위해 흙 묻은 군화를 찍거나, 달리기 경주에 임하는 선수의 긴장감을 표현하기 위해 운동화

끈을 고쳐매는 손을 찍는 건 흔하게 쓰인 탓에 인상적인 사진이 되기 힘들다.(12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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