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 현장에서 연출가 이윤택은 배우 김소희(42)에게 불쑥 말했다.
"아이구, 우리 소희가 나이가 들었네."
김소희는 실제보다 열 살은 어려 보이는 동안(童顔)이다. 그도 최근 거울을 보다가 문득 중얼거렸다고 한다.
"시간을 지나온 여자가 저기 있구나."
4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소희는 "제 주름에 깊이와 이야기를 싣는 게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김소희는 지난달부터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연출 채윤일·이하 '욕망')의 주인공 블랑쉬가 됐다.
원래 공연은 1일까지였다. 평일에도 좌석이 차는 인기에 21일까지로 연장됐다.
그의 팬이 많이 몰렸다. 한 여성팬은 '욕망'을 10번이나 봤다.
김소희는 독하고 세고 강한 역을 많이 했다. 거트루드 데스데모나 맥베스 부인까지, 셰익스피어의 여인은 다 거쳤다.
대한민국연극제와 동아연극상 등에서 상도 받았지만 스스로에게 점수를 주는 데 인색했다.
"여유 있고 느슨한 부분이 모자라거든요."
모든 여배우가 한 번쯤 꿈꾼다는 블랑쉬 역이 처음에는 잘 다가오지 않았다.
직선적인 성격인 그는, 몸을 살짝 비틀고 벌어진 입술 사이로 "전 거짓말 안 해요"라는 블랑쉬가 답답했다.
"닭살스러워서 다가가기 힘들다가 서서히 알게 됐어요.
블랑쉬 기준으로 보면, 제가 공격적이란 걸요. 참 편협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배우는 소아(小我)를 깨야 다른 세계에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어요."
연세대 극회 출신인 그는 졸업 후 우리극연구소 1기 단원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2008년 연희단 대표가 됐다. 이윤택이 찍었다. 그를 두고 '이윤택의 페르소나'라고도 한다.
"제가 선생님의 연극 정신을 완벽하게 구현해서가 아니라 연극에 대한 생각이 맞닿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연극을 통해 본질적인 것을 만나고 있고, 진리에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들 때 흥분되거든요.
큰 세계를 향해 던져진다고 생각하면 엄청나게 짜릿해지면서 머리가 팍팍 돌아가요."
연희단 단원은 50명 정도.
"연희단 사람들끼리는 늘 물어요. 부끄럽지 않냐? '욕망'을 할 때도 '잘해야지'가 아니라 '왜 했냐'는 질문에 부끄럽지 않은
답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과제였어요."
공연 전 몸이 안 좋을 때도 있다. 분장실에서 마음을 가다듬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무당'이 되는 순간이 온다.
"극 중 인물이 영혼이 돼서 제게 다가와요. '네 안으로 들어가서 관객과 만나겠다'며 도와주는 거죠."
<“연극은 저 멀리서 빛나는 별 같다”고 김소희는 말했다.
“잡을 수는 없지만 분명히 반짝거리니까요.”4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서. >
그는 '연극은 배고픈 예술'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자존심을 지킬 만큼만 벌 수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큰 차? 큰 집? 눈에 보이는 것이 불안한 것이죠.
보이지 않는 것, 예를 들어 오늘 우리가 만나서 통했다는 사실, 그런 것이 훨씬 안정적이죠.
연극의 보답은 늦게 올 뿐, 견디면 꼭 와요. 그래서 전 후배들에게 말해요.
정말 미쳐서, 바르게 연극하면 반드시 현실적인 문제도 해결된다고요."
"배고플 텐데 참 열심히 한다"는 평가가 나오면 안 된다고도 했다.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 보듯 '저거 아무나 못 하는데, 대단해!'라는 말이 나와야 해요.
연극이 인간의 진실을 찾기 위해 얼마나 앞서 가고 있는지 보여줄 수 있다면 경이로울 것 같아요.
그런 연기를 향해 나아가고 싶어요."(12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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