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알지식 Q]유엔은 어떻게 6·25 발발 하루 만에, 北 규탄 결의안을 냈나
73년 전 발발한 6·25전쟁은 유엔이 처음으로 ‘유엔군’이라는 다국적군을 꾸려 유엔기(旗)를 사용하며 참여한 전쟁이다.
유엔이 1950년 6월 25일(현지 시각) 뉴욕 본부에서 열린 안전보장이사회(UNSC·안보리)에서 처음으로 내놓은 조치는 ‘안보리결의안 82호’ 통과였다.
결의안에는 ‘북한의 남침은 평화를 파기한 것이며 모든 적대 행위를 즉각 중지하고 북한이 군대를 38선 이북으로 철수하라’고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런데 유엔은 어떻게 전쟁 발발 하루 만에 규탄 결의안을 냈을까.
당시 한국은 유엔 가입국이 아니었지만 안보리 이사국들의 동의하에 이사회 의장의 초청을 받아 발언권을 얻었다. 전쟁 발발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미 워싱턴 DC에 있던 장면 주미 대사가 대표 자격으로 안보리에 참석하기 위해 급히 뉴욕으로 향했다.
장면 대사는 약 4분간 영어로 북한이 남침했다고 밝히고 “우리의 생존은 유엔에 달렸다”며 국제사회에 도움을 호소했다.
장 대사의 발언이 표결에 참여한 국가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긴박한 모습을 담은 역사적 동영상은 유엔의 온라인 시청각 자료실(UN Audiovisual Library)에 올라 있다.
<장면 주미대사 4분간 연설 - 유엔은 6·25전쟁이 발발한 바로 다음 날인 1950년 6월 25일(현지 시각) 오후 2시 뉴욕 본부에서 안전보장이사회를 긴급히 열었다.
유엔은 한국 정부를 초청했고 당시 워싱턴 DC에 있던 장면 주미대사(맨 앞)가 달려가 약 4분간의 연설을 통해 국제사회의 도움을 호소했다.>
결의안 82호는 안보리 이사국 11국 가운데 9국이 찬성해 통과됐다.
미국·영국·프랑스·(당시)소련·중화민국(대만) 등 5곳이 상임 이사국이었고, 유고슬라비아·이집트·인도 등 6곳은 비상임 이사국이었다.
공산국가였던 유고슬라비아는 “북한 입장도 들어봐야 한다”며 기권했다.
소련은 아예 회의에 참석하지 않아 ‘기권’으로 처리됐다.
외교가에서는 당시 소련의 불참을 두고 ‘미국의 참전을 유도해 전쟁으로 힘을 빼놓게 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등 여러 설이 돈다.(23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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