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길이 있는 그 섬에 가면 소박한 즐거움이 있다


ㆍ구석구석 볼거리가 숨어 있는 통영 대매물도


대매물도의 섬 둘레 탐방로는 줄곧 남해를 끼고 돌며 장관을 연출한다. 지척에 소매물도가 내려다 보인다.

 
소매물도가 대매물도보다 더 유명한 데는 이유가 있다. 간단하다. 더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런 소매물도를 두고 굳이 대매물도에 간다. 소매물도는 일찍이 과자 광고에 등장하면서 ‘쿠크다스 섬’으로 이름을 알렸다. 펜션과 식당이 즐비하고 연간 40만명이 다녀가는 관광지다. 대매물도는 어떤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크게 이름을 알릴 일이 없었다. ‘아직’ 펜션이 없다. 한국의 산천에서 펜션이 없는 풍경은 이제 희귀한 축에 속한다. 이곳 마을의 집들은 작은 섬의 집들이 으레 그렇듯 바람을 피해 수줍게 머리를 파묻고 있다. 섬과 바위와 산과 바다의 결을 거스르지 않은 채 지붕이 지붕으로 흐른다. 통영 대매물도 구석구석을 걸었다. 대매물도 사람들은 그랬다. “여어(여기)가 와 대매물도고, 그냥 매물도제.”

 

매물도를 위에서 내려다보면 말의 굴곡을 닮았다. 더 정확히는 ‘전장에서 돌아온 군마가 안장을 풀고 쉬고 있는 모습’을 닮았다고 한다. 매물도라는 이름은 여기서 비롯했다. 말 ‘마(馬)’자와 꼬리 ‘미(尾)’자를 쓴 ‘마미도’에서 변형된 것. 대매물도에는 대항마을과 당금마을 두 개의 마을이 있는데, 북쪽의 당금마을이 말의 머리, 대항마을쯤이 말등, 그리고 소매물도 끝에 매달린 등대섬쯤이 말의 꼬리라는 거다. 말등에 해당하는 게 아마 대매물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장군봉(210m)인 듯하다. 이달 말엔 장군봉 위에 장군과 말의 조형물을 올릴 거라고 한다. 이런 것 없이도 마을 곳곳에 숨은 이야기들이 살아 움직이면 좋겠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부디 경관을 해치지 않길 바랄 뿐이다.

20여가구가 사는 대항마을은 이 장군봉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대항마을은 평지에 아담하게 모여 있는 당금마을과 달리 집들이 산허리에 계단식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다. 포구에서 마을로 이르는 길부터 가파르다. 길가엔 모터로 작동하는 수송용 레일이 설치돼 있다. 섬 아낙과 사내는 뭍에서 들여온 짐을 싣고 그 위에 올라타 탈탈대며 경사길을 오른다. 아이들이 있었다면 꽤 훌륭한 놀이터가 됐겠지만, 이제 매물도에 아이들은 없다. 소매물도와 대매물도에 하나씩 남아 있던 분교도 모두 폐교됐다. 그러니 섬에 남은 노쇠한 주민들이 그 길을 걸어 오르내리기는 여간 힘든 게 아니었을 것이다.

민박집에 짐을 풀고 장군봉에 오르기로 한다. 장군봉을 거쳐 꼬돌개로 내려가 다시 대항마을로 돌아오는 코스. 최근 대매물도에는 ‘가고싶은 섬 사업’의 일환으로 섬 둘레를 따라 탐방로가 개설되고 있다. 총 길이가 5.2㎞ 정도이니, 서너 시간이면 섬 전체를 한 바퀴 돌 수도 있다. 장군봉으로 오르는 길은 조금 가파르지만 험하지 않다. 낫을 들고 따라 나선 마을 이장 이규열씨는 줄곧 산책로 주변에 삐져나온 풀들을 베었다. “고사병 땜에 나무들이 이래 픽픽 다 쓰러진 거라.” 쓰러진 나무들 사이로 동백, 후박나무 등이 숲을 이루고 있다. 장군봉까지는 20~30분이면 닿는다. 장군봉에 서면 다도해의 섬들과 매물도 동쪽과 남쪽의 해안선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장군봉 아래쪽에선 일본군들이 파놓은 진지 동굴들도 볼 수 있다.

이제부턴 섬 둘레를 따라 꼬돌개까지 내려가는 길. 본격적으로 나무 데크와 줄 난간이 설치돼 있다. 탁 트인 길 양옆으론 소나무와 억새밭이 펼쳐지고, 가까이 소매물도와 등대섬이 보인다. 장관이다. 아직 이른 봄이라 누런빛이지만 여름이 오면 이 일대가 모두 푸른빛으로 물들 것이다. 꼬돌개쯤 내려오니 고개 위에 커다란 소나무가 지는 해를 등지고 가맣게 서 있다. 꼬돌개는 오랜 옛날 흉년과 괴질로 매물도 초기 정착민들이 여기서 ‘꼬돌아졌다(꼬꾸라졌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란다. 바다 위로 해가 떨어진다. 둥글게 휘어진 수평선이 새삼스럽다.

당금마을에서 대항마을로 가는 오솔길 중간 쯤의 언덕에 올라 바라본 당금 마을의 모습. 잘 익은 감같은 지붕들이 산뜻하다.


