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번 교향곡은 4번과 녹음 시기가 약 20년이나 차이가 있어서 그런지 4번에 비해서 상당히 세련되고 정갈하게 다듬어져 있다. 어느 한순간 템포의 급한 변화가 있는 부분도 있지만 적어도 4번에 비해서는 좀더 다듬어지고 아름다운 선율로 이루어져 있다.
작품 구성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 중 하나인 민해경의 명곡 가운데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라는 노래가 있다. "그대를 만날 때면, 이렇게 포근한데..."로 시작하는 이 노래의 이 첫 부분이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동기이다. 그런데 이 동기가 이 곡 첫 머리에서부터 조성을 바꿔가며 마지막 악장 끝까지 사용되는 순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분명히 들리는 동기는 이 곡을 처음 듣는 사람에게도 '민해경'을 떠올리게 할 만큼 유사하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이나 베토벤 비창의 선율을 팝 음악에 인용하듯이 이 곡의 작곡가도 그런 시도를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이 곡은 '민해경 교향곡'이라는 별칭을 가질 만하다.
앞서 언급한 '민해경 주제'는 곡 전체를 관통하며 흐르는데, 흔히들 이 멜로디가 운명을 상징한다고 한다.
1악장 첫부분에서 클라리넷에 의해 제시되는 이 주제는 적적하게 반복된다. 폴란드 민요에서 채취했다는 아름다운 제1주제와 밝은 제2주제가 나온다.
2악장은 느린템포로 자유로운 3부 형식이다. 역시 곡 전체의 주요 동기가 웅장하게 솟구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3악장은 왈츠로 환상적인 분위기이다. 관현악이 연주하는 왈츠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것 중의 하나이다.
4악장은 이 곡의 하이라이트이다. 다시 주요 동기가 이번에 장조로 바뀌어 장엄하게 나타난다. 으르렁거리며 웅크리고 있는 사자와 같은 저음부가 때로는 무시무시할 정도로 공포감을 준다. 제1주제는 팀파니 주자의 연타는 더욱더 장엄하고 또한 격렬한 진군을 표현한다. 사랑스러운 느낌의 제2주제도 등장하여 이들은 다양하게 변화되며 연주된다. 늠름하고 박력있고 스피디한 행진은 승리에 찬 대단원에 이른다.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들은 러시아 민족주의적인 면모를 포함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독일 낭만주의 전통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에서 광활하고 화려한 슬라브적인 정서를 분명히 느낄 수 있지만, 무소르그스키나 림스키-코르사코프 등의 음악만큼은 아니다. 차이코프스키는 독일 낭만주의를 배운 사람이며, 서유럽을 향한 창이라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서유럽 낭만주의를 벗어나지 않는 음악을 작곡했다. 따라서 드보르작이 보헤미안의 정서를 그렇게 한 것처럼, 차이코프스키도 독일 낭만주의를 바탕으로 러시아의 정서를 표현했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따라서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러시아 연주자나 러시아의 오케스트라가 가장 잘 연주할 것이라는 예측은 보통 보기 좋게 빗나가는 경우가 많다.
1888년 8월에 완성되어 11월에 작곡가 자신에 의해 초연되었을때, 평론가의 반응은 나빴지만 청중들은 큰 갈채를 보냈다. 이 곡은 차이코프스키의 6개의 교향곡 가운데에서 가장 변화가 많고 또한 가장 열정적인 곡으로 뚜렷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어서 순음악형식을 취하면서도 표제악적인 요소가 짙다. 여기에 나타난 것은 고뇌하여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이며 인간을 막다른 골목까지 몰아치는 운명의 마수이어서 처참한 느낌을 듣는 사람에게 던져준다. 극도의 멜랑콜리한 감성과 광분적인 정열사이의 갈등, 또는 회환과 낙관적인 마음간의 갈등은 차이코프스키의 본성이었다. 마음 깊은데서 우러나온 패배의식뿐만 아니라 불같은 열정의 분출은 차이코프스키의 창작열에 불씨를 당겼다. 차이코프스키의 독특한 특성인 선율의 어두운 아름다움과 구성의 교묘함, 그리고 관현악의 현란한 묘기등이 이 곡의 가치를 한층 드높여준다.
