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 꽃 사진 잘 찍는 법

 

 

입력 : 2011.04.07

꽃에도 있다 '얼짱 각도'

꽃망울이 팝콘처럼 터지는 계절이다. 개나리도 벚꽃도 진달래도 봄을 재촉하듯 앞다퉈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책상에 화사한 꽃을 한 아름 꽂아 놓은 동료도 제법 보이고, 주말에 가족과 꽃구경을 가겠다는 친구도 많아졌다.

얘기 끝엔 꼭 이런 질문이 따라붙는다. "꽃 사진 잘 찍는 법이란 게 혹시 있나? 이상하게 눈으로 볼 때보다 안 예쁘게 찍히네."

렌즈(100㎜ macro)·감도(ISO 400)·셔터 스피드(1/200sec)·조리개(f/5.6).
그때마다 들려주는 내 대답은 무척 짧다. "여자친구 찍을 때처럼 찍으면 될걸."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꽃만큼 여자친구를 닮은 피사체도 없다.

그래도 고개를 갸우뚱하는 당신을 위해 세 가지 원칙을 살짝 귀띔한다.

첫 번째 원칙. 꽃을 찍기 전에 먼저 여자친구 보듯 차근차근 뜯어보자. 아무리 예쁜 여자라도 더 잘 나오는 각이 따로 있기 마련이다.

왼쪽 얼굴이 더 귀엽게 나오는 여자가 있고 오른쪽 얼굴 선이 더 고운 사람이 있다. 꽃도 마찬가지다. 구석구석 둘러봐 주는 게 중요하다.

앞에서 찍어서 예쁜 꽃이 있는가 하면 측면에서 찍는 게 더 나은 꽃이 있다.

무조건 셔터를 누르지 말고 어떻게 찍어야 더 아름답게 나올지 꼼꼼히 살펴보자. '얼짱' 각도를 먼저 찾아주는 노력을 해야 꽃도 카메라와 교감을 한다.

둘째 원칙. 서서 찍지 말라는 것. 여자친구 사진 찍을 때를 떠올려보자.

애인을 낮은 의자에 앉혀놓고 정작 본인은 서서 찍으면 여자친구는 유난히 깡총하게 나오기 마련. 얼굴만 큼직하게 찍혀서 이상하게도 보인다. 꽃도 예외가 아니다. 대개 꽃은 사람보다 키가 작다. 이럴 때 그냥 서서 위에서 눌러 찍으면 예쁘게 나오질 않는 데다 굉장히 평면적인 사진이 된다.

가능한 한 꽃에 바싹 다가가 몸을 낮추고 찍자.

세 번째 원칙. 날씨에 연연하지 말자. 여자친구 사진 찍어준다고 해가 쨍쨍한 날에 나갔다가 낭패 본 경험이 다들 한두 번쯤은 있을 것이다.

날씨가 화창해야만 사진이 잘 나온다고들 생각하지만 의외로 인물 사진은 해가 비스듬하게 기운 때나 날이 흐린 날, 비가 살짝 흩뿌리는 날에 더 분위기 있게 나온다.

꽃 사진도 마찬가지다. 하늘이 맑고 봄 햇살이 투명한 날에만 사진이 잘 나오는 게 아니다.

수분을 적당히 머금은 흐린 날, 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날이 오히려 더 안성맞춤. 적당히 가라앉은 배경 덕에 꽃의 생김새가 더 빛나 보인다.

이 사진은 2007년 5월에 찍었다.

아네모네 꽃송이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물뿌리개로 물을 뿌려주면서 찍었는데 덕분에 꽃잎의 색깔과 감촉이 더욱 생동감 있게 표현됐다.

렌즈는 접사촬영이 가능한 100㎜ 마크로(macro) 렌즈를 사용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여자친구 찍을 때처럼 신경 써서 찍어보자. 꽃은 금세 그 화사한 자태로 카메라와 눈맞춤을 할 것이다.

 

 

 

 

⑤ 인상적인 풍경 사진 어떻게 찍지?

 

 

입력 : 2011.03.24

과감히 섞으세요 의외의 요소를

어느덧 나뭇가지 끝에 물기가 돌고 초록 순이 움트는 계절이 왔다. 이맘때가 되면 모두 카메라를 들고 숲이나 공원으로 나가 사진을 찍고 싶어한다.

