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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로 떠나기에 앞서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고는 ‘진도는 여행 테마가 참 많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비의 바닷길, 세방 낙조 등 명소가 수두룩할 뿐 아니라 유·무형의 문화유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진돗개는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천연기념물이고, 홍주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주(銘酒) 아닌가. 우리나라 3대 아리랑 중 하나인 진도 아리랑의 고향이고, 고려시대 여몽 연합군에 맞서다 패퇴한 삼별초의 자취가 가장 많이 남은 곳도 진도다.

그러나 진도 사람들이 외지인에게 가장 자신 있게 내세운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조도 도리산 돈대봉에서 내려다보는 다도해 풍광이다. 진도 사람들은 “남해안 최고의 비경”이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천상의 풍광 펼쳐지는 조도 전망대

전남 진도군은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인 진도와 그 주변 230여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다. 이 중 조도를 중심으로 하는 조도군도에 154개의 섬이 몰려 있다. 하늘에서 보면 마치 호수에 새떼가 앉아 있는 모습이라고 해서 조도라고 불린다.


진도 서쪽의 쉬미항에서 출발해 조도로 가는 진도군 어업지도선에 몸을 실었다. 배 안에서 진도군 문화해설사인 허상무씨는 구한말 조도를 찾았던 영국 해군 대령 바실 홀의 이야기를 꺼냈다.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가는 길에 1816년 조도를 찾았던 바실 홀은 영국으로 돌아간 후 ‘조선 해안 및 류큐 제도 발견 항해기’(한국어판 ‘10일간의 조선항해기’)를 냈다. 이 책에서 바실 홀은 조도군도에서의 전망을 ‘세상의 극치’라고 표현하며 감탄해 마지않았다는 게 허씨의 설명이다. 과연 그 정도일까.

배를 타고 30여분 정도 달려 왔다. 상조도와 하조도를 연결하는 아치형 연도교(連島橋)가 보이더니 배는 상조도의 섬등포에 도착했다. 섬등포에서 버스를 타고 도리산에 올랐다. 가파른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 산 중턱에 올라가자 일행들이 갑자기 “아!”하고 탄성을 터뜨린다. 발 아래 비취색 바다에 점점이 박혀 있는 섬들이 끝없이 펼쳐지는게 아닌가.

돈대봉(210m) 정상까지 오른다면 얼마나 더 멋진 장면이 펼쳐질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발걸음을 재촉해 드디어 돈대봉에 섰다. 때마침 햇빛이 환하게 비추면서도 해무가 옅게 깔리니 360도 모든 방향으로 장쾌하게 펼쳐지는 장면 하나하나가 천상의 풍경이다.

우리나라 남해안에서 다도해와 한려수도의 풍광을 수없이 보아 왔지만, 그 어느 곳도 조도 도리산을 따라올 수는 없을 것 같다. 한 뼘이라도 더 가까이 바다쪽에 다가서기 위해 전망대의 나무 의자 위에 올라서자, 공중에 붕 떠 있는 기분이다. 나는 새섬(조도)를 내려다보는 한 마리 새가 된다.


#기기묘묘한 형상 뽐내는 가사군도

쉬미항과 조도를 왕복한 어업지도선은 ‘고맙게도’ 중간에 가사군도를 지나갔다. 가사군도는 가사도를 중심으로 한 일군의 섬으로, 섬 하나하나가 모두 기기묘묘한 형상을 하고 있어 배를 타고 섬 구경을 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여행테마가 된다. 쉬미항에서 출발해 가사군도를 돌아보는 유람선이 현재 연중 무휴로 운항한다.

갈기를 휘날리는 사자형상의 사자도(광대도), 섬 정상에 엄지손가락 같은 바위가 솟아 있는 손가락섬(주지도), 발가락 모양의 바위 2개가 얹혀 있는 발가락섬(양덕도), 퇴적암층이 마치 불탑처럼 쌓여 있는 불도 등 희한한 모양의 섬들은 보면 볼수록 감탄을 자아낸다. 가사군도에 늘어선 섬들은 그 희귀한 형상과 규모에서 경남 삼천포· 고성 앞바다의 섬들과 견줄 만하다.

가사군도에는 익살스런 전설까지 서려 있어 여행을 한층 더 흥미롭게 만든다. 허상무씨가 들려주는 전설의 내용은 이렇다. 먼 옛날 진도에는 가사군도를 내려다 보는 지력산이 있었고, 그 산에 동백사라는 절이 있었단다. 이 절에서 수행을 하던 주지스님이 득도하기 직전에 아름다운 여인에 홀려 벼락을 맞고 바다에 떨어졌는데, 손가락은 주지도, 발가락은 양덕도, 목탁은 불도, 가사는 가사도, 여인은 혈도가 됐다는 것이다. 조도 도리산만으로도 가슴이 흡족해졌는데, 가사군도까지 보고 나니 온 주머니가 선물더미로 넘쳐나는 기분이다.

우리 땅의 서남쪽 끝인 진도, 그 진도에서도 다시 바다를 건너야 하는 조도. 서울에서 출발한다면 6시간 이상은 잡아야 하는 머나먼 곳이다. 그러나 우리 땅에서 언젠가 꼭 가봐야 할 여행지를 꼽는다면 기자는 조도를 맨 윗자리에 올려 놓을 것이다.

조도(진도)=글·사진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기사제공 :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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