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 가족 가장(家長)인 이모(49)씨가 지난달 부담한 통신 관련 비용은 22만원이 휠씬 넘는다.
본인을 비롯해 아내와 고등학생인 딸, 초등학생인 아들 모두 같은 통신 업체에 가입돼 있기 때문에 가족 간 결합 할인 혜택과 2년간 통신 업체를 바꾸지 않겠다는 선택약정 할인(월 이동통신 요금의 25% 감면)을 챙겨받았지만 여전히 부담되는 액수다.
자세한 내역을 들여다보니 이씨 본인은 월 이통 요금과 스마트폰 단말기 할부금을 합쳐 약 7만원, 아내는 이통 요금과 단말기 할부금까지 약 6만1000원을 냈고, 저렴한 청소년 요금제를 쓰는 딸과 아들에겐 각각 약 2만3000원과 1만9900원이 청구됐다.
집에서 쓰는 인터넷 회선 요금 약 3만7900원(유선전화·인터넷TV 결합상품)에 가족들이 즐겨보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넷플릭스 이용료 1만3500원(동시 2명 이용 가능한 요금제)을 다 합치니 총 22만6220원에 달했다.
이씨는 “통신 업체가 제공하는 할인 혜택을 받고 있는 데다, 비용들이 각기 따로 청구돼왔기 때문에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었다”며 “하지만 정작 이렇게 합쳐보니까 정말 쉽게 볼 문제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통계청이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발표한 가계(家計) 동향 가운데 통신비 지출은 전년 동기 대비 2.8% 증가한 월 평균 13만1000원이었다.
하지만 이씨 가족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일반 국민, 특히 서민들이 체감하거나 실제 부담하는 통신 관련 비용 지출은 훨씬 더 많다.
현재 통계청이 매년 분기마다 발표하는 가계 통신 지출 항목은 스마트폰 같은 통신 장비와 이동통신·유선전화·인터넷 요금을 집계한 수치다.
이 집계에서는 최근 통신 3사가 주도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는 각종 OTT는 빠진다.
실제로 국민들의 OTT 이용률은 지난 2020년 66.3%에서 지난해 72%로 증가(방송통신위 조사)했고 국내 유료 OTT 가입자 중 60.7%는 OTT를 2개 이상 이용(정보통신정책연구원 조사)하고 있다.
우리나라 통신요금 체계가 소비자들이 실제로 쓰는 데이터양보다 휠씬 높은 요금제에 가입하도록 유도하는 기형적 구조라는 점도 국민의 통신비 부담을 줄이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국내 5G 이용자 가운데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 가입자들이 쓴 1인당 월 평균 데이터양은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50.4GB(기가바이트)로 집계됐다.
하지만 통신 3사 대리점에서 가입 가능한 5G 요금제에는 데이터 40~100GB 구간에 해당되는 정규 요금제(성인 기준)가 없다.
통신 3사의 5G 요금제를 보면, SK텔레콤은 24GB(월 5만9000원) 다음이 바로 110GB(6만9000원)로 넘어가고, KT 역시 30GB(6만1000원) 다음이 110GB(6만9000원)이다.
LG유플러스도 31GB(6만1000원) 다음이 150GB(7만5000원)로 중간 구간을 커버하는 요금제(중간요금제)가 운영되지 않고 있다.
무제한 요금제 가입자들조차 데이터를 모두 소비하지 못하는데 어쩔 수 없이 110GB 이상 요금제 또는 무제한 요금제(월 8만원 이상)를 쓰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저가 요금제로는 데이터가 부족하기 때문에 더 비싼 요금제를 쓰도록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는 불만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2019년 4월 국내에서 5G 서비스가 상용화됐지만, 지난해 7월까지 3년 3개월간 통신 3사의 5G 요금제에는 20~30GB 데이터 구간 요금제도 없었다.
10GB(LG유플러스는 12GB) 미만이거나 110GB 이상이었다.
소비자들의 중간요금제 출시 요구에도 당시 통신 3사는 “전국에 5G 망(網) 인프라 투자를 계속해야 하는 만큼 아직까진 고가(高價) 요금제가 주축이 될 수밖에 없다”고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지난해 초 새 정부 출범 이후 중간요금제를 국정과제로 추진하자, 통신 3사는 지난해 8월 잇따라 20~30GB대 요금제(SK텔레콤 24GB, KT 30GB, LG유플러스 31GB)를 내놨다.
우리나라 전체 5G 이용자의 평균 데이터양이 20GB대인 점에 맞춘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소비자의 요금 선택 폭을 넓히기에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 많다.
국회 과방위 소속 윤두현 의원실(국민의힘)이 지난해 말 전문 업체에 의뢰해 19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68%가 통신 3사의 20~30GB 구간 요금제에 대해 ‘데이터가 부족하다’고 했다.
또 바람직한 중간요금제 데이터양을 묻는 질문에는 “월 40GB 이상’이어야 한다”는 응답(41%)이 가장 많았다.
실제로 해외에선 다양한 중간요금제를 운영하고 있다.
과기정통부가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캐나다 통신사 로저스는 5G 요금제 데이터를 15·25·50GB로 나눠서 운영하고, 독일 통신사 O2도 20·40·60GB 등으로 데이터를 구분해 제공한다.
특히 국내 통신 3사의 합산 영업이익이 역대급 최고 수준에 육박하면서 요금제 다양화 요구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지난해 통신 3사의 합산 연간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8.6%가 늘어난 4조3835억원으로, 2년 연속 4조원을 돌파했다.
SK텔레콤과 KT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각각 전년도보다 16.2%, 10.4% 증가했고, LG유플러스는 처음으로 연간 영업이익이 1조원을 넘었다.
매출은 통신 3사 합산 56조8610억원을 기록했다.
이들이 호실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은 LTE(4세대 이동통신)보다 요금제가 비싼 5G 가입자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통신 3사의 5G 가입자는 2805만9343명으로 같은 해 1월 대비 30.1% 증가했다.
통신 3사가 가입자당 평균 매출(ARPU)이 가장 높은 5G 이용자를 확보해 영업이익을 올린 만큼, 소비자들이 합리적인 요금제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기정통부는 ‘2023년 업무 계획’에 5G 중간요금제 추가 도입 추진을 명시한 데 이어, 통신 3사의 독과점 체제가 공고한 통신 시장의 경쟁 활성화를 위해 제4이동통신사 도입도 추진하기로 했다.(230214)
'한 줄의 斷想' 카테고리의 다른 글
[21664]저출산 여파로 신입생 없는 학교들이 속출하고 있는 반면, 신도시가 생기면서 (0) | 2023.04.04 |
---|---|
[21663]문제는 한국에서 공부할 준비가 안 된 유학생들까지 무분별하게 입학하면서 (0) | 2023.04.03 |
[21661]집은 있지만 이자 부담에 치여 번 돈에서 원리금 갚고 남는 돈으로 겨우 생활비를 (0) | 2023.04.03 |
[21660]앞으로 제임스가 한 골씩 넣을 때마다 그 자체로 신기록이 된다. (0) | 2023.03.28 |
[21659]대학가에서 수년간 원룸과 기숙사에 밀려 사라지는 추세였던 ‘하숙’이 다시 인기를 (0) | 2023.03.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