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를 부르는 ‘빙판 위의 쥐떼’
[타임아웃] NHL 팬서스 독특한 응원 문화
승리할 때마다 플라스틱 쥐 던져
약체 평가 딛고 27년만에 결승행
빙판(氷板)에 웬 쥐 떼가?
25일(한국 시각) 2022-2023시즌 NHL(북미아이스하키리그) 플레이오프 동부 콘퍼런스 결승(7전 4선승제) 4차전. 경기가 끝나자 미국 플로리다주 선라이즈 FLA 라이브 아레나 빙판이 쥐로 뒤덮였다.
하얀 빙판 위로 까만 쥐(rat)들이 여기저기 뒹굴었다. 물론 진짜 쥐가 아니라 플라스틱 모형 쥐.
홈팀인 플로리다 팬서스가 캐롤라이나 허리케인스를 4대3으로 물리치고 스탠리컵 결승 진출을 확정하자 팬들이 축하하는 의식(儀式)으로 모형 쥐를 대거 투척한 것이다.
<지난 23일 NHL 플로리다 팬서스 팬들이 승리 후 플라스틱 쥐를 빙판에 대거 던졌다.>
이런 쥐 투척 세리모니는 팬서스에 내려오는 오래된 응원 문화다.
시작은 1995년 10월 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캘거리 플레임스와 경기를 앞두고 있던 팬서스 선수대기실에 진짜 생쥐 한 마리가 나타났다.
당시 주장 스콧 멜란비(57·캐나다)는 하키 스틱으로 쥐를 후려쳐 몰아냈고, 그날 경기에서 두 골을 터뜨렸다.
동료들은 그가 “래트 트릭(rat trick)을 달성했다”고 농담을 했다. 3골을 넣는다는 의미의 해트 트릭(hat trick)에 빗댄 말이다.
<플로리다 팬서스의 매튜 카척 주위로 팬들이 던진 모형 쥐가 보인다>
그 소식을 접한 한 팬이 다음 날 경기에서 플라스틱 모형 쥐를 빙판 위로 던졌다.
쥐가 길조(吉鳥)처럼 작용해 응원하는 팀이 이기길 바라는 일종의 ‘주술(呪術) 행위’였다.
이게 사람들에게 놀이처럼 전파하면서 유행처럼 번졌다.
효과를 본 걸까? 1993년 창단한 팬서스는 그 시즌 창단 후 첫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뤄냈다.
이젠 걷잡을 수 없었다. 팬서스는 당시 약체라는 예상을 뒤엎고 리그 결승전인 스탠리컵 파이널까지 진군했다.
홈 경기 때마다 플라스틱 쥐들이 산더미처럼 빙판에 날아들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콜로라도 애벌랜치에 4전 전패로 패해 준우승에 만족했다.
구단은 이 독특한 응원 문화에 재미를 들여 이후 경기장 내에서 5달러를 받고 투척용 플라스틱 쥐를 팔기까지 했다.
그러나 불필요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양산한다는 비판에 직면하면서 한동안 이 쥐 투척 문화는 뜸해졌다.
그러다 올 시즌 다시 활발해졌다.
팬서스는 올 시즌 정규리그에서 승점 92로 동부 8위를 기록, 플레이오프에 턱걸이했다.
그런데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역대 최다승(65승)과 최다 승점(135)을 기록한 정규리그 1위 보스턴 브루인스를 4승3패로 꺾었다.
NHL 플레이오프 역사상 최대 이변이란 말까지 나왔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콘퍼런스 준결승에선 토론토 메이플리프스를 4승1패, 콘퍼런스 결승에서는 허리케인스를 4전 전승으로 물리치고 드디어 결승에 올랐다.
27년 만. 쥐 투척 세리머니를 시작한 그 이후 처음이다.
경기에서 이길 때마다 팬서스 팬들은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모형 쥐를 빙판 위에 마구 던지면서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최종 우승을 위한 마지막 관문은 서부 콘퍼런스 댈러스 스타스와 베이거스 골든나이츠 승자와 붙도록 짜여 있다. 골든나이츠가 3연승으로 1승만 남겨 뒀다.
골든나이츠가 올라가 팬서스와 대결한다면 누가 이기든 첫 우승이다.
팬서스가 쥐와 함께 과연 정상을 정복할 수 있을까. 미국 하키 팬들은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23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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