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마다 비경 품고 비상하는 ‘매봉’

강원 삼척시와 경북 울진군에 걸쳐 있는 응봉산(鷹峰山)은 국내 최고의 계곡 산행지다. 해발 999m.

응봉산 덕풍계곡에 위치한 제1용소. <삼척시청 제공>


기암괴석을 끼고 돌아 거센 물줄기를 토해내는 수많은 폭포는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암반 사이를 미끄러지듯 내달리던 계곡수를 잠시 머금고 있는 소(沼)는 그 깊이를 쉽게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시퍼렇다.

하지만 빼곡히 들어찬 원시림과 험준한 협곡은 뭇사람들의 접근을 쉬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때묻지 않은 비경과 태고의 신비함을 오롯이 간직한 응봉산은 주로 전문 산악인들의 입소문을 타고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울진 방면에서 보면 산세가 비상하는 매의 형상을 닮았다 하여 예부터 응봉산으로 불렸다.

이 같은 이유로 지역민들은 이 산을 ‘매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 1759년에 제작된 지도인 여지도서(與地圖書)에 가곡산(可谷山)으로 표기돼 있는 등 또다른 이름도 상당수다.

낙동정맥의 한 지류에 우뚝 솟아 있는 이 산의 정상에 서면 백암산·통고산·함백산·태백산 삿갓봉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시선을 돌려 백두대간 고산준령의 웅장한 풍모를 감상한 뒤 암반 절벽에 어렵사리 뿌리를 박은 채 기묘한 모양으로 자라 있는

노송을 바라보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그런데 응봉산에서 동해 바다를 향해 골골이 뻗어있는 계곡의 풍광은 이처럼 뛰어난 정상의 조망을 압도할 정도다.

깎아지른 듯한 벼랑 사이로 힘차게 흘러내리는 계곡수와 하얀 포말을 뿜어내는 폭포의 아름다운 자태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그 대표적인 곳이 바로 덕풍계곡과 덕구계곡이다.

강원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에 위치한 덕풍계곡은 ‘용소골’ ‘문지골’ ‘굉이골’ 등 크고 작은 물줄기를 품에 안고 있다.

특히 응봉산을 오르는 길목인 ‘용소골’은 덕풍계곡의 제일 절경이다.

지리산 칠선골, 내설악 백담·수렴·구곡담 계곡과 더불어 가장 아름다운 계곡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그 곳에는 ‘나무기러기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신라 진덕왕 때 의상조사(義相祖使)가 세 마리의 나무기러기를 만들어 풍곡리 소라곡(召羅谷)에서 날렸는데 그 중 한 마리가 용소골에

떨어지는 순간 숨어있던 용이 하늘로 올라가며 순식간에 절벽 사이에 3개의 용소가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높이 10m 이상인 폭포를 가진 제2용소를 지나면 임진왜란 때 피란민을 지켜주다 돌이 되었다는 매바위가 나타난다.

이밖에 풍곡지역에서 생산되는 적송은 경복궁 재건 당시에 대들보로 사용될 정도로 재질이 뛰어나 일제 강점기에 수탈대상이 되기도 했다. 아픈 과거사를 대변하듯 이곳엔 아직까지도 궤도차를 이용해 목재를 실어 나르던 철로의 터가 곳곳에 남아 있다.

용소골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산양과 수달뿐 아니라 1급수에 서식하는 버들치가 많이 분포하는 생태계의 보고로 여겨지고 있다.

울진군 북면을 가로지르며 펼쳐져 있는 덕구계곡 중간에는 선녀탕·옥류대·형제폭포 등이 자리잡고 있다.

또 계곡 주변으로 울창한 원시수림대가 우거져 있어 1983년 군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응봉산 자락에 위치한 덕구온천의 온천수는 중탄산 나트륨이 주성분인 약알칼리성으로 피부병·신경통·위장장애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연중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산행을 마친 대부분의 등반객들도 이곳을 빼놓지 않고 들러 온천욕을 즐기며 피로를 풀곤 한다.

산세 험한 ‘악산’… 불영사 등 명소 많아

응봉산은 산세가 험한 악산(惡山)으로 아직까지 등산로가 많이 개발되지 않아 초보 산행객은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등반시간은 기상여건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대개 5~9시간30분 정도로 본다.

대표적인 등반 코스는 △덕구온천~원탕~정상~덕구온천(5시간) △덕풍마을~용소골~작은당귀골~정상~덕구온천(9시간30분) △사곡분교~재량박골~응봉지 남릉~응봉산 서북릉~정상~덕구온천(6시간10분) △보리교~보리골~862봉~응봉산 서북릉~정상~덕구온천(6시간) 등이다.

대부분의 등반객들은 이 중 덕구온천 원점회귀 코스를 가장 선호한다.

용소골 코스를 택해 정상으로 향하면 7시간이 넘게 걸리는 데다 암벽이 많아 각종 장비를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또 계곡을 따라 등산로가 개설된 곳이 많은 만큼 장마철이나 비가 오는 날에는 가급적 산행을 삼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응봉산 주변에는 산행후 둘러볼 만한 명소도 많다.

경북 울진군 서면 불영계곡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천년고찰 불영사를 찾으면 남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보통 사찰은 산을 등지고 강이나 계곡을 앞에 두고 있으나 불영사는 계곡을 등지고 산을 바라보고 있어 이색적이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울진 성류굴 또는 삼척의 환선·대금굴을 찾는 것도 좋다.

동해안의 비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초곡~장호항 해안도로 드라이브도 권할 만하다.

이밖에 귀갓길에 짬을 내 울진 북단에 위치한 죽변항에 들르면 대게와 싱싱한 활어회를 맛볼 수 있다.

남부지방에서 자가용을 이용해 응봉산으로 가려면 봉화 방면 36번 국도~울진~7번 국도~917번 지방도~덕구온천 코스를 택하고,

중부지방에서는 영동고속도로~삼척 원덕을 거쳐 416번 지방도를 타고 풍곡으로 들어서면 된다.

〈 삼척·울진 | 최승현기자 cshdmz@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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