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은 개성공단, 남쪽은 북한산까지 보이네
'악(岳)'자가 들어가는 산은 힘들다는 얘기가 있다. 가평의 화악, 과천의 관악, 포천의 운악을 보면 산세가 거칠어 들어맞는 듯하지만 감악은 예외다.
밑에서 보면 산등성이의 바위가 거칠어 보이지만 막상 들어가 보면 위험하거나 어려운 코스는 없다.
일부러 긴 종주 코스를 잡지 않는 이상 4시간 정도면 돌 수 있다. 초보자 산행지로 권할 만한 산이다.
감악산(675m)은 검은빛과 푸른빛이 동시에 흘러나온다 하여 감악(紺岳), 즉 감색바위다.
산봉우리가 파주, 양주, 연천 세 지역의 경계이며 대표적인 들머리인 범륜사는 파주 땅이다.
파주시 적성면의 전 면장으로 600번 이상 감악산을 올랐다는 토박이 산꾼 안배옥(55)씨는 감악산의 매력으로 '조망'을 꼽는다.
안씨는 "경치 좋은 산은 많지만 감악산은 특별하다"면서 "북한 지역을 눈으로 생생하게 볼 수 있다는 게 그 특별함"이라고 한다.
반대로 "남쪽을 보면 쾌청한 날은 북한산도 보인다"며 경치 자랑에 열을 올린다.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오르자 들머리인 범륜사다. 터는 오래되었지만 1970년에 재창건해 등산객이 볼 만한 건 없다.
볼 만한 건 단풍이다. 노랗고 벌겋게 색칠한 단풍이 예술적인 터널을 만들었다. 돌이 깔린 오르막이 길게 이어지지만 투덜거리는 이는 어디에도 없다.
산길은 웃음소리와 들뜬 사람들의 목소리로 가득하다.
- ▲ 감악산 까치봉 나무데크 길. 절정의 단풍이 화려하게 수놓았다. / 영상미디어 한준호 기자 Gokorea21@chosun.com
가끔 돌로 쌓은 숯가마 터와 안내판이 나온다. 돌과 흙이 섞인 비슷한 그림의 숲이지만 땀이 흐를수록, 높이 올라갈수록 잎은 더 붉게 달아오른다.
산객들의 마음도 달아오른다. 한 발씩 오를 때마다 달달한 색감의 풍경이 온몸을 덮쳐온다.
아, 절정으로 치달아 오르는 산행의 쾌감. 이맘때 산에 가지 않는 건 인생을 낭비하는 건지도 모른다.
나무계단을 오르자 작은 성취감이 따르는 능선이 나온다. 왼쪽으로 가면 정상이지만 이번에는 오른쪽 임꺽정봉으로 간다.
10분 정도 능선을 따르자 딴 세상이 나온다. 갑자기 나타나는 절벽 꼭대기다. 아래 풍경은 험하지 않아 부드러운 성품의 줄기들이 색동옷을 입고 축제를 벌였다.
놀이동산만큼 즐겁지만 고요한 아름다움이 임꺽정봉 꼭대기에 있었다.
감악산 정상 언저리에는 임꺽정굴이 있는데, 당나라 장수 설인귀가 이곳에 진을 쳤다 해서 설인귀굴이라고도 한다.
이곳에 대해 안배옥씨는 "무속인들이 기가 세다고 하는 곳으로 경기 북부 고위 공무원들이 기운을 받으러 많이 올 정도"라고 한다.
안부를 지나 잠깐 계단을 오르자 학교 운동장만큼 널찍한 정상이다. 정면으로 군사 시설물이 솟아 있어 북쪽 땅은 뵈지 않는다.
경기 오악에 속하는 산답게 연천, 양주, 파주의 등산로로 올라온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사람들에 편승해 막걸리와 아이스크림을 파는 장사꾼도 있다.
산객들이 기념사진을 찍는 곳에 큼지막한 비석이 있다. 비석의 글씨가 닳아 밝혀지지 않았지만 '진흥왕순수비'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연천 방향에는 하얀 성모마리아상이 있다. 까치봉으로 이어진 하산로에 데크로 만든 정자와 전망대가 있다.
실망스러웠던 정상 조망을 단번에 만회하는 전망대다. 다만 날이 흐려 임진강도 가물가물하다.
안배옥씨 말에 따르면 원래 개성공단이랑 깃발까지 다 보인다고 한다.
감악산은 연천, 양주, 파주에서 올라오는 각각의 코스가 있다. 가장 사람들이 많이 찾는 들머리 중 한 군데가 범륜사다.
묵은밭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에서 능선 따라 직진하면 371번 지방도로 약수터휴게소로 내려선다. 여기서 도로 따라 700m 걸으면 범륜사 입구다.
11월 1일부터는 산불조심 출입금지 기간이므로 이번 주말까지 산행 가능하다.
●의정부에서 25번 버스를 타면 범륜사 입구를 지나 적성면까지 간다.
●파주 토박이 안배옥씨는 지역 먹을거리로 적성면 두지리의 강촌매운탕(031-959-3858)을 권한다. 임진강에서 3대에 걸쳐 고기를 잡아 직접 요리한다.
민물 매운탕으로 드물게 비린내가 없고 국물이 시원하다. 메기와 빠가사리, 참게로 만든 매운탕이 대(5만5000원), 중(4만5000원), 소(3만5000원)로 나오고
빠가매운탕(1인분 1만7000원), 메기매운탕(1인분 1만2000원) 등이 있다. 범륜사에서 7㎞ 정도 떨어져 있어 차로 15분 정도 걸린다.
●범륜사 입구에서 북쪽으로 2.5㎞ 떨어진 곳에 영국군 전적비가 있다.
재미없는 전적비를 굳이 찾아가 볼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단풍으로 물든 공원은 꽤 운치 있다.
영국군 전적비는 1951년에 있었던 설마리 격전을 기념한 것이다.
유엔군의 대표적인 전투로 10배에 달하는 중공군을 맞아 포위된 글로스터 대대의 전투를 기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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