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중앙아시아의 로마 사마르칸트

동서양을 잇는 키질쿰 사막 한가운데에 자리한 덕에 교역 중심지로 크게 번성한 사마르칸트는 티무르 제국의 수도가 되면서 중앙아시아를 상징하는 도시로 거듭나게 되었다.

빼어난 아름다움에 대한 소문만으로도 상상력에 불을 댕길 수 있었던 중앙아시아의 로마, 사마르칸트를 찾아 떠나본다.

  • 글=이형준 / 2009년 3월 vol.28

키질쿰 사막에 자리한 사마르칸트는 여느 사막 도시와 다르게 물이 풍부하다.

도시를 에워싸고 있는 아무다리야 강과 시르다리야 강 덕분에 기원전 5세기에 이미 소그디아나 왕국의 수도로 크게 번영했다.

왕국의 수도로 발전을 지속하던 사마르칸트는 영토 확장에 나선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에게 최초로 정복 당한 것을 시작으로 역사의 주요 사건이 발생할 때면 어김없이 그 중심에 서게 되었다.

기원전 329년 이후 동서양을 잇는 교역 중심지로 발전하던 사마르칸트는 칭기즈칸 군대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된 1220년까지 장장 1천 5백 년 동안이나 격조 높은 문화를 꽃피웠다.

칭기즈칸 군대에 의하여 사라진 도시는 후대에 티무르 왕국의 수도가 되면서 다시 꽃을 피우게 되었다.

저마다 개성이 돋보이는 건축물이 늘어선 샤이진다

학문의 꽃을 피운 교양의 땅
‘비옥한 농토’란 의미를 간직한 사마르칸트의 중심에는 레기스탄 광장이 있다.

그런데 레기스탄의 뜻은 ‘모래의 땅’이다. 비옥한 농토 한가운데 모래의 땅이 있는 셈이다. 이름은 모래이건만, 모습은 눈부시다.

모자이크로 장식된 레기스탄 광장은 눈이 시려 똑바로 쳐다볼 수 없을 정도다.

축구 경기장 크기의 광장을 중심으로 동·서·북 쪽에 자리한 거대한 아치, 드높은 첨탑, 홈이 뚜렷한 연두색 돔 지붕으로 이루어진 건축물들은

과거 이슬람 교리를 가르치던 학교였다.

광장에 들어서면 서쪽에 있는 울루그벡 메드레세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이 건물은 1420년 티무르의 조카인 울루그벡 왕이 세운 이슬람 학교로 기숙사가 딸린 중앙아시아 최대 규모의 교육 기관이었다.

이 학교가 완성되자 각지에서 학생들이 몰려왔다.

울루그벡 메드레세에서 머물며 학업에 매진했던 인원은 1백명.

울루그벡 메드레세에서 최초로 가르친 학문은 신학이었지만 곧 천문학, 철학, 수학, 과학 등 다방면으로 교과를 확장시켰으며 그 수준은 당대 최고였다.

특히 울루그벡 왕은 정치보다는 천문학에 관심이 컸다.

덕분에 울루그벡 메드레세를 중심으로 발전한 천문학은 유럽은 물론이고 중국과 우리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시르도르 메드레세 왼쪽 방 벽과 천장에 남아 있는 건축 당시 그린 벽화, 레기스탄 광장에서 발굴된 생활용품은 틸라카리 메드레세에 전시되어 있다.
탄성을 자아내는 옛 장인들의 천장화
이슬람 건축물에 세운 탑을 미나레트라고 부른다. 울루그벡 메드레세에도 미나레트 2개가 서 있다.

건물은 전체가 푸른색 타일로 이뤄져 있으며 그 위에 티무르 왕조를 상징하는 꽃 문양과 코란의 글귀가 새겨져 있다.

그 모습은 방문객들의 탄성을 자아낼 만큼 아름답다.

규칙적인 아치 모양의 입구를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에는 수많은 방과 아담한 정원이 늘어서 있으며 정면에는 천문학자이기도 했던 울루그벡 왕을 상징하는 별이 새겨져 있다.