이때 대부분의 사람이 렌즈를 가까이 들이대는 대상이 바로 꽃이다. 갓 터진 꽃망울을 가까이 찍기도 하고, 멀리서 꽃밭 전체를 담을 때도 있다.

하지만 찍고 나서 이런 하소연을 많이 한다. "눈으로 볼 때보다 예쁘게 나오지가 않네. 재미도 없고."

기억에 남는 봄 풍경 사진을 만들려면 사실 '꽃' 이상의 것이 필요할 때가 많다.

마치 소녀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때론 곁에서 조는 할머니가 필요한 것처럼. 꽃밭이나 숲 같은 자연 풍경을 찍을 때도 마찬가지다.

자연을 재미있게 찍고 싶다면 '인공적인 요소'를 넣어주는 것도 방법이다.

꽃을 찍기 위해 바짝 들이댄 카메라 몸체, 숲 속 이끼 낀 바위 위의 MP3 플레이어, 성큼 끼어든 새빨간 운동화 같은 것.

풍경 안에 이런 요소를 과감하게 섞어주면 확연히 대비되면서 찍고 싶은 부분이 오히려 눈에 더 잘 들어오는 '의외의 효과'를 낼 수 있다.

2005년 3월 '주말매거진' 커버스토리용으로 찍었던 유채꽃 사진도 마찬가지다. 주제는 '이른 봄꽃 소식'.

그렇다면 봄꽃만 찍어야 한다는 얘기일까? 유채꽃만 일렁이는 꽃밭으로 인상적인 사진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을 한가득 품고 제주도로 떠났다.

노란 유채꽃이 펼쳐진 꽃밭 앞에 섰을 때도 상황이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멀리 푸른 바다와 산 능선도 보였지만 이것으론 어쩐지 부족한 느낌이었다. 한 시간 정도 주변을 헤맸을까.

한 일본인 관광객이 택시에서 내리더니 유채꽃밭 앞에 서는 게 보였다. 그때 그녀가 입은 옷은 아른아른하게 분홍빛으로 물든 치마.

그 위엔 큼직한 벚꽃이 새겨져 있었다. 치마 위의 꽃과 그 뒤로 펼쳐진 노란 유채밭. '앗, 이거구나!' 싶었다.

한달음에 달려가 부탁을 했다. 잠시만 꽃밭 앞에 머물러 달라고.

일본인 여성은 흔쾌히 응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바람이 약하게 불었다. 치맛자락이 가볍게 흩날렸다.

그 옷 위에 새겨진 '인공의 꽃'이 자연의 꽃 위에서 춤을 췄다.

얼른 한쪽만 초점을 잡는 망원 렌즈 대신 와이드 렌즈(16㎜)로 바꿔 끼웠다. 치맛자락과 유채밭을 모두 선명하게 찍고 싶어서다.

찍다 보니 좀 더 대담한 장면을 만들어 보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여자의 뒷모습, 상체를 아예 프레임에서 빼버린 것이다.

어쩌면 이 사진은 여자도 꽃도 제대로 찍지 않은 사진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선 그 어느 것보다 '눈에 띄는' 봄 풍경을 찍은 사진으로 남아 있다.

 

 

④ '통제불능' 아이 사진 어떻게?

 

입력 : 2011.03.10

인내하고…또 인내하라

조카 녀석은 이제 만 세 살이 됐다. 내 눈엔 너무나 예뻐서 볼 때마다 어쩔 줄 모르겠는데 사진만 찍을라치면 항상 도망간다.

나보다 속앓이를 하는 건 여동생이다. 조카 사진을 찍으면서 항상 탄식을 한다. "얘가 좀처럼 카메라를 안 봐!" 여동생에게 말해준 적은 없다.

아이 사진 잘 찍는 비법이 실은 따로 있다는 걸. 그걸 놓치면 좋은 아이 사진은 건지기 힘들다는 사실을 말이다.

비법은 간단하지만 지키긴 무척 힘들다. 첫 번째 원칙은 바로 '인내하라'. 뜬금없이 웬 인내인가 싶겠다.

그러나 아이 사진을 잘 찍으려면 그야말로 '전속 사진가'가 된 것처럼 굴어야 한다.

