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충남 홍성군의 한 목욕탕 입구. 인근 서부초등학교의 홍보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신입생 모집’이라고 적힌 포스터에는 학교에서 피아노는 물론 승마, 골프까지 배울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포스터 한쪽의 QR 코드에 휴대전화를 갖다 대니 학교 6학년 학생들이 직접 만든 광고 영상이 나왔다.
26초 길이의 이 영상에서 학생들은 “서부초 수영 어때, 승마 어때, 골프 어때”라고 노래를 불렀다.
서부초 관계자는 “작년에 도교육청으로부터 받은 지원금을 대부분 방과 후 수업에 배당했다”며 “승마, 골프, 수영 등 학생이 원하면 전부 무료”라고 했다.
승마는 홍성군이 운영하는 승마장에서, 골프·수영은 대관해 수업을 진행한다고 한다.
충남 홍성군 서부면의 공립 초등학교인 서부초는 학생 수 40명으로, 저출생의 직격탄을 맞았다.
서부초 신입생은 2020년 8명에서 2021년 6명, 2022년과 작년엔 3명으로 줄었다.
서부초 관계자는 “작년 11월부터 유치원 행사가 있을 때마다 홍보 유인물을 제작해 뿌리다가 교무부장이 포스터 아이디어를 냈다”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신입생 모집을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고 했다.
자신들이 직접 제작한 포스터를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목욕탕과 카페 등에 붙였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올해 신입생은 2명뿐이었다고 한다.
지방 초등학교들이 저출생으로 인한 폐교를 막기 위해 ‘럭셔리 호객’에 나서고 있다.
‘1인 1악기 수업’은 물론 첨단 기술을 가르쳐 주겠다는 학교도 있다.
지방 교육청에서는 이들 학교에 수천만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이런 마케팅으로 일부 학교에서는 폐교 위기를 넘겼다고 한다.
작년 11월엔 네이버 블로그에 올라온 신천초등학교 신입생 모집 홍보 글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강원 영월군 한반도면의 신천초 측은 홍보 글에서 ‘입학을 위해 전입이 필요할 경우 월 40만원을 교육 사업 주거비로 지원해준다’고 했다.
피아노·바이올린·플루트 ‘1인 1악기’ 수업, ‘드론축구’ 등 학교에서 진행 중인 다양한 방과 후 프로그램도 광고했다.
강원도와 영월군이 예산을 지원한 이들 방과 후 프로그램은 모두 무료다. 수업을 위한 악기도 모두 대여 가능하다.
영월군 관계자는 “지난 수년간 자녀의 교육 문제로 고향을 떠나는 군민들을 수도 없이 봤다”며 “마을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학교의 붕괴가 지방 소멸을 더욱 가속한다는 점을 발견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학교부터 살려보자고 나섰다”며 “올해 신천초 신입생 10명 중 3명은 경기 안산시 등 다른 곳에서 이사 온 학생”이라고 했다.
다른 지자체도 학생 유치에 나서고 있다. 전남‧북 교육청은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농촌 유학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서울이나 대도시에서 농촌 학교로 전학을 오면 학생들에겐 매월 30만~60만원의 장학금을 주고, 부모에겐 주택과 일자리도 제공한다.
저출생으로 인한 초등학교 폐쇄를 막기 위해 동문회까지 나선 곳도 있었다.
충남 보령시의 한 교차로에는 최근 ‘광명초등학교 신입생 및 전학생 모집, 축하금 지급’이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내걸렸다.
보령시 오천면의 공립 초등학교인 이곳은 올해 재학생이 14명이고 2021년 이후로 신입생이 3명을 넘지 못했다고 한다.
광명초 30회 동문회장 신세철(67)씨는 “올해 전입 학생 4명에게 각각 300만원을 줬다”며 “신입생 3명 중 1명도 전북 전주에 살던 아이를 동문회에서 유치해 데려온 것”이라고 했다.
신씨는 “1937년 개교한 학교가 사라질까 노심초사하고 있다”며 “5학년 전학생 한 명에게도 전학금 300만원과 등하굣길 자동차 기름값 500만원을 줬다”고 했다.
일각에선 이런 움직임이 미봉책에 그친다는 지적도 있다.
충남 지역의 한 초등학교 교장은 “지자체 프로젝트에 선정된 일부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지만, 공모에 탈락한 곳은 소멸이 오히려 더 가속화되는 부작용도 있다”고 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전입해 온 학생들이 길어야 2~3년 머물다가 다시 도시로 돌아가지는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다.(24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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