섬 둘레를 도는 탐방로도 좋지만 대매물도에서 가장 좋은 길은 당금에서 대항마을로 넘어가는 옛 고갯길이라고 해야겠다. 최근 대매물도의 변화는 골목길을 따라 마을 곳곳에 설치된 예술품과 생활에 밀착한 이야기들일 텐데, 이 길이 그걸 느끼기에 가장 좋다. 대항마을 아이들은 이 좁은 오솔길을 따라 당금마을의 학교를 오갔다. 걷다보면 중간중간 예술작품들이 있는데, 이곳의 예술작품들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고 대개 ‘비어 있다’. 대부분 철사를 꼬아 만들어 빈틈이 많다. 풍경을 가리거나 메우지 않는다.

가장 인상적인 건 민박집들이다. 민박집마다 재미있는 이름을 붙였다. 물때와 고기의 종류 등을 잘 아는 아저씨의 ‘고기 잡는 집’, 오래된 옛 부엌이 있는 ‘군불 때는 집’, 집 마당 앞에 탁 트인 바다가 있는 ‘바다 마당을 가진 집’, 화초 기르기를 좋아하는 ‘꽃 짓는 할머니의 집’…. 바다를 향해 소박하게 열려 있으며 장독대며 텃밭이 아름다운 낮은 지붕의 이 집들만 돌아봐도 기분이 좋아진다. 탐나는 빈집과 폐가들도 많은데 대항마을 어촌계장 김정동씨(63)는 “다 주인이 있고 잘 팔지 않는다”며 “여기로 시집오라”고 농을 했다.

어둑어둑할 때쯤 대항마을의 당산나무, 후박나무 그늘 아래 섰다. 워낙 거대해서 가지 하나가 웬만한 나무줄기보다 굵다. 어촌계장은 그 아래 뒷짐을 짚고 서서 20여년 전을 떠올린다. “음력 초하루 밤 12시가 되기 전에 제관이 동자를 하나 데리고 장군 바위에 올라갑니다. 그날은 마을 전체가 소등을 해요. 마을 전체가 캄캄하지요. 제관이 산신당에서 제를 지내고 내려오면, 그때서야 하나둘 불을 켜는 겁니다. 그리고 부락민들 전부가 저마다 정성껏 밥상을 준비해 여기 쫙 차려놓는 거예요. 이 나무가 태풍 때도 가지 하나 안 부러진 영험한 나무라 안합니까.” 이십여년 전에 없어진 당제는 올해부터 다시 열린다. 10월 열릴 매물도 페스티벌이 그 시작이다.

당금, 대항마을을 걷다보면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설치물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 여행 길잡이

꼬돌개 언덕 위에 있는 소나무.

 

● 통영항 여객터미널에서 매물도까지 오전 7시, 오전 11시, 오후 2시 하루 3회 운항한다. 당금, 대항(대매물도), 소매물도에 선다. 매물도에서 나오는 배 시간은 당금(8:40 12:45 15:20), 대항(8:30 12:35 15:30), 소매물도(8:15 12:20 15:45). 한솔해운(055)645-3717. 거제시 저구항에서도 오전 8시30분, 오전 11시30분, 오후 1시30분, 오후 3시30분 하루 4번 여객선이 다닌다. 통영과 거제까지는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시외버스가 자주 다닌다.

● 음식물 쓰레기를 제외한 나머지 쓰레기는 다시 뭍으로 갖고 나가도록 하자. 섬에선 쓰레기를 달리 처리할 방법이 없다. 물도 귀하니 아껴 쓰도록 하자. 몸을 씻고 설거지를 할 땐 물을 받아서 사용하는 게 좋을 듯.

● 대매물도엔 구판장은 있지만 음식점은 따로 없다. 숙박을 할 경우엔 민박집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 “회 5만원어치만 썰어주세요” 하면 주민들이 직접 통통배에서 고기를 잡아다 회도 쳐준다. 3~5월엔 꽁치, 열기볼락, 참돔, 농어, 도다리 등이 많이 잡힌다. 일반 식사는 보통 1인 6000원. 어부나 해녀들이 간식 삼아 성게와 미역을 함께 싸먹었다던 매물도 주민들의 이야기가 담긴 ‘매물도 어부밥상’은 올여름부터 선보인다. 섬에서 나는 생선과 해초 등을 중심으로 한 밥상이다. 각 민박집에 문의하면 된다. 1인 1만5000원.

● 섬 마을 사람들이 운영하는 민박집을 추천한다. 대매물도에는 20여곳의 생활민박집이 있다. 문의 당금마을 이장(010-8929-0706) 어촌계장(010-3844-9853), 대항마을 이장(010-4847-9696) 어촌계장(010-6340-1514), 소매물도 이장(010-2810-7704) 주민 김정만씨(017-590-2007).

● 대매물도까지 갔는데 소매물도를 안보고 오기는 아깝다. 소매물도와 등대섬 사이 50m의 바닷길이 열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물길이 열리는 시간을 미리 확인하고 가는 게 좋겠다. 한솔해운(www.nmmd.co.kr) 홈페이지에 물때 시간표가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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