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身 가족'이 몰고올 후폭풍

 


바야흐로 싱글이 대세다.
"연애는 화려한 오해요, 결혼은 참혹한 이해"란 경구(警句)든, "판단력이 부족하여 결혼하고, 인내력이 없어 이혼하는데,

기억력이 흐려져 재혼한다"는 유머든, 결혼을 향한 야유와 풍자가 넘쳐난다.
덕분인가, 최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30~34세 여성 중 미혼 비율이 1995년의 6.2%에서 2010년 28.5%로 증가했고,

같은 기간에 30~34세 미혼 남성 비율은 18.6%에서 49.8%로 늘었다고 한다.
2010년 현재 35~39세 남성 중 26.9%가 미혼이요, 40~44세 남성의 미혼 비중 또한 14.8%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싱글의 가파른 증가 추세는 이미 선진국에선 새로울 것이 없는 현상이요, 이웃 일본에서도 '기생적(寄生的) 싱글'이 사회문제로

부상한 지 오래다.

하지만 결혼 적령기 압력이 남달랐던 탓에 '보편혼(婚)'이 대세를 이루던 우리로선 독신(獨身) 인구의 급증이 충격으로 다가온다.

 


실제로 결혼 지위 범주부터 서구와 우리는 문화적 차이가 감지된다.
우린 관례적으로 미혼, 기혼, 이혼, 사별, 기타로 범주화하는 데 익숙하다. '미혼(未婚)'이란 표현 속엔 아직 결혼하지 않았지만

언젠간 결혼할 것이란 의미가 함축되어 있고, '기혼(旣婚)' 범주가 더 세분되는 대신, 이혼 후 재혼(再婚)한 사람을 어느 범주에

포함해야 할지는 모호한 분류법을 갖고 있다.
반면 서구에선 '한 번도 결혼한 적 없음' '결혼 중'(초혼·재혼 여부를 불문하고) '독신'(이혼·사별 여부를 불문하고),

그리고 '사실혼'으로 나눈다.
현재 배우자가 있는지 없는지가 기준이 되고 있는 셈이요, 생애 주기를 지나가는 동안 누구든 '독신'과 '유(有)배우자' 상태를

반복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과거엔 빈곤이나 성격적 결함 등으로 인한 '문제적 독신'이 주를 이루었다면 오늘날의 독신은 그 의미가 질적으로 다르다.
예전 결혼은 개인의 생애 주기에서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통과의례'적 성격이 강했지만, 이제 결혼은 신중히 결정해서 구입하는

'사치품(luxurious item)' 성격이 강해졌다.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선택하는 품목이니만큼 선택할 때 가능한 모든 조건을 따져보고 결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독신율 증가에는 개인의 자유와 안락을 최우선 순위에 두는 현대인의 가치관도 일조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저속(低速) 성장 사회로 진입하면서 아버지보다 못한 남자와 결혼하여 계층 하강 이동을 하느니 차라리 부모의 우산 아래

월급을 용돈으로 쓰면서 풍족한 삶을 누리겠다고 선언한 일본의 '기생적 싱글' 현상은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다.

 


'싱글 대세론'의 파급효과는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어 사회 곳곳에 전방위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다.
우선 독신율 증가는 저출산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란 우려가 고개를 든다. 독신 증가와 더불어 저출산 위기를 경험했던

서구에선 결혼과 출산의 분리를 통해 저출산 위기를 통과했다.
일례로 스웨덴에선 '혼외(婚外) 출산'이란 용어 자체를 폐기하면서 모든 형태의 출산을 국가가 지원하고 있고,

프랑스에선 동거(同居) 커플의 자녀를 기혼 커플 자녀와 동등하게 대우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노인 싱글의 증가도 주목해야 한다.
60세 이후 홀로 될 확률이 25%를 넘나드는 서구에선 요즘 동거는 하되 각자의 경제생활은 따로 유지하는 일명 'LTBT(Living

Together But Apart) 커플'이 빠르게 확산 중이다.
가까운 미래에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삶의 방식을 주도해 갈 주인공은 노인 싱글이 되리란 전망이 그럴듯하게 들린다.

 


이제 독신이 대세가 되는 사회에선 주거 양식은 물론이고, 식생활 및 가사 노동 패턴을 거쳐 노후 설계 전반, 그리고 친족 관계 및

상속 등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한 번도 시도해본 적이 없는 획기적 패턴을 구축하게 되리란 전망이 우세하다.
그렇게 되면 명절 때마다 되풀이되어 온 민족의 대이동이 옛 이야기가 될지도 모를 일이요, 광풍(狂風)이라 불러 손색없는

사교육 열기 또한 슬그머니 사그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독신의 증가는 우리 모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인 만큼 이를 준비하는 자세 또한 참신한 상상력으로 무장해야 할 것이다. (120112)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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