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대가 많이 찾는 서울 강남구의 한 맥줏집은 최근 시급 1만2500원 홀 서빙과 주방 보조 아르바이트(알바) 직원으로 각각 54세 남성과 63세 여성을 채용했다.
가게 사장 이모(45)씨는 “50대 이상 직원을 뽑은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사람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 ‘나이 무관’이라는 알바 공고를 낸 끝에 가까스로 채용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젊은 사람들은 1~3개월 일하다 그만두는 경우가 많은 데다 아예 아르바이트 자체를 안 하려 한다”며 “지금은 나이가 어떻든 본인 의지만 있으면 뽑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지난해 9월 28일 부산진구 부산시민공원 다솜광장에서 열린 '2022 부산장노년 일자리 한마당'을 찾은 구직자들이 채용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편의점, 호프집, 카페처럼 주로 청년층이 알바를 뛰는 매장들에 중·장년 알바 직원이 늘어나고 있다.
극심한 인력난이 10~30대 젊은 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져 온 홀 서빙이나 손님 응대 같은 서비스 직종 풍경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8일 아르바이트 중개 플랫폼 알바몬에 따르면, 작년 1~8월 홈페이지 내 ‘장년(50대 이상) 알바 채용관’에 등록된 공고 건수는 339만4648건으로, 1년 전 같은 기간의 205만8700건보다 64.8%, 2년 전 같은 기간의 119만2458건보다 184.6% 늘었다.
특히 외식·음료 업종 공고는 1년 사이 94.3% 증가했다. 중·장년들의 알바 구직도 급증했다.
알바천국의 경우 작년 연령대별 알바 지원 건수에서 50대는 2021년보다 62.5%, 60대는 82.7% 증가했다.
전체 연령대 알바 지원 건수가 같은 기간 26.6% 증가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말 그대로 급증이다.
중·장년과 노년 알바가 증가한 것은 10~30대 젊은 층이 알바를 외면하고,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 출생자)가 본격 은퇴를 시작한 것과 관련이 있다.
젊은 층이 매장 알바 대신 음식 배달 라이더처럼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만 일하는 앱랜서(앱+프리랜서)로 빠져나가면서, 구인난을 겪는 소상공인들이 나이 지긋한 알바생 채용을 늘리고 있는 것이다.
이창호 전국호프·음식점연합회 대표는 “‘요새 학생들은 다 어디서 뭘 하는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자영업자들끼리 할 만큼 대학교 방학 시즌에도 젊은 알바 지원자가 없다”며 “최근엔 식당에서 구인 공고를 내면 5명 중 4명은 장년 이상 지원자”라고 했다.
통계에서도 이 같은 변화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통계청 직업·연령별 취업자 통계에 따르면, 전국 서비스 종사자 취업자는 2019년 상반기 309만1000명에서 작년 상반기 318만7000명으로 3.1% 늘었다.
그런데 15~29세는 63만8000명에서 61만명으로 감소한 반면 50대 이상은 139만1000명에서 153만3000명으로 증가했다.
“중·장년 직원들을 채용해 보니 장점이 많다”는 가게가 늘고 있는 것도 중·장년 알바가 늘어나는 한 원인이다.
경기 성남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30대 조모씨는 주 45시간 야간 알바 직원으로 67세 남성을 고용했다.
조씨는 “학업, 취직 같은 이유로 짧게 일하다 떠나는 젊은 사람들과 달리 오래 일하려 하고, 상대적으로 더 주인 의식을 가지고 일한다”며 “앞으로도 가능하면 나이 많은 사람을 직원으로 뽑고 싶다”고 했다.
경기 구리에서 11년째 편의점을 하고 있는 김모(59)씨도 “사무직으로 일하다 은퇴하고 카페 아르바이트 경험도 있는 64세 남성에게 작년 7월부터 야간 근무를 맡기고 있다”며 “신용카드 단말기를 잘 쓸지 걱정이 많았지만 일도 꼼꼼하게 잘하고 손님 응대도 젊은 알바보다 훨씬 차분하게 잘한다”고 말했다.
구인구직 업계는 이 같은 변화에 맞춰 장년·시니어 구직자를 잡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전에는 알바 공고에 ‘35세 이하만 지원 권고’ 등의 연령 범위를 설정하기도 했지만, 최근엔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알바천국은 작년 10월 모바일 앱에 ‘중장년’ 카테고리를 신설했다.
중·장년 구직자의 활동량이 최근 늘어나자, 구직자 편의를 위해 알바천국 등록 공고 중 연령 범위를 중·장년 대상으로 설정한 공고를 한 번에 모아서 보여주는 것이다.
알바천국 관계자는 “추후 중·장년층 구직자의 편의성 증대를 위한 서비스 고도화를 계속해 나가겠다”고 했다.
고용 시장에 나오는 시니어 일자리도 다양해지고 있다.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 관계자는 “고학력에 업무 역량도 좋은 베이비붐 세대는 할 수 있는 일도 다양해 은행에서 고객을 안내하는 것처럼 의사소통 능력을 요하는 직종이나 사무직에서도 시니어를 채용하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230109)
'한 줄의 斷想' 카테고리의 다른 글
[21623]“아직도 청춘!”을 외치는 어르신들로 국일관이 이렇게 북적거리게 된 것은 (0) | 2023.03.02 |
---|---|
[21622]대학생을 가르치고 연구해야 할 교수가 입학생을 모집하는 ‘영업사원’으로 전락한 (0) | 2023.03.02 |
[21620]2025년부터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통합하고 만 3~5세 교육비를 전액 무료화하는 (0) | 2023.02.27 |
[21619]아파트·상가 뿐만 아니라 고속도로에서도 충전 문제로 다툼을 벌이거나 관청에 신고하는 (0) | 2023.02.27 |
[21618]기존 아파트 이름을 바꿀 때는 자치구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재건축 등으로 (0) | 2023.0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