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 있는 한 일본식 술집에서는 참이슬·처음처럼·진로 같은 국산 일반 소주와 카스·테라 같은 국산 맥주를 1병에 1만원씩 판다. 
강남구 신사동의 한 고깃집은 소주·맥주를 9000원씩 받는다. 
강남역 인근에서 근무하는 회사원 한모씨는 “강남에서는 퇴근 후 저녁 식사에 소주와 맥주를 섞은 ‘소폭’ 한 잔 마시려면 2만원 가까운 돈이 든다”며 황당해했다. 
강북에서도 주류 인플레이션이 심각하다. 
서울 효자동의 한 한정식 집은 소주와 맥주를 병당 7000원 받고, 광화문 인근 유명 칼국수 집은 소주·맥주를 6000원씩에 판다.


작년에 시작된 주류 가격 인상으로 ‘소주 6000원 시대’가 현실이 될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가운데 이미 상당수 식당은 주류 가격을 최고 1만원까지 올려 받고 있다. 
주류 업체들은 “원부자재 가격 상승”을, 외식 업체들은 “소주·맥주 출고가 인상”을 이유로 주류 가격 상승을 설명하지만 소비자들은 “출고가는 10원 단위로 오르는데 판매 가격은 1000원씩 뛴다”며 한숨을 쉰다.

 

 




작년 소주와 맥주 가격은 최근 몇 년 새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소주는 7.6%로 2013년(7.8%) 이후 최고, 맥주 역시 5.5% 올라 2017년(6.2%)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주류 가격 인상은 작년 2월 시작됐다. 
소주 업체들에 주정(酒精)을 판매하는 대한주정판매가 주정 가격을 7.8% 인상하자 같은 달 하이트진로와 롯데칠성음료가 참이슬(7.9%)과 처음처럼(7.7%) 출고가를 인상했다. 
그다음 달에는 카스의 오비맥주와 테라·하이트의 하이트진로가 국산 맥주 가격을 7.7%씩 올렸다. 
같은 해 4월 맥주 주세가 인상되는 것을 선반영한 것이다. 
11월에는 롯데칠성음료가 클라우드 맥주 값을 평균 8.2% 인상했다. 
여기에 오는 4월 맥주 주세가 L당 885.7원으로 30.5원 오르면 주류 업체가 이를 반영해 출고가를 또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가 주류의 출고 가격 인상 폭에 비해 식당이나 주점에서 파는 가격이 곱절 이상 뛴다는 것이다. 
실제 2016년 이후 소주 출고가는 2019년(참이슬 65.5원, 처음처럼 73원)과 작년(참이슬 85.4원, 처음처럼 65.5원) 두 번 인상분을 합쳐도 200원이 채 되지 않는다. 
그사이 식당이나 주점의 소주 판매가는 4000원에서 6000원 이상으로 껑충 뛰었다.


맥주는 경쟁이 심해진 2019년 말에는 오히려 출고가가 내렸고, 작년 인상분을 따져봐도 클라우드 생맥주 20L 기준 2980원이 올랐다. 
500ml 생맥주 한 잔이 74.5원 비싸진 것이다. 
하지만 서울의 일부 치킨 집과 호프 집에서는 이미 생맥주 한 잔 가격이 6000원에 이른다. 
2~3년 전 3000~4000원 받던 데서 2배가량으로 오른 것이다. 병맥주 가격도 4000원에서 6000~1만원으로 올랐다.


주류 업체와 외식 업계에서는 “원부자재 비용과 인건비 상승으로 어쩔 수 없다”고 가격 인상을 합리화하지만 본지가 주류 업체들의 공시를 비교해 본 결과 작년에 비해서는 올랐지만 2~3년 전과 비교하면 원부자재 비용이 떨어진 품목도 있었다.


하이트진로가 사용하는 맥주맥 가격은 2019년 kg당 1458원에서 작년 1~3분기 963원으로 34%나 하락했다. 
롯데칠성음료가 납품받는 병·페트 등 용기 가격도 2019년(183.8원)에 비해 19%나 낮아졌다. 
게다가 최근 알코올 함량이 낮은 ‘저도수’ 열풍으로 소주 한 병에 들어가는 주정은 양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일반적으로 소주의 주정 비율은 10~12%이고, 1920년대 35도로 시작한 소주 도수는 현재 16도까지 낮아졌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주정 함유량 감소로 원가 절감의 이득을 누리는 주류 업체가 출고가를 내린 적은 한 번도 없다”며 “오히려 가격 인상을 지속해 주류 업체의 영업이익률만 높아지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과 재료비 인상으로 식당과 주점을 운영하는 소상공인들의 부담이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주류 출고가에 비해 가격 상승분이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다. 
홍성태 한양대 명예교수는 “소주가 더 이상 ‘서민 술’이 아니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23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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