아이들은 좀처럼 통제가 안 된다. 불러도 가까이 안 오고 웃어 보라고 외쳐도 시무룩한 표정을 지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쓰러지도록 깜찍하게 웃는 모습을 찍었다면 그건 운이 좋았거나 혹은 오래 기다려서 찍었다는 얘기다.

많은 부모들은 여전히 아이 사진을 찍을 때 전속 사진가가 아닌 '출장 사진가'처럼 군다. 1~2시간만 찍고 떠날 것처럼 초조해한다.

그래서 빨리 웃길 원하고 얼른 재롱을 부려주길 원한다.

두 번째 원칙이 필요한 것도 바로 이 대목에서다.

'억지로 요구하지 말라'는 것. "웃어봐" "똑바로 서야지" "여기 좀 보자" 이렇게 외치는 순간 아이들은 오히려 집중력을 잃는다.

그냥 놔둘 때보다 산만해진다. 아이를 대상으로 연출사진을 찍어선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사진을 찍은 건 1997년 4월이다. 소풍 나온 아이들을 찍어볼 마음으로 용산가족공원에 갔다. 한참 둘러봤지만 영 신통한 장면이 없었다.

포기할 무렵, 아이들이 선생님과 풀밭에서 '그대로 멈춰라' 놀이를 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 솔직히 말하면 사실 그 순간 강한 유혹을 느꼈다.

"얘들아, 잠깐만 모여볼래!"라고 외쳐서 불러 모은 뒤 "자, 아저씨가 하나 둘 셋 외치면 다 같이 멈춰서 보자"라고 주문해서 바로 찍고 떠나고 싶은 충동 말이다.

이렇게 하면 일은 쉽게 끝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선 재미있는 사진이 나오질 않는다. 결국 기다려 보기로 했다.

아이들은 처음엔 옆에 있는 낯선 카메라 기자를 힐끗 보며 의식하는 듯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를 잊었다.

아이들은 노래가 나올 땐 눈을 질끈 감고 멈췄다. 표정도 무척 진지했다. 곁에서 그 모습을 계속 찍었다. 한 컷, 두 컷, 세 컷….

얼마나 찍었을까. 여자 아이 하나가 '멈춰라!'라는 노래가 끝날 때 눈을 미처 감지 못하고 엉겁결에 손가락만 눈 아래 얼른 갖다 댄 게 보였다.

셔터를 눌렀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비로소 '건졌다'고 생각했다.

 

 

 

 

③ 표정 있는 봄 사진 찍는 비결

 

입력 : 2011.02.24

리듬감 주려면 빠르게 찍으세요

우수(雨水)가 지나고 봄기운이 돌기 시작하자 주위에서 이런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봄 사진을 잘 찍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대답하기 무척 어려운 질문이다. 봄처럼 구체적이면서도 추상적인 단어가 있을까.

방금 움튼 새순, 소리 없이 터진 꽃망울을 찍었다면 분명 봄 사진이다.

더불어 아이가 웃는 얼굴, 할머니가 꾸벅꾸벅 조는 모습, 강아지가 햇살을 만끽하려고 유리창으로 발돋움하는 장면도 보기에 따라선 모두 봄 사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숱한 봄 사진이 뻔한 사진에 그치지 않고 좀 더 표정 있게 빛나려면 빠져서는 안 되는 게 하나 있다. 바로 '리듬'이다.

가령 꽃 사진. 무생물처럼 화병에 꽂혀 있는 꽃보다는 바람이 일렁이는 가지에서 흔들릴락 말락 하는 꽃이 좀 더 봄에 가까워 보인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가만히 앉아 있을 때보단 어디론가 달려가려고 일어설 때, 팔을 뻗어 무언가를 잡으려고 할 때 더 봄을 느끼게 해준다.

그건 아마도 봄이란 시간 자체가 모든 생물이 기지개를 켜고 움직이기 시작하는 계절이기 때문일 것이다.

봄을 뜻하는 영어 단어 '스프링(Spring)'이 무엇인가가 막 튀어 오르려는 성질인 '탄성(彈性)'이란 뜻을 함께 지닌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리듬감, 또는 율동감이 있는 사진을 찍기 위해선 그 어느 때보다 빨리 찍는 게 중요하다.