울루그벡 메드레세 건너편에서 동쪽으로 가면 또 다른 이슬람 학교인 시르도르 메드레세가 있다.

야한그도슈 바하도르 왕의 명령으로 1636년에 완공된 이 건물은 푸른 타일로 장식된 외관이나 용도가 울루그벡 메드레세와 흡사하다.

하지만 실내는 사뭇 다르다. 울루그벡 메드레세의 실내가 모두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는 반면 시르도르 메드레세는 각 코너마다 용도에 따라 다르게 꾸며져 있다.

특히 천장에 그려진 크고 작은 천장화는 빼어난 예술성과 우아함을 자랑한다.

옛날 학생들이 공부하던 수십 개의 방은 공방과 토산품 상점으로 꾸며놓았는데 여행객이 구경하기엔 더없이 매력적이다.

또 다른 학교인 틸라카리 메드레세는 ‘금박으로 된’ 이라는 뜻이다.

그 이름에 걸맞게 천장에 모두 황금을 입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 건물은 레기스탄 광장에 있는 3개의 건축물 중 최고로 꼽힌다.

천장은 언뜻 보기에 완벽한 원형 같지만 실제로는 평면이다.

평면인 천장이 원형으로 보이는 것은 천장에 그려 놓은 무늬가 불러일으키는 착시 현상 때문이다.

현대인의 눈마저 현혹시킬 정도로 정교한 당시 장인들의 솜씨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이다.


중앙아시아 최대의 모스크와 그 뒤의 슬픈 스토리
레기스탄 광장에서 동쪽으로 10분 남짓 걷다보면 비비 하님이란 모스크에 이른다.

비비 하님 모스크는 티무르가 8명의 왕비 중 가장 사랑했던 비비 하님을 위해 건축됐다.

이 모스크는 장인 2백 명과 석공 5백 명, 코끼리 95마리가 동원되어 4년간의 공사 끝에 완성되었다.

높이 50미터, 길이 1백30미터, 폭 1백2미터에 달하는 중앙아시아 최대 규모다.

비비 하님과 관련해서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4년에 걸쳐 진행되던 공사가 마무리될 무렵 왕비인 비비 하님을 사모하던 건축가가 왕비에게 단 한 번만 키스해줄 것을 간청했다고 한다.

티무르를 무척 사랑했던 왕비는 여러 번 거절했지만 잘생긴 건축가의 구애는 계속되었고, 결국 마음이 움직인 왕비는 키스를 허락했다.

그런데 건축가와 나눈 키스 때문에 왕비의 얼굴에 멍이 생겼다.

인도 원정을 마치고 돌아온 티무르는 왕비의 멍든 얼굴을 보고 연유를 캐물었고, 왕비의 고백을 들은 왕은 곧장 건축가를 미나레트 꼭대기에서 떨어뜨려 처형했다.

왕비도 3일 동안 미나레트에 갇혔다가 같은 방법으로 목숨을 잃었다.

과거 학생들이 생활하던 공간에서 토산품을 판매하고 있는 어린이, 과거 학생들이 공부하던 공간에서 판매하고 있는 다양한 토산품, 사마르칸트의 공방에서 판매할 그림을 그리는 청년
화려함과 소박함이 어우러진 유적지의 매력
비비 하님 모스크의 동쪽에는 14~15세기에 걸쳐 완성된 샤이진다 묘지 유적지가 있다.

종교 지도자와 순교자, 왕족이 잠들어 있는 유적지에는 티무르 왕비들과 조카딸을 비롯해 많은 왕족이 잠들어 있다.

샤이진다는 페르시아와 아제르바이잔에서 데려온 당대 최고의 건축가와 장인의 손길에 의해 조성되었다.

그 덕에 ‘천국으로 가는 계단’으로 불리는 입구부터 맨 끝에 자리한 쿠산 이븐 압바스의 무덤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개성이 넘치는 건축물로 가득하다.

정교한 꽃 문양과 코란이 장식된 건물이 있는가 하면, 아무런 장식 없이 흙 벽돌과 회벽으로 된 건물도 있는데, 이 모두가 조화를 이룬다.

