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과 노동계는 2019년 택시 기사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택시기사 완전 월급제’를 법제화했다.
기존 사납금제가 택시 기사들을 과로로 내몰리게 해 사고 위험을 높인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사납금제는 택시 기사가 회사에 하루 13만~15만원을 입금하고 나머지를 갖는 방식이다.
또 택시 기사를 위해 우버 등 해외에서는 일반화된 모빌리티 서비스의 진출도 법으로 막았다.
<논란이 많은 택시월급제 시행을 하루 앞둔 19일 오후 서울 성북구의 한 택시 회사 차고지에 택시들이 주차 되어 있다.>
월급제는 법인택시 기사의 근로시간을 주 40시간 이상으로 정하고 200만원 이상 고정급을 지급하는 제도다.
법인택시 기사의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하자는 취지로 도입했다.
하지만 기사들은 월급제 도입을 반기지 않는 분위기다.
택시업계 노사(勞使)는 여야가 월급제 전국 시행 여부를 논의한 19일 “현실을 모르는 황당한 규제 때문에 택시 산업 전체가 공멸할 위기에 놓였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택시회사 관계자는 “안 그래도 코로나 이후 경영난이 심각한데 매출과 상관없이 고정급을 주면 도산하는 회사가 속출할 것”이라고 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월급 206만원을 주려면 택시 한 대당 월 500만원 이상의 수익을 내야 한다. 보험료, 가스비 등을 충당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지난해 법인택시의 월평균 매출이 500만원을 넘은 지역은 서울(509만원)이 유일했다.
택시 기사들도 “실제로 손에 쥐는 돈이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한다.
“내가 열심히 뛰어서 더 벌 수 있는데 굳이 월급제를 시행해야 하느냐” “모두 적당히 일하고 월급을 받으면 성실한 기사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60대 택시 기사 A씨는 “젊은 기사들은 요즘 잘나가는 배달업계로 빠져 나가고 현장에는 노인이나 ‘투잡’으로 잠깐씩 뛰는 기사들이 많다”며 “주 40시간 이상 일하라고 하면 다른 일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서울시가 2022년 법인택시 기사 741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3.4%는 기존 사납금제를 선호했다.
월급제를 선호한다는 응답자는 8.7%에 불과했다.
한국노총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과 민주노총 전국민주택시노조도 지난 6월 “월급제는 실현 불가능한 제도”라는 입장을 냈다.
교통 전문가들은 “택시 기사를 보호하려는 규제가 산업 경쟁력을 더 약화시켰고 코로나까지 겹치며 이제는 택시 회사와 기사의 생존까지 위태로운 상황이 됐다”고 했다.
우버나 타다 등 새로운 서비스가 출현할 때마다 택시 기사 보호를 명분으로 신규 서비스를 금지하는 규제를 단행했지만 택시 업계는 갈수록 쪼그라들고 택시 기사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택시업계의 위기 상황은 수치로 나타난다.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9~2024년) 전국 법인택시 대수는 7만9291대에서 6만3562대로 1만5729대(20%) 감소했다.
택시기사 수는 같은 기간 10만2320명에서 7만679명으로 3만1641명(31%) 줄었다.
5년간 법인택시 기사 3명 중 1명이 업계를 떠났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법인택시 가동률은 30% 수준에 그치고 있다.
택시 10대 중 7대가 회사 차고에서 그냥 놀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개인택시 대수는 16만4000여 대로 거의 변화가 없었다.
택시기사 완전 월급제 도입이 현실을 도외시한 ‘탁상입법’이라는 비판도 있다.
민주노총이 택시기사들을 위한다며 월급제 전면 도입을 추진하자 노조 눈치를 본 정치권이 면밀한 검토 없이 법제화했다가 막상 시행할 때가 되니 ‘2년 유예’라는 어정쩡한 타협안을 들고 나왔다는 것이다.
경기 지역 택시회사 관계자는 “법제화를 추진할 당시에도 ‘현실을 모르는 입법’이라고 반대를 했지만 정치권은 귓등으로 들었다.
유예 기간이 끝나는 2년 뒤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 궁금하다”고 꼬집었다.
이양덕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전무는 “세계적으로 택시의 경영과 임금 구조를 이렇게 획일적으로 규정하는 나라는 없다”며 “택배나 배달 등으로 인력 유출을 막으려면 파트타임 등 다양한 근로 형태를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공학과 명예교수는 “최근 지자체들이 지하철·버스 할인 정책을 펴 택시업계가 더 어려운 상황”이라며 “월급제를 시행하기 앞서 택시 회사를 통폐합하고 관련 규제를 완화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24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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