다시 말해 셔터 스피드, 즉 카메라의 셔터가 열려 있는 시간을 최대한 짧게 만들어 카메라가 순식간에 정지된 장면을 찍도록 조절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해 3월 초 찍은 경북 청도의 미나리 사진도 빠른 셔터 스피드로 리듬감을 담아낸 경우다. 사진 주제는 파릇파릇한 봄 미나리.

그저 햇살이 드리워진 바구니에 담긴 미나리만 찍어선 봄 느낌을 제대로 살리기 어려울 것 같았다.

궁리를 하다가 미나리 농장에서 만난 한 아주머니에게 미나리 한 포기를 뜯어 물에 헹구는 장면을 보여달라고 부탁했다.

아주머니는 흔쾌히 한재 미나리를 한 움큼 뜯더니 그걸 흐르는 계곡물에 씻어 탈탈 털었다. 초록빛이 흔들렸고, 물방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셔터 스피드를 재빨리 1/1600초로 조정했다. 셔터를 찰칵찰칵 눌렀다.

미나리가 아주머니의 손안에서 춤을 췄고, 그 아래로 계곡물이 빠르게 흘러갔다. 젖은 미나리에서 튕겨나간 물방울들이 햇살 아래 반짝였다.

그 미세한 입자가 모두 화면에 잡혔다. 율동하는 봄을 잡아낸 기분이었다.

※태양이 작열하는 한낮인 경우가 아니라면 고속 촬영할 땐 감도(ISO)를 높게 조정해주는 게 좋다. 단, 보통 감도가 800을 넘으면 사진에 노이즈가 생기기 쉽다는 점도 기억하자.

 

 

② 무조건 누르지 말자

 

입력 : 2011.02.10

상상하세요 원하던 그 장면

박지성은 그라운드에서 뛰기 전 몸을 풀며 워밍업을 한다.

오디오 마니아는 음악을 듣기 전 최상의 음질을 즐기기 위해 오디오를 미리 켜놓고 기계를 데우며 예열을 한다.

사진을 찍을 때도 바로 이런 몸 풀기가 필요하다.

웬 엉뚱한 소리냐고? 좋은 사진을 얻으려면 오랫동안 카메라를 쥐고 상상(想像)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2007년 1월 인천 강화 교동면에 있는 작은 섬마을 교동도를 찾아갔을 때가 딱 그랬다.

주제는 '빈티지 여행'. 다시 말해 시간이 멈춰버린 것처럼 낡고 오래된 마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야 한다는 얘기였다.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마을에 들어서기 전부터 미리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야 했다.

'저 섬은 어떤 모습일까', '저 마을 안에서 난 무엇을 보게 될까'. 이 과정 없이 무작정 셔터를 누르면 그야말로 눈앞에 보이는 그대로만 찍게 된다.

보다 흥미진진하고, 그 뒷이야기가 궁금한 사진을 찍기 위해선 미리 머릿속에서 어떤 상황을 찍게 될지 떠올려보고 고민해야 했다.

골목만 찍은 모습은 밋밋하다(왼쪽). 그 안에 멀리뛰기를 하는 아이가 들어오니 비로소 상상했던 사진이 완성됐다(오른쪽).
일단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전 교동도 안 대룡시장 거리를 한 바퀴 돌았다.

1시간쯤 시간을 들여 구석구석을 돌고 나니 맘에 드는 장소가 하나 나왔다.

작은 시장 어귀 골목, 빗물에 오래 절어 얼룩진 슬레이트 벽 사이로 붉은 기와 지붕과 하얀 회벽을 지닌 집 한 채가 보였다.

울퉁불퉁한 보도블록, 초록색 테이프가 감긴 낡은 환풍구까지. 시계가 멈춰버린 것 같은 이 마을의 느낌을 한눈에 보여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 골목만 찍으려니 어쩐지 재미가 없었다. 다시 상상을 시작했다. 이런 오래된 골목에선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다방구' 또는 '오징어포' 같은 추억의 놀이를 하는 아이가 한두 명쯤 나올 것 같았다.

