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과 공화당 지도부는 연방 정부가 마비되는 ‘셧다운’을 사흘 앞둔 18일, 내년 3월 14일까지 정부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임시예산안(CR) 처리에 합의했다. 
그런데 여기에 내년도 의원 연봉을 올해보다 3.8% 인상하는 내용이 들어가 양당에서 이를 문제 삼는 의원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까지 이를 문제 삼으면서 셧다운을 불과 사흘 앞두고 예산안 논의가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갔다. 
미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특히 경합 선거구 의원들이 급여 인상에 따른 유권자 반발을 두려워한다”고 분석했다.

 

 


<미 하원에서 의원 토론이 이뤄지고 있는 모습이다.>

 


미 의원의 연봉은 상·하원 모두 17만4000달러(약 2억5000만원)로 같다. 
여기에 사무실 운영비, 지역구와 워싱턴DC를 오가는 데 필요한 교통비, 직원 급여, 건강 보험 등 부가 지원을 받는다. 

미국의 대다수 공무원은 연방정부가 의무화한 ‘생활비 조정제도(COLA)’에 따라 매년 급여가 물가상승률에 연동돼 인상된다. 
그런데 의회는 지난 15년 동안 ‘의원 급여는 COLA의 적용을 받지 않고 동결한다’는 내용을 예산 지출 법안에 포함시켜왔다. 
글로벌 금융 위기가 미국 경제를 강타한 2009년 성난 유권자 민심을 달래고 고통 분담을 하는 차원에서 연봉 동결을 결의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런데 이날 합의한 임시 예산안에 급여 동결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지 않은 사실이 알려지자 상당수 의원들의 비판이 쇄도했다. 
제라드 골든 민주당 하원의원은 “의원들은 미국인의 90%보다 더 많은 돈을 받는다”며 “동료 의원 중 이 수입으로 생활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지역구 주민들이 요술 지팡이를 휘둘러 스스로 월급을 올릴 수 없듯, 의회도 마찬가지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대부분의 유권자가 우리 업무 수행 능력이 좋지 않다고 말할 때 더욱 자제해야 한다”며 “나는 임시 예산안에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소속 팻 라이언 하원의원도 “이 예산안이 통과되면 의원 연봉이 6600달러(약 950만원) 오른다”며 “유권자들이 엄청난 재정적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나 자신에 돈을 더 주자는 법안에 찬성할 수 없다. 의회는 우리 자신의 급여 인상이 아닌 국민들의 비용 절감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했다. 
애당초 정부 지출을 늘리는 데 부정적인 공화당에서도 “월급 인상에 반대한다” “이건 오물로 만든 샌드위치 같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급기야 트럼프도 JD 밴스 부통령 당선인과 발표한 공동 성명에서 “이 법안은 많은 미국인들이 크리스마스 연휴를 힘겹게 보내고 있는 가운데 의원들에 연봉 인상을 제공한다”며 “지금은 인상할 시기가 아니다”고 했다. 
트럼프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 소셜’에서 “우리가 가까운 미래에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만들 때 연봉을 올려 받을 자격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올해 초에도 골든을 비롯한 양당 의원들이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과 하킴 제프리스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에게 서한을 보내 “2025 회계연도 지출 법안에서 의원 연봉을 조정하지 말아 달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서한에서 “의회에서 지역 사회를 대표하는 건 봉사의 문제지 월급이 얼마나 되는지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초당파적 방식으로 미국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걸 국민에게 보여줄 수 있을 때까지 올리지 않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다만, 의원들 사이에선 2009년 이후 15년간 동결된 급여를 이제는 올려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장기간 동결된 연봉 때문에 인재들이 정치권 진출을 꺼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봉 인상을 지속 주장해 온 22선의 스테니 호이어(85) 민주당 연방 하원 의원은 이날 “이번 인상 폭은 사소하다”고 했다. 
그는 지난 6월 하원 세출 위원회에선 “15년 전 의회 인근의 침실 1개짜리 아파트 렌트 가격이 1100달러였는데 이제는 두 배가 넘는 2300달러나 된다”며 “부자들만이 의회에서 봉사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자존심을 갖게 해야 한다”고 했다. 
의회조사국(CRS)은 9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매년 연봉 인상이 이뤄졌을 경우 올해 의원 연봉은 24만3300달러(약 3억5000만원)가 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의원들과 달리 의회 직원들은 매년 월급이 오르다 보니, 지난해 보좌관 10명 중 1명은 의원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일부는 의원직을 던지고 두세 배 넘는 연봉을 보장하는 벤처캐피털이나 비영리단체 등 민간 분야로 이직하고 있다.


미 의회는 2022년 의원들이 지역구가 아닌 워싱턴 DC에서 공식 업무를 수행하는 동안 사용한 숙박·식사 비용을 상환받을 수 있는 보완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미 의회의 15년간의 연봉 동결은 해마다 꾸준히 자신들의 연봉을 올려온 한국 국회와 크게 대비된다. 
한국 국회의원 연봉은 올해 1억5690만원으로 지난 2009년(1억1300만원) 대비 38.9% 인상됐다. 
지난 1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내년 예산안을 보면, 내년 연봉도 1억5996만원으로 올해보다 1.9% 인상된다. 
선거 때마다 의원 연봉 삭감안이 단골로 등장하지만, 해마다 여야 합의로 인상되고 있다.(24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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