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하늘 위 궁전’이라고도 불렸던 비행기 일등석이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최고급 일등석은 항공사가 ‘우리가 제공하는 서비스와 품격은 이 정도로 대단하다’고 내세우는 대표 상품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일등석 한 자리보다 다른 좌석 여러 개를 채우는 편이 수익에 도움이 된다는 계산이 기내 좌석 운영에 변화를 가져왔고, 일등석을 없애거나 줄이는 항공사가 늘고 있다. 
비싼 좌석 설치비와 20% 안팎에 불과한 저조한 탑승률, 그리고 대기업들의 출장비 절감 바람 등도 일등석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대한항공 일등석.>

 


지금은 비즈니스 클래스가 과거 일등석 못지않게 고급화되는 추세다. 승객 입장에서도 굳이 일등석을 고집할 이유가 줄어든 것이다. 
국내외 항공사들은 일등석을 없애는 대신, 그 아래 단계인 비즈니스 클래스를 강화하고 있다. 

이코노미 좌석보다 편하지만 가격은 더 비싼 프리미엄 이코노미석을 늘리는 항공사도 많다.


29일 항공 분석 전문 업체 시리움 등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일등석 좌석 수는 1260만석으로 5년 전인 2019년(2105만석)보다 40% 넘게 줄었다. 

같은 기간 항공기 총 좌석 수가 57억석에서 59억석으로 소폭 늘어난 것과 대조된다.

 

 




대한항공은 보잉 777-300ER 11대를 개조해 기존 일등석 8자리를 없애고 프리미엄 이코노미 좌석을 설치하기로 했다. 
이 항공기들은 올해 하반기부터 노선에 투입된다. 대한항공은 “다만 일등석의 역할과 수요가 있는 만큼 일등석 제도는 지속적으로 운영할 것”이라고 했다.


앞서 아시아나항공은 2019년부터 국제선 전 노선의 일등석을 아예 폐지했다. 

현재 아시아나항공의 좌석은 비즈니스 클래스와 이코노미 클래스로만 운영된다.

 

 


<델타항공의 프리미엄 비즈니스 좌석인 '델타 원'. 

델타항공은 현재 국제선 장거리 노선에서 델타 원을 최고 등급 좌석으로 운영하고 있다.>

 


해외 항공사의 일등석 정책도 비슷한 흐름이다. 

아메리칸항공은 단계적으로 국제선의 일등석을 축소하고 있다. 이미 델타항공과 유나이티드항공 등은 국제선 일등석을 폐지하고, 각각 ‘델타 원’과 ‘폴라리스 비즈니스 클래스’ 등 비즈니스 클래스가 최상위 좌석 등급으로 운영되고 있다.


일등석 가격은 이코노미석에 비해 최소 5배, 많게는 10배까지 비싸다. 

이날 조회 기준, 대한항공 인천~뉴욕 노선(6월 14~21일 일정)의 일등석 가격은 왕복 1300만원 정도다. 비즈니스석(약 660만원), 이코노미석(약 280만원)의 각각 2배, 4배 정도다.


좌석당 가격이 수백만~수천만원을 호가하기 때문에 통상 ‘돈이 되는 좌석’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사실 일등석은 수익성 구조를 보면 비효율적인 상품이다. 
일등석은 차지하는 공간이 이코노미나 비즈니스 클래스보다 훨씬 크고, 설치비와 운영비 등을 고려하면 단위 면적당 수익성은 오히려 낮다는 것이다. 
또, 일등석 평균 탑승률은 20~30% 안팎으로 알려졌다. 10개 좌석 중 7~8석을 비운 채 가는 것이다.


항공사 입장에선 효율성이 낮은 일등석을 제거하고, 수요가 충분한 좌석을 추가로 설치해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 

항공 업계 관계자는 “일등석 한 자리가 차지하는 공간에는 대략 이코노미석 8석, 비즈니스석 3석 정도를 넣을 수 있다”고 했다.


일등석 수요도 감소하고 있다. 과거 일등석은 과시적 소비를 상징했지만, 이젠 소비자들이 가격 대비 가치를 따지기 시작하면서 초고가 항공 좌석 수요는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이른바 ‘거품 소비’가 꺼진 것이다.


2022년 아메리칸항공의 바수 라자 당시 임원(CCO)은 “고객들이 일등석을 구매하지 않는다”고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기업 출장 문화가 바뀐 것도 영향을 미쳤다. 과거에는 대기업 임원 출장 시 일등석 이용이 관례처럼 여겨지기도 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기업들은 경비 절감 기조를 강화하면서 이런 분위기도 바뀌고 있다.


최근엔 일등석과 비즈니스 클래스의 품질 차이도 줄어들고 있다. 

비즈니스 좌석에서도 평면 침대, 독립형 공간, 고급 식사와 서비스 등을 충분히 제공받을 수 있게 됐다. 

승객 입장에서는 일등석을 선택할 명확한 이유가 약해진 것이다.(25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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