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조선기술책임자로 복무하던 항만기지에서 있었던 일, 
사령관 사무실 문 바깥 손잡이가 새로 필요하게 되어 나는 신참 기술병을 보내 손을 봐주게 했다. 
5분 뒤 되돌아온 기술병은 철물상의 문 손잡이가 동이 났다고 보고했다. 
“그러면 수단껏 해보라구. 자네가 어디서 손잡이를 구하든 나는 상관하지 않을테니까 임무만 완수해.” 
그날 저녁 사무실을 나가려던 나는 문의 안쪽 손잡이만 쥐고 사무실 바닥에 벌렁 나자빠지고 말았다.

 

 

<눈부시다 불끄자>




우리 부대로 새로 전속온 한 소위가 연대 주둔 지역을 걸어가고 있는 데 어떤 사병이 경례를 하지 않은 채 지나갔다. 
불경한 태도에 화가 난 소위는 그 사병을 불러 세우고 경례를 100번 반복하도록 명령했다.
이런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한 상급장교가 다가와서 무슨 일인가 물었다. 
소위가 여차여차한 곡절을 얘기하자 그 장교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소위, 귀관의 조치는 아주 정당해. 하지만 명심하게. 복무규정에 따르면 귀관도 경례를 받을 때마다 답례를 하게끔 되어 있네.”

 

 

<이게 내 새낀가?>

 



여왕이 우리 영국공군기지를 방문하게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부대에서는 경비견 한 마리를 선물하기로 하고, 몇 주일간 그놈에게 앉는 법과 앞발을 여왕에게 내밀며 인사하는 법을 훈련시켰다. 
실습중 여왕의 대역은 우리 기지의 부관 부인이 맡아주었다.
여왕의 방문 당일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개는 여왕 앞에 충직하게 앉아 있었다. 
그러나 “여왕폐하께 악수!”하고 명령했더니 그놈은 부관 부인 앞으로 걸어가 앞발을 슬쩍 내밀었다.

 

 

<넌 좀 비켜라>

 


1940년 우리 부대는 사우스웨일스에서 막사까지 송수관을 설치하기 위해 길이 12km되는 도랑을 팠다. 
우리는 진흙에서부터 단단한 바위까지 온갖 종류의 땅을 곡괭이로 파야 했다. 
도랑 깊이는 1m였는데 유난히 엄하고 괴팍한 하사가 잣대를 하나 들고 왔다갔다하며 깊이를 재어 보고 돌아다녔다. 
어느 날 놀랍게도 그는 작업을 반 시간 일찍 끝내주었다. 
우리들이 일을 아주 잘해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날 저녁 7시에 별안간 집합 나팔소리가 나서 우리는 모두 옷을 입고 나가 정렬했다. 
누군가가 하사의 자막대기를 몇 센티미터 잘라낸 것이 들통났던 것이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구축함 「어시니보인」 호의 우리 승무원들은 캐나다 해군 전체에서 가장 덩치 큰 존스라는 수병이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큰 자랑으로 여기고 있었다. 
어마어마하게 큰 몸집과 무게로 전함대에 널리 알려져 있던 그 친구는 가끔 선의의 놀림감이 되곤 했다.
하루는 우리 배가 북대서양 뉴펀들랜드 근해를 항해하고 있었는데 큰 폭풍우가 몰아쳤다. 
갑자기 배는 불가항력적으로 기울기 시작, 좌현쪽으로 거의 눕다시피 했으며 쉽사리 바로 설 수 없을 듯했다. 모두들 몸을 가누느라 죽을 힘을 다하고 있는데 확성기로부터 함교 당직사관의 긴장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존스수병은 우현으로 가라!”

 

 

<고양이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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