그 아이가 바로 저 골목길에서 뛰어노는 장면을 찍을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무작정 셔터를 누르지 말고 기다리려 보자는 생각이 든 것도 이때였다. 다시 동네를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

30분쯤 다른 곳을 어슬렁거리다 다시 그 골목으로 돌아갔다. 아하, 이런 행운이. 누가 내 머릿속을 들여다본 기분.

아이 하나가 골목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왔다.

카메라 뷰파인더에 눈을 갖다대고 조금 더 버텼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이가 혼자 멀리뛰기 놀이를 시작했다. 찰나를 낚아챌 때가 온 거다.

셔터스피드를 빠르게 조정했다. 1/250초. 찰칵. 아이가 그렇게 골목에서 폴짝 뛰었다. 상상했던 장면이 나올 때까지 참고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유창우의 쉬운 사진] ① 눈 덮인 겨울 산, 잘 찍는 세 가지 비결

입력 : 2011.01.20

멋진 설경 얻으려면 '밝게<과다노출>' 찍으세요

겨울 산 좋아하는 사람에겐 요즘처럼 신나는 때가 없다. 눈꽃이 앞다투어 피고, 앙상한 나뭇가지도 눈 속에서 화사해진다.

눈꽃이 빼곡한 산 정상, 눈밭이 펼쳐진 들판 앞에 서면 사진에 취미가 없는 사람도 절로 카메라를 꺼내 들게 된다.

이렇게 들뜬 마음으로 찍은 사진의 결과물이 뜻밖에도 무척 허무하더라고 하소연하는 사람을 종종 만난다.

카메라 셔터를 아무리 눌러도 사진이 당최 평면적으로만 나온다는 거다.

"세상이 온통 하얘서 그런 건지, 이건 그저 하얀 도화지에 대고 셔터를 누른 것과 다를 게 없더라"고 아쉬워하는 말도 들었다.

이어지는 질문도 비슷하다. "눈(雪)을 잘 찍는 방법이 따로 있는 거야?"

결론부터 말하자면, 있다. 세 가지만 기억한다면 누구나 눈 덮인 풍경을 잘 찍을 수 있다.

ISO 400 f7.1 s1/1000초, 촬영시각 오전 10시 10분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원칙은 '일찍 일어나라'는 것이다. 눈 덮인 풍경은 잘못 찍으면 그저 새하얗고 밋밋하게만 보인다.

이 풍경에 개성을 더하는 마법의 시간이 바로 아침이다. 아침엔 태양빛이 비스듬히 누워 있다. 그림자가 생겨서 입체감이 나온다.

눈 덮인 나무는 바로 이때 찍어야 한다. 똑같은 흰 눈도 빛깔이 조금씩 달라 보이는 시간이다.

어떤 곳은 눈이 부셔 바라볼 수 없을 정도의 강렬한 흰색으로, 어떤 곳은 그윽한 흰색으로 빛난다.

아침은 이렇게 다채로운 흰색을 한꺼번에 찍을 수 있는 시간이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 하나. 평소 카메라 노출 그대로 새하얀 눈을 찍으면 어둡게 나올 수가 있다.

카메라가 '흰색'을 '밝은 빛'으로 판단하고 어둡게 찍어버리는 것이다.

일반 광선이라면 조리개를 '한 스톱 반', 역광이라면 '두 스톱' 정도를 열어줄 것을 권한다.

둘째 원칙. '이야깃거리를 더하라.' 새·강아지를 넣어도 좋고, 하다못해 발자국 하나만 넣어도 사진이 재미있어진다.

이 사진은 2008년 1월 덕유산에서 찍었다. 케이블카가 설치돼 겨울 산 등반이 무척 쉬워졌다는 것을 알리는 사진이었다.

사진 속 여성은 그래서 하이힐만 신고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와 눈밭에 섰다. 여자 모델이 신은 새빨간 하이힐이 눈밭에 더욱 강조된다.

마지막 셋째 원칙. 사실 이게 가장 중요하다. 뭐냐고? 다름이 아니라 배터리를 충분히 챙기라는 것.

추운 겨울 산에선 카메라 배터리는 금세 닳는다. 배터리가 없다면 좋은 카메라와 풍경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니면 아예 따뜻한 품 속에 배터리를 품고 다니던가. 이젠 추위를 뚫고 밖으로 나가 셔터를 누르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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