차이코프스키는 이른바 '센티'의 대가이다.
그의 음악은 '센티멘탈리즘'으로 특징지어지며, 사람들은 그를 '고독과 우수의 작곡가'라 부른다. 그는 결코 밝은 성격이 아니었으며, 자신의 성의 정체성을 고민해야 하는 유전적 특징을 타고난 동성연애자였다. (딱히 놀랄 것도 없는데, 서양 음악의 위대한 작곡가들 중에 어디하나 평범하거나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은 몇 명 없지 않은가!) 그는 그 사실을 평생 비밀로 간직하고 싶어했고, 아마 그런 의도에서 1877년 37의 나이에 자신을 사모하던 제자 안토니나 밀리우코바와 결혼했다. 당연히 그의 결혼은 불행이었고, 결혼 2주차만에 정신적 고통을 견디지 못해 모스크바의 차가운 강물에 뛰어들었으나 미수에 그쳤다. 아내에 대한 동정심과 동시에 어쩔 수 없는 혐오감, 그리고 삶에 대한 절망이 그를 심한 신경 쇠약이 되게 만들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아내를 떠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갔으며, 아내를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았다.
이런 그를 격려하고 후원해준 나데츠타 폰 메크 부인의 이야기는 잘 알려져있다. 11명의 자녀를 둔 46세의 미망인 폰 베크 부인은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사랑하여 그를 후원해 주고 그가 작곡에 전념할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폰 메크 부인은 그를 한번도 만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그를 후원했다. 어쨌든 폰 메크 부인의 후원을 받는 동안 차이코프스키는 명작들을 쏟아냈다. 교향곡 4,5,6번도 그녀의 후원 아래서 만들어진 러시아 교향악의 걸작들 중 일부이다.
인간의 슬픔을 처절하게 통곡하는 교향곡.
교향곡 제5번 E단조 OP.64를 쓰던 즈음 차이코프스키는 작곡가로서 최고의 전성기에 잇었다. 그는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으며, 유럽에서도 인기가 좋아 자주 해외여행을 하였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녀야 했다. 유럽에서도 인기가 좋아 자주 해외 여행을 하였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녀야 했다. 그런 와중에도 차이코프스키는 잊을 만하면 규치적으로 재발하는 우울증으로 괴로워했다.
그럴 때 마다 그가 찾은 것은 메크 부인이었으며, 힘들 때마다 그녀에게 열렬히 편지를 썼다. 그러나 차이코프스키가 힘들 즈음에 메크 부인의 건강이 나빠졌으며, 그녀는 요양을 위해 모스크바를 떠나 프랑스의 니스로 갔다. 그녀와 헤어짐-아니 그녀의 편지와의 헤어짐이라고 해야하나-은 그를 더욱더 힘들게 했다. 그는 그녀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제가 얼마나 오랫동안 당신의 글씨를 그리워했는지 아십니까?"
이때 작곡된 대표적인 곡이 교향곡 제5번이다. 그녀에 대한 차이코프스키의 애증과 미련과 갈망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것도 이 곡이다. 이 교향곡 느낌은 일견 슬픈 것 같지만, 그 보다는 내적으로 침잠하는 철학적인 깊이가 느껴지는 명곡이다. 이 곡이 주는 아름다움은 참으로 뛰어나며 어두운 색체가 주는 질감은 부드럽고 그 직조는 탄탄하다. 슬프면서도 달콤한 멜로디가 선사해주는 조형적인 아름다움은 세련되기 그지없다. 베토벤이나 브람스 같은 작곡가들이 슬픔을 그릴 때 그것에 대한 극복과 관조에 주력했다면, 차이코프스키는 오로지 통곡만 하는 느낌이 강렬하다. 이처럼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만큼 인간의 슬픔을 그토록 처절하게 울면서 그린 작품도 흔치 않을 것이다.
그의 교향곡들이 그토록 통곡하는 것은 그 속에 어쩌면 우리의 한限과 같은 것이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그의 작품에 유달리 애착을 갖는 것인지도 모른다.
글출처: 참마음 참이웃 / 음원출처: http://cafe183.daum.net