화려함만 보면 티무르 왕비들과 조카딸 무덤이 단연 돋보이지만 방문객들의 마음을 사로 잡는 곳은 따로 있다.

바로 쿠산 이븐 압바스가 잠들어 있는 묘지다.

푸른색 타일 위에 매혹적인 문양이 장식된 건물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고 있는 쿠산 이븐 압바스는 예언자 마호메트의 사촌으로 알려진 순교자다.

포교를 위하여 676년 사마르칸트를 찾았던 그는 기도 중 도적이 휘두른 칼에 목이 잘려 생을 마감 하였다.

그의 죽음을 계기로 이슬람교를 숭배하게 된 시민들은 그를 ‘살아 있는 왕’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화려한 모자이크 장식으로 꾸민 다른 왕가의 묘지와 달리, 쿠산 이븐 압바스의 묘지는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묘한 숙연함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인지 관광객들도 이곳에서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조아리며 기도를 올린다.


태양이 살아 움직이는 낭만적인 풍광
사마르칸트 서쪽에는 또 다른 묘지 유적지인 구르에미르가 있다.

티무르의 손자인 무하마드 술탄에 의해 1404년에 완성된 구르에미르 유적지도 원래 학생들이 공부하던 학교였다.

하지만 중국 원정길에 오른 티무르가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으면서 이 학교는 그의 묘지로 바뀌었다.

구르에미르는 사마르칸트에 남아 있는 여러 건축물 가운데 가장 변화무쌍한 모습을 연출하는 곳이기도 하다.

보는 각도와 시간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데, 건물에 붉은 노을이 비치는 늦은 오후 시간이 가장 아름답다.

노을 빛에 물든 구르에미르를 보고 있으면 마치 태양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낭만에 휩싸인다.

수도 타슈켄트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사마르칸트는 흥미로운 이야기와 풍물로 가득하다.

하지만 시장만큼 살아 숨 쉬는 삶을 구경하기에 좋은 곳도 드물다.

주요 거점지마다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데 그중에서도 비비 하님 바자르가 대표적이다.

이곳은 물이 풍부하고 일조량도 많아 각종 과일과 건과류, 치즈, 밀, 빵, 향신료 등이 많이 나온다.

하지만 이방인들의 눈길을 특히 사로잡는 것은 사마르칸트의 명물인 리표시카라는 둥근 모양의 빵이다.

살아 있는 왕으로 칭송되는 쿠산 이븐 압바스가 잠들어 있는 묘역 입구, 과거 학교로 사용하던 틸라카리 메드레세에서 바라본 시르도르 메드레세
집집마다 빵에도 장식용 무늬를 그려 넣는 전통
피자와 비슷한 크기인 리표시카에는 독특한 문양이 새겨져 있다.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주식으로 먹는 빵이지만 특별한 용도로도 사용된다. 바로 ‘집 안 장식’용이다.

주식으로 먹는 빵을 집 안 장식용으로 사용하는 독특한 풍습은 기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마르칸트의 건조한 사막 기후 덕분에 몇 달은 기본이고 1년 가까이 빵을 집 안에 둬도 전혀 변질되지 않는다.

이 점에 착안한 우즈베키스탄 아낙들은 빼어난 손재주를 발휘해 리표시카 위에 섬세하고 독특한 문양을 새겨 넣어 집 안 장식물 겸 주식으로 일석이조의 효과를 낸 것이다.

바자르를 걷다 보면 어렵지 않게 만나는 사람들이 고려인이다. 얼굴이 어찌나 우리와 흡사한지 반가움이 와락 밀려온다.

바자르에서 식품과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동포들은 옌하이저우(연해주)에서 이주한 고려인 2~3세대들이다.

스탈린의 소수 민족 이주 정책에 따라 중앙아시아로 이주해온 고려인은 우즈베키스탄의 주요 도시에 흩어져 살고 있다.

그중 한 곳이 사마르칸트로, 수도인 타슈켄트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동포가 거주하고 있다.

