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척,아프다

                      길상호






술 취해 전봇대에 대고
오줌 내갈기다가 씨팔씨팔 욕이 
팔랑이며 입에 달라붙을 때에도 
전깃줄은 모르는 척, 아프다 
꼬리 잘린 뱀처럼 참을 수 없어 
수많은 길 방향 없이 떠돌 때에도 
아프다 아프다 모르는 척, 
너와 나의 집 사이 언제나 팽팽하게 
긴장을 풀지 못하는 인연이란 게 있어서 
때로는 축 늘어지고 싶어도 
때로는 끊어버리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감전된 사랑이란 게 있어서 
네가 없어도 나는 전깃줄 끝의 
저린 고통을 받아 
오늘도 모르는 척, 
밥을 끓이고 불을 밝힌다 
가끔 새벽녘 바람이 불면 우우웅… 
작은 울음소리 들리는 것도 같지만 
그래도 인연은 모르는 척. 


..............
1973년 충남 논산 출생
한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0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오동나무 안에 잠들다>. 
현대시동인상, 이육사문학상 신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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