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한 할아버지의 글이 잔잔하면서도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
다섯 살짜리 어린 손녀와 해변가 작은 집 옆 그물침대에 나란히 누워 나눈 대화 내용이다.

 

"잠들었나 했다.

녀석이 일어나 앉으며 물었다.
'할아버지 몇 살이야?'

'예순여섯.'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렇게 많아?'
마음은 19살이라고, 좀 아쉬워하는 뭔가를 덧붙이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거울을 들여다볼 때 그 속에서 나를 되쏘아보고 있는 노인이 누구인가 놀라곤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냥 입을 닫았다.
그리고 가만히 몸을 숙여 손녀의 머리 위에 입을 맞췄다.
자식들, 그 자식들의 자식들을 키우며 앞뒤 돌아볼 겨를 없이 비틀거리며 살아온 43년,

그 숱한 이야기를 덧셈 뺄셈도 아직 배우지 않은 어린 손녀에게 들려줘 봐야 뭐하겠나

싶었다.

 

 


어깨에 바짝 다가붙은 손녀에게 할아버지 같은 질문을 했다.

'너 이다음에 크면 뭐가 되고 싶어?'

입에 넣었던 엄지손가락을 빼면서 웅얼거렸다.
'체조 선수랑 발레 댄서….'

 


그리고 몇 분이 지났을까.

지나가던 바람이 녀석의 머리카락을 내 얼굴에 불어놓고 갈 때 불쑥 말했다.
'할아버지, 나 삼십 살 되고 싶어.'

'삼십살?'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

한동안 대답을 하지 않는다.
'왜 삼십 살이 되고 싶어?'

내 곁에 안기면서 말했다.
'할아버지 죽을 때 나 어린 거 싫어.'

 


아득히 저 멀리 부서지는 파도가 보였다.
아무 소리도 하지 못했다. 그냥 헛기침을 했던 것 같다.
자기가 얼마나 어린 건지, 내가 더 이상 주변에 없으면 얼마나 슬프게 될지 알고 하는

말일까.
'삼십살'이라는 나이를 대기 위해 계산을 한 근거는 뭘까.
내가 죽을 때 어린 게 싫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설명해보라고 하지 않았다.
손을 잡고 걸어 주방으로 갔다.
토마토 치즈 샌드위치 두 개를 만들었다.

동맥경화를 일으킨다는 마요네즈를 듬뿍 발랐다.
녀석이 돕겠다며 의자 위에 올라섰다.
집게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뱅뱅 말아돌리는 게 제 어미가 그랬던 것과 영락없이

똑같다."(13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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