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는 이런 때도 있다.
날씨라는 거, 아침에 창창한 하늘이 활짝 열리는 날은 그거 하나만으로도 소소한 행복이 되는 날.
아침부터 답답하게 정체된 공기가 무겁게 누르는 가운데 충북 괴산과 문경을 동서로 가로 지르는
백두대간 구간인 장성봉과 막장봉으로 산행을 가는 길이다.그런데 3시간 정도 지나도 안개는 흐름이 없고
조금은 개운치 않은 기분으로 산을 오르는데 바지가 땀으로 칭칭 감겨온다.그 느낌은 여름들어 처음이다.
그래도 구간이 조금이라도 끊기는 지점에선 신선한 바람이 넘나들어 두팔 벌리면 금새 땀이 날아가는
것은 요즘 소제가 좋은 기능성 옷 덕분이다.
여름에는 수목이 우거져서 정상에 서지 않으면 사방을 조망할 수가 없다.그래서 겨울산행이 좋은점도 있다.
뭔가 있겠지하는 기대감으로 장성봉 정상에 올라도 눈 앞은 막막하고, 다시 올 기약도 없는데 흐릿한
기억만 안고 간다.
누구나 자기가 열중하는 것에 지배를 당한다.그래서 장소 불문하고 산으로 가는 날은 마치 잠재된
심미안이 열리기라도 한듯 예찬일색이 된다.그런데 이렇게 흐린날은 심미안적으로 보려고 해도 그냥
심드렁할 뿐이다.그러나 아직 더 가야하는 여정이 남았기 때문에 분명 놀라운 풍경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다음 코스인 막장봉으로 간다.그런데 오늘의 목적지는 무슨 산이란 이름이 아니라 봉이라고
하는 것은 백두대간 구간의 한 봉이여서가 아닐까 추정을 한다.장성봉은 좀 가늠이 가는 이름인데
막장봉은 이름의 유래를 가늠이 안 되지만 장성봉의 끝지점이란 생각도 들고 광산의 막장? 잘은
모르지만 인생막장이 될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위험이 있는 곳은 아닌 것 같았다.
막장봉에서 점심을 먹고 이어서 일부는 다른코스로 가고 또 다른 몇몇은 예정대로 정해진 코스로 가는데
역시 산에선 실망이란 없어 하면서 가는데 곳곳에 멋진 바위와 소나무들이 이길로 오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했다.`백두산 천지바위, 통천문,코끼리바위`의 위용이 압도적이었다.백두산 천지바위는 의자같은
모양으로 생겼는데 마치 옥황상제께서 가끔 하강하시는 자리가 아닐까 싶을정도로 절묘하게 생겼고
통천문은 잘 조화된 선바위가 맛대고 서서 작은 틈을 내어주어 하늘과 만나는 문을 만들었으며 코끼리
바위는 거대한 맘모스형으로 곧 움직일 듯한 힘이 느껴졌다.
그 멋진 구간을 지나면 하산길에는 인위적으로 모양을 만들어 놓은듯한 적송 소나무 두그루가 있다.
언뜻 생각나는 것은 며칠 전 어느 노 사진작가가 작품을 찍기 위해 주위의 걸리는 나무들을 베어버렸다는
기사를 봤다.그는 그만큼 인생을 살면서 숫한 작품을 남겼을지는 모르지만 그의 사진은 기술로 만들어진 것이지
영혼이 실린 작품은 분명 아닐꺼란 생각이 들었다.모든 장르의 작가들은 자기 작품에 영혼까지 담는다.
진정으로 소나무를 사랑해서 찾아다니면서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인정사정 없이 하찮은 나무라 해서
무참히 살해할 정신은 아니었을텐데 그의 이기심이 평생을 살아 온 명성을 한 순간에 무너뜨리고 말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여론이 너무 안 좋기 때문이다.요즘은 비밀이 없는 세상이어서 매사에 조심해야 한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오늘 본 이 소나무들이 그 노인을 못 만났다는 것이다.잘생긴 소나무는 그의 작품이
되었겠지만 나머지 들러리같은 나무들은 희생이 되었을테니 말이다.
한없이 무료로 제공되고 무한 리필까지 되는 이 아름다운 자연을 잘 보호하지 않으면 우리는 자연의
분노로 어쩌면 인류도 지구상의 멸종위기종이 될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깨우쳐야 한다.
아침에 잔뜩 찌뿌렸던 하늘이 고맙기도 한 것은 비를 모아 참고 참았다가 내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소나기를
내렸다.아찔하게 그 순간을 피하게 해 주어서 고마운 하루였다.내 갈증만큼이나 대지도 갈증을 풀었으리라.<반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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