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특별자치도 한라산 국립공원 관리소가 ‘라면 국물 남기지 않기 운동’을 시작한다고 1일 밝혔다. 
등산객들을 대상으로 ‘라면을 먹을 땐 수프와 물을 정량의 절반씩만 넣자’고 독려하는 캠페인이다. 
한라산 국립공원 관계자는 “봄철 등 산행객이 집중적으로 몰리는 시기에는 라면 국물 처리가 어려워 캠페인을 진행하게 됐다”며 “남는 라면 국물 양을 최대한 줄인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한라산 국립공원이 이런 캠페인까지 벌이는 건 등산객들에게 ‘컵라면’이 인기를 끌면서 라면 국물 쓰레기가 처리 가능한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원래 한라산 등 국립공원에선 ‘자연공원법’에 따라 야영장 등 일부 정해진 지역을 제외하고는 취사를 할 수 없다. 
등산객들은 도시락이나 김밥을 가져와서 먹는다. 특히 컵라면이 인기다. 
집에서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담아와 간단하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소셜미디어에서 ‘한라산 컵라면 먹기’ 인증샷까지 유행했다.


한라산국립공원은 컵라면 먹는 등산객이 늘자 2021년 8월 해발 1700m 윗세오름 대피소에 음식 처리기 2대를 설치했다. 
문제는 이 음식 처리기가 제대로 작동을 안 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음식 처리기는 미생물로 음식을 분해시키는데, 라면 국물 염분이 높아 미생물이 죽어버려 종종 작동을 멈췄다. 
국립공원 측은 “하루에 많게는 120L의 라면 국물 쓰레기가 나온다”면서 “처리기 용량은 400~500L로 부족하진 않지만, 자꾸 고장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일부 등산객은 땅에 라면 국물을 부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다른 쓰레기보다 라면 국물이 특별히 문제가 되는 건 높은 염분 때문이다. 
짠 라면 국물이 계곡 등으로 흘러가면 물에 사는 수서곤충 등 생물들이 생존을 위협받는다. 
국립환경과학원 신기식 연구관은 “계곡, 하천, 호수 등 담수는 바닷물과 달리 염분이 거의 없기 때문에 염분이 높은 라면 국물이 흘러가게 되면 담수 생태계가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환경오염도 우려된다. 
국립환경과학원 연구에 따르면, 라면 국물 종이컵 한 컵(200mL) 분량을 희석해 맑은 물로 만들려면 물 1460L가 필요하다. 라면 국물의 7300배에 달하는 물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국립공원공단은 2016년부터 국립공원 대피소 내 매점에서 라면을 팔지 않도록 했다. 
국물과 컵라면 쓰레기 등이 환경을 훼손한다는 이유에서다. 
이후 국립공원에선 생수와 햇반, 손전등 등 산행 필수 물품 몇 가지만 판매하고 있다. 
한라산도 2018년 매점이 폐쇄되면서 현재는 라면을 팔지 않는다. 
이후 보온병에 물을 넣어 와서 먹는 ‘컵라면’이 유행하게 된 것이다.

 

 




국립공원 측은 앞으로도 컵라면 자체를 금지하진 않을 예정이다. 
한라산 국립공원 관리소 관계자는 “아직 컵라면 문제가 심각한 건 한라산 정도이고, 이제 많은 등산객이 쓰레기를 집으로 잘 가져가는 등 시민 의식이 많이 높아졌다”면서 “당장은 ‘라면 국물 남기지 않기 운동’에 힘써 보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뜨거운 물을 가져온 보온병에 남은 라면 국물을 다시 담아가자는 의견도 나온다.


일본에서도 ‘라면 국물’ 처리가 문제가 되면서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다. 
2021년 컵라면 제조 회사 ‘닛신쇼쿠힌 주식회사’와 제약 회사 ‘고바야시 세이야쿠 주식회사’는 국물을 응고시키는 파우더를 개발했다. 
남은 국물에 파우더를 넣고 저으면 국물이 덩어리로 굳어져 쓰레기로 버릴 수 있는 원리다. 
또 일본 미야자키현 다카치호초(町)에서는 돈코쓰 라멘 국물을 바이오 디젤로 활용해 연료로 삼는 기차를 운행하고 있다.(24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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