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기존 항생제가 듣지 않는 내성균에 감염돼 사망한 환자가 2017년 37명에서 2022년 539명이 돼 5년간 14배로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28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병원에서 많이 쓰는 항생제 종류(카바페넴 계열)에 내성을 가진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목 균종(CRE)’ 감염증 사망자가 매년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항생제는 세균을 죽이거나 증식을 억제하는 약이다.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이 1928년 발견되고, 2차 대전기 대량생산이 이뤄지면서 인류는 단순한 세균 감염으로 목숨을 잃는 일을 크게 줄였다. 
그전까지는 가벼운 상처를 입어도 세균이 번지면 사망하곤 했다. 현재 나온 항생제는 17종에 이른다. 
그런데 항생제를 남용하면서 내성을 가진 세균들이 등장했고 여기에 감염되면 기존 항생제가 듣지 않아 사망까지 연결되는 것이다. 
내성균은 감염된 환자와 접촉하거나 균이 묻은 의료 기기 등을 만져도 전파된다.

 

 




내성균인 CRE는 요로 감염을 주로 일으키고 폐렴과 패혈증 등 다양한 감염병을 유발한다. 
다른 종류 항생제도 듣지 않아 ‘수퍼 박테리아’로 불린다. 치료가 어렵고 항생제가 듣지 않아 치명률이 3배로 올라간다. 
CRE 감염 환자는 2017년 5717명에서 작년 3만8324명이 돼 6년간 6배로 증가했다. 
지난 2022년에는 코로나를 제외한 전수 감시 대상 감염병 중 CRE 감염이 32.9%를 차지했다. 
CRE 중에서도 장내세균인 CPE는 전파력이 강하고 국내에 치료 항생제가 없어 위험하다는 평가가 많다. 증가 속도도 빠르다. 
CPE 보고 건수는 지난 2017년 3052건에서 2022년 2만1623건으로 나타나 5년간 7배로 증가했다.


보건 당국은 2020년 CRE를 제2급 감염병으로 분류해 전수 감시하고 있다. CRE 외에도 내성균 5종류가 법정 감염병으로 관리된다. 
최근 국립보건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내성균 일종인 녹농균(PAE)에 대한 내성률(항생제가 듣지 않는 비율)은 2016년 14.9%에서 2022년 34.8%로 늘었고, 아시네토박터바우마니균(ABA)은 매년 86~92%의 내성률을 보이고 있다.


인류는 페니실린에 저항하는 내성균이 등장하자 새로운 항생제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세균의 적응 속도는 항생제 개발 속도보다 빨랐다. 
한 감염내과 전문의는 “모든 세균을 막을 수 있는 항생제를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내성균이 생길 때마다 바로 새로운 항생제를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했다. 
내성균 종류가 다양해지고 확산 속도도 빨라지면 “항생제 도입 이전 시대(pre-antibiotic era), 즉 페니실린 이전 시대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현재 국내의 내성균 대응책은 확산 예방 위주”라며 “내성균에 통하는 신규 항생제를 도입하는 등 항생제 정책을 다시 짜야 한다”고 했다. 
김신우 대한항균요법학회장은 “요즘 의사들 사이에선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내성균을 남긴다’는 말까지 나온다”며 “항생제로 환자들을 구할 수 없으면 단순한 세균 감염으로도 환자들이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했다.


내성균 확산은 항생제 남용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실제 감염병 말기 환자 대부분이 ‘최후의 항생제’로 불리는 특정 항생제(카바페넴 계열)를 투여받는데, 환자 상태 등을 감안할 때 불필요한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작년 대한의학회 학술 연구지 발표에 따르면, 전국 13개 병원의 말기 만성 질환자 1201명 중 44.4%가 ‘최후의 항생제’를 처방받았다. 
그중 63.6%가 불필요한 처방이었다고 한다. 감염병 전문가에게 항생제를 처방받은 환자도 27.2%에 그쳤다.


국내 항생제 사용량은 최근 줄고 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비교하면 높은 편이다. 
OECD가 작년 11월 발간한 ‘보건·의료 2023′에 따르면, 2021년 국내 항생제 처방은 인구 1000명당 16.0DDD(1DDD는 성인의 하루 복용 의약품 용량)로 OECD 30국 평균인 13.5DDD보다 높았다. 항생제를 남용할수록 내성균 발생 가능성도 커진다. 
김신우 회장은 “항생제를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각 의료 기관이 항생제 관리 전담 인력을 배치해야 한다”고 했다.


질병청은 CRE 감염증 확산을 막기 위해 밀접 접촉자 검사와 고위험군 감시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다. 
전국을 11개 권역으로 나눠 항균제 내성균을 감시할 예정이다. CRE 감염증 환자와 보균자의 격리도 강화한다.(240129)


☞CRE(카바페넴 내성 장내 세균)

항생제에 내성을 나타내는 장내 세균 중 하나. 
기존 항생제가 듣지 않아 ‘수퍼 박테리아’로 불린다. 
감염 환자와 접촉하거나 균이 묻은 의료 기기 등을 만지면 전파된다. 
보건 당국은 2017년 CRE를 전수 감시하기 시작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