이곳의 고려인들은 교수와 사업가, 공무원, 직장인 등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고 있어 바자르뿐 아니라 어디를 방문하든 우리 동포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일찍이 고대 무역과 실크로드의 주요 교역지로 크게 번성한 사마르칸트는 경제보다는 문화 도시로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751년 중앙아시아 최초로 세워졌던 제지 공장을 필두로 1420년에 설립한 이슬람 최대 규모의 대학, 1429년에 세워진 세계 최초의 천문 관측소와 천문 관측기구, 그리고 어학 서적, 백과사전, 의학 서적 등으로 유명하다.

이렇듯 중앙아시아 대표 문화 도시 사마르칸트는 도시 전체가 움직이는 거대한 박물관 같은 곳이다.

필자 이형준은 1년 중 절반을 외국에서 보내다시피 하는 사진작가이자 여행작가로 지난 20여 년 동안 1백20여 개국 2천5백여 개 도시와 지역을 여행했다.

<동화를 찾아가는 아름다운 여행>, <엽서의 그림 속을 여행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유럽 1, 2> 등 수많은 여행서를 펴냈다.


여행메모

가는 길
인천국제공항에서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우즈베키스탄항공을 이용하면 타슈켄트까지 직항으로 갈 수 있다.

거기에서 기차를 타고 사마르칸트로 이동한다. 인천 → 타슈켄트는 7시간 30분 소요. 타슈켄트 → 사마르칸트는 특급 열차로 3시간 소요.

숙박
모든 여행객과 방문객은 반드시 숙박을 증명할 수 있는 거주 등록증을 발급받아 항상 소지해야 한다.
Hotel Afrosiyob 구르에미르 유적지 건너편에 있는 사마르칸트 최고의 숙박 시설로 극진한 서비스와 주요 유적지를 도보로 둘러볼 수 있는 위치가 매력이다. 요금은 시즌에 따라 2인 1실에 60~80유로. www.afrosiyobpalace.com
Hotel President Palace 국립 사마르칸트 대학 앞에 있는 일급 호텔로 깨끗한 객실과 조용한 분위기를 선호하는 방문객에게 적합하다.

요금은 2인 1실 40~50유로. www.hotelpresident.uz

먹을거리
맛깔스러운 음식을 즐길 수 있는 호텔 레스토랑, 음식점 등이 다양하다.

요금 청구서에 팁이 포함되는 있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따로 팁을 주지 않아도 된다.

서양식은 고급 호텔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을 이용하는 것이 좋고 리표시카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전통 음식은 레기스탄 광장 주변의 식당에서 먹는다.

쇼핑
사마르칸트에서 구입할 수 있는 물품은 장식용 액세서리와 카펫, 악기, 그림 정도다.

고급 제품은 레기스탄 광장에 자리한 상점에서 구입하는 것이 좋다. 가격은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가로세로 각 1미터에 달하는 수공 카펫은 1백 유로 수준이며 예쁜 액세서리와 장식은 1~10유로, 아름다운 장식의 악기는 30~50유로면 구입할 수 있다.

비자
우즈베키스탄 여행에는 비자가 필요하다. 주한 우즈베키스탄 대사관에 초청장, 사진, 여권을 제출하고 비자를 신청하면 된다.

비자가 나오기까지는 8~10일 걸리며 비용은 일주일 체류의 경우 14만원, 2주일 체류는 15만5천원이다.

초청장이 필요하기 때문에 여행사에 의뢰하는 것이 편하다.

국내 이동
우즈베키스탄은 대중교통이 불편하다. 따라서 장거리를 이동할 때는 항공기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며 가까운 거리는 택시를 타도 좋다.

택시는 영업용과 자가용이 있는데 두 택시 모두 반드시 가격을 흥정한 뒤 타야 한다.

기차 티켓을 구입할 때 간혹 여권 제시를 요구하므로 반드시 여권을 소지하는 게 좋다.

기타 정보
숙박 후 체크아웃할 때 반드시 투숙을 증명할 수 있는 숙박 증명 카드를 발급받아 소지해야 한다.

숙박 증명서가 없으면 출국할 때 5백~1천 달러 수준의 벌금이 부과되니 